[영화 잡답] 잔칫날 3 - 내용 공개 주의

by 기록

주인공은 쓰러진 할머니께서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시는 것을 되뇌어 봅니다. 아니, 그보다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습니다. 춤을 추던 흥겨운 분위기는 급변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이 없는 곳에서 주인공에게 줄 행사비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행사가 중간에 끊겼으니 절반 정도 주자에서 차비만 주자는 방식으로 점차 변했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아버지 장례를 치를 비용이기에 또한 처음 약속한 금액이고 할머니가 쓰러지신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기에 온전하게 행사비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잔칫날이 초상집으로 상황이 급변하고 사람들의 갈등이 '돈'이란 것에 집중됩니. 그리고 이 갈등의 크기는 액션 영화에서 악당이나 영웅이 죽이는 조연들의 '죽음'보다 더욱 무게감과 흥미를 이끌어 냅니다.

주인공의 사정을 알 수 없는 마을 주민들은 돈을 아끼려고 주인공이 행사 보너스 받기 위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격하게 춤을 췄다고 주장하고 주인공은 자신은 손만 잠깐 잡았을 뿐인데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말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억울하기만 합니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 장례식장에서는 어려운 시기 도와주지 않던 친척들이 와서 주인공을 욕을 하고 하나뿐인 여동생 또한 주인공에게 왜 장례식장에 오지 않냐고 계속 재촉하며 갈등은 현장에서도 현장 밖에서도 계속 커져갑니다.


인간의 욕심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설화인 젊어지는 샘물이나 진시황의 불로초처럼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 옛날이야기는 항상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욕망의 대상들이 이야기로 만들어서 전해지지만 가장 현실적이면서 우리 근처에 있고 가장 확실하게 삶에 영향력을 주는 것은 바로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에게 절박한 200만 원은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돈입니다. 그런데 '억'소리를 매체에서 자주 들었기에 적다고도 볼 수 있는 이 금액이 첨예한 대립을 만든 것은 초반부터 이어져온 상황들과 그 속에 있는 주인공의 위치 덕분이라고 봅니다.


이 돈이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영화 처음부터 조금씩 방향을 잡아 둡니다.

주인공이 사는 허름한 집. 아픈 아버지가 계신 일반 병실. 병원 식사에 밥 하나 추가하여 함께 먹는 모습.

이러한 장면을 보여준 후에 행사를 간 모습. 행사장에서 창고로 된 공간에서 화장을 지우는 모습 등 무심하게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 주면서 주인공의 수입에 비해 나갈 돈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빠듯한 생활비와 병원비 이외에 아버지 장례식까지 다가옵니다. 중간에 동생이 휴학한 것도 경제적 사정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만 원은 병원비와 생활비 그리고 아버지 장례비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몰라도 마지막 가는 장례식장에서 이러한 가난함 때문에 아버지가 슬퍼하실만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진 않았을 것입니다. 나머지 경제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더라도 주인공은 마지막은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잔치 의뢰자처럼 부모님을 향한 마음... 아버지에게 좋은 것을 드리지 못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자 자기 위안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공에게 필요한 돈입니다. 이 돈을 위해 가장 슬픈 날에 웃습니다.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상황과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어긋나는 시간이 계속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지속되는 것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주인공 덕분에 즐겁게 춤을 추던 사람들이 팔순 잔치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자 돌변해서 주인공을 조금씩 할머니를 사고사하게 만든 원인으로 몰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이장은 조금이라도 행사비를 아끼려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듯하며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도 주인공의 사정을 몰랐다면 이장과 같이 행동했을 법한 아주 평범한 행동을 합니다. 마을 이장이 말하는 잔치에서 초상집으로 변했는데 돈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반대로 잔치에서 초상으로 변한 상황에서 돈을 아끼려고 한 행동 또한 같은 논리로 물었을 때 해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편 부녀회장님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종종 봤던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신이 맞다는 우격다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갈등은 점점 심해져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에 점점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주인공을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라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춤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즐거움을 만드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문학의 시작에 대해서 말할 때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춤을 추면서 입에서 흥얼거리던 것이 구전되면서 노래로 이어지고 현재에 오면서 문자로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낭송회나 시 읽기는 문학이 시작되었을 시기처럼의 감정의 흐름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흥겨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할머니가 생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는 것은 흥겨움이 가득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렇게 즐거운 춤을 추다가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가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줘서 액션 영화처럼 세계가 멸망할 상황도 아닌데 계속 보게 만드는 긴장감과 몰입감을 유발하는 듯합니다.


주인공은 돈만 받아서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고사 처리 여부에 대한 단순 조사만 한다며 경찰이 주인공을 부릅니다. 마을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기에 서로에 대한 섭섭함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점 더 커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갈등을 키우는 장치는 부녀회장님으로 보입니다. 어머님들의 특유 화법인 다 들리는데 혼자 말하는 것처럼 끝에 말을 덧붙여 주인공을 화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부녀 회장님과 같이 상대방이 들을 것을 알면서 말 끝에 말을 더하고 말은 흐리면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하기 방식은 일상에서도 자주 보입니다. 이러한 말하기 방식을 살펴보면 우선 말하는 내용에 대하여 논쟁이 생길 수 있는 것들을 주로 다룹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에는 상대와 정면으로 의견 대립이 생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형식면에서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끝낸다는 신호를 주면서 말을 끝냅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나는 할 말 다 했다는 방식으로 대화를 종결하면서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추측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이유로 했는지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 나옵니다. 아이 둘이 다투거나 안 좋은 말을 할 때 마지막에 한 마디라도 더 한 아이가 이긴 것처럼 되는 분위기나 경험을 떠올리면 설명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은 상대가 들어서 자신의 공격이 효과가 있으면 좋고 효과가 없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의 작용이라 봅니다. 또한 말을 끝내면서 말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소리가 작은 것은 상대에게 들리지 않을 경우 자신은 표현을 해서 상대방을 공격했다는 쾌감을 느끼기 위한 자기 합리화의 한 행동 방식이라고 봅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는 계속 지체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장례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과 조사하는 경찰을 모릅니다. 주인공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디로 향할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모른 채 그저 가야 한다고만 합니다. 그렇게 갈등이 최고조가 되어 가는 중에 해결 방법은 무심히 주인공에게 할머니 웃는 모습 보라고 촬영한 폰을 들이민 동네 바보에게서 나옵니다. 이미 영화나 소설을 많이 본 분들은 동네 바보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 그 바보가 문제를 해결해 줄 인물임을 중반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체된 조사에 촬영 영상을 통해 갈등은 손쉽게 해결되고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미안해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의 탓을 합니다.


제가 계속 특별한 것이 없는데 몰입된다고 하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얼마 전 뉴스(20년 12월 12일)에서는 BTS의 노래와 엄정화의 노래를 제시하면서 한 시대에 유행하는 노래의 양상이 절정부터 시작하느냐(BTS) 도입부터 시작하여 단계를 밟느냐(엄정화)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절정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재 다수의 노래들이기에 오히려 기본인 도입부터 시작하는 것에 몰입이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는 영화관에서 어쩔 수 없이 온전하게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있어야 하니 순차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의 방법은 수많은 노래, 영상들 중에서 선택받기 위한 전략이고 후자의 방법은 긴장감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교과서 작품을 보든 어느 날 들린 도서관에서 읽은 글이든 그러한 것들의 축적 말입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진행된 영화는 갈등의 최고조에 다다른 경찰서에서 동네 바보의 영상이란 새롭지 않은 해결 방식으로 문제가 무난하게 해결됩니다. 사실 작은 사고만 나도 영상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상인 관객들에게 오히려 바로 확인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을 끌은 것이 의아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작가가 이야기 진행을 지연시킨 교과서적인 모습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상황이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

또 다른 구성면에서는 시간의 순서대로 제시하다가 마지막에서만 영정 사진을 왜 택했는지를 제시해 줍니다.

이는 일반적이지 않은 영정사진을 선택한 이유와 영화의 주제를 잘 드러내 줍니다. 1회 관람이라서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이 영화에서 시간의 순서를 바꾼 경우는 이 마지막 부분 이외에 없었는 듯합니다.


경찰서 내에서 주인공의 결백이 밝혀지고 나서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서로의 잘못으로 떠미는 그 모습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고 때로는 관객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영화 내에서 악인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결말 부분에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주인공에게 부의금을 쥐어 보냅니다. 이 영화의 갈등 해소 장면을 보면서 단순한 갈등(선악)은 액션에서 우리 일상을 다룬 드라마에서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갈등을 보여 관객을 매료시키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잔치를 의뢰한 사람에게도 이 사연이 들어갑니다. 상중인 의뢰자에게 돈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하던 주인공은 드디어 의뢰자와 만나게 됩니다. 돈 봉투 안의 금액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약속한 200만 원은 분명히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을 배웅해주고 마을 사람 하나는 주인공을 장례식장까지 태워다 줍니다. 주인공의 자동차가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주인공은 동생과 만납니다. 다행히 주인공의 사정을 조문 온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동생과 화해를 하고 미뤄두었던 입관 물품을 선택해서 입관식에 참여를 합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팔순잔치를 참여하고 그곳에서 보였던 밝은 모습을 아버지께도 보여드렸으면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낚시를 다녀왔으면 후회가 좀 덜 가지 않았을까 등 많은 감정이 스쳐갔을 것입니다. 특히 잔칫날 진행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차분하고 조용하며 자기표현을 쑥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아버지께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가장 컸을 듯합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영정 사진을 왜 낚시 가서 웃는 사진으로 했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지금의 힘든 시기 이전. 그 당시의 일상을 회복하고자 바라는 희망을 담은 순간이기 때문에 선택한 듯합니다.


앞서 제시한 내용들처럼 영화 잔칫날은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영화로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보는 중에 일상 경험을 끌어오게 하고 부분 부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의 가족에게 자기 표현을 잘 못하는 것과 일을 할 때 전혀 다른 모습 또한 우리네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에 알게 모르게 공감할 수 있었던 요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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