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꽁치킬러 Dec 01. 2021

키 이야기

내가 작은 키가 아닌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스위스 남성의 평균 키는 178.2cm, 여성은 164cm정도라고 한다.

남성 키의 경우 2009년 자료이고, 여성은 94년까지의 기록만 있어서 2021년인 현재 평균 키가 얼마 정도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적어도 0.5센티미터는 커지지 않았을까? 여튼 여기서 체감하는 스위스인들의 키는 저 기록에서 멀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시가 식구들이다.

일단 신랑부터. 스위스 사람들은 키와 눈 색깔을 신분증에 적도록 돼 있는데, 여기 적힌 신랑의 공식 키는 193센티미터다. 다섯 살 때부터 풀때기만 먹고 살았던 채식주의자임을 감안하면 성장판이 정말 열일한 셈.
신랑의 형도 193센티미터다. 다만, 이분은 이가 나자마자 고기를 뜯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다소 억울한(?) 신장이 아닐 수 없다. 형은 언제나 육식주의자였는데 풀만 먹고 자란 동생이랑 키가 같다니. 아, 생각해보니 채식동물 대부분이 덩치가 크구나. 그래, 이 부분 인정.

형의 부인 역시 키가 크다. 170센티미터 정도. 그런데 이 집안도 만만치 않은 장신족들이라 170이 제일 작은 키라는게 함정.

이번엔 신랑의 누나. 누나는 모델을 했던 경력이 있을만큼 178센티미터의 시원시원한 기럭지를 자랑한다. 애를 넷이나 낳았는데도 체질적으로 출산살 따위 없다(심지어 애 낳은 날도 너무 예쁘고 날씬해서 경이를 넘어 어이가 없었을 정도). 키가 커서 골반 공간이 많아 그런지 임신 7개월이 되어서야 임부복을 입은 분이다. 이분 신랑은 또 어떤가. 스위스 남자 평균 신장이 178센티미터 언저리라는데 이분은 184다. 그럼 이 커플 사이에서 나온 네 조카들은? 일단 넷 다 남자아이라 헷갈리니 편의상 조카 넘버 1,2,3,4로 부르기로 하자. 조카 넘버1은 이미 태어남과 동시에 이 병원 개원 이래 가장 키 큰 신생아 상위 5%안에 들었다. 현재 9살인 넘버 1은 지금도 자기 또래 중에 제일 크다. 옆집 아가랑 동갑인데, 옆집 아가는 넘버 1에 비하면 엊그제 태어난 애 같다. 넘버 1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서, 이제 3학년 올라가는 주제에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만 하다. 다만, 키가 너무 크니 기저귀 차는게 당연한 나이 때에도 나한텐 징그러워 보이기까지 한 부작용은 단점.
그럼 이제 조카 넘버 2를 보자. 이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의사가 받은 키 큰 아이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편식의 조짐이 보이는 넘버 1에 비해, 이 아이는 아빠를 닮아 육류에 기반한 열렬한 잡식주의자 성향을 드러내므로 넘버 1의 체격을 따라잡을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2017년 11월에 세상에 나온 넘버 3는 애초부터 형들보다 훨씬 컸다. 점입가경. 거의 4킬로 가까운 체중에 키도 1센티 더 컸다. 그로부터 2년 뒤, 뜻하지 않게(?) 넘버 4가 세상에 나왔다. 넘버 4는 태어나면서부터 체중과 키 면에서 형들을 압도했다. 지금은 집에서 제일 어린 주제에 제일 많이 먹는다. 먹을 것을 빼앗으면 얼굴이 일그러지는 아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넘버 4가 최종적으로 가장 자이언트가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아마 2미터 가까이 되지 않을까. 농구 약체인 스위스에서 농구 꿈나무로 자라주면 좋으련만. 

이 모든 거인족들에게 피를 나눠주신 우리 시부모님을 보자. 시아버지는 70세에 184센티미터 신장을 자랑는, 풍채 좋은 노인이다. 군대에서도(중립국가 스위스는 선택적 징병제) 키 크기로 부대에서 3등 안에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허리가 전혀 굽지 않았고, 오랫동안 목수로 일하셔서 팔뚝 힘은 오히려 아들들을 능가하는 듯 하다.

우리 시어머니는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이 집안에서 키가 가장 작으셨다는데도 169센티미터. 나이들어 몇 센티가 줄어든 걸 생각하면 젊었을 땐 170~171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운동을 그만 두셔서 살이 좀 찌셨지만, 40대에는 철인 3종경기도 나가셨을만큼 엄청난 체격과 체력의 소유자.

시가에서 가족 모임을 하면 이 큰 사람들이 조명을 다 가리는 통에 실내가 어둑어둑하다. 이들이 죄다 서 있으면 난 빌딩숲에 갇힌 것 같아서 일단 빨리 앉히고 본다.


그럼 나는 과연 키가 작은 걸까?

난 대한민국 여성 평균 신장보다 큰 164센티미터다. 세계 어딜 가도 평균을 웃도는 키인지라, 내가 남보다 작다는 느낌 별로 못 느끼고 살았다. 

그런 내가! 스위스로 시집오자마자 집에서 제일 작은 초소형 인간이 되었다. 그나마 지금은 조카 1~4가 밑밥(?)을 깔아주고 있으나, 미래 자이언트 유망주들의 성장 호르몬이 폭발하기 시작할 5년 후에는 내가 집안의 미니언 자리를 탈환할 듯 싶다. 아가들아, 천천히 자라다오.

 

 

작가의 이전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