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꽁치킬러 Dec 16. 2022

낯선 아이의 선물

오늘 오후, 아기가 잠들어있는 유아차를 밀고 동네 하나 뿐인 쇼핑몰에 장을 보러 갔다. 

쇼핑몰에 도착, 슈퍼마켓과 연결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 앞 벤치에 앉아 캐러멜을 오물오물 먹고있던 남자아이가 눈을 빛내며 다가온다.
남자아이: 안녕!
나: (경계에 찬 목소리로) 안녕.
작년 이맘 때 혼자 동네 산책을 하다가 어린 남자아이들로부터 '만만해 보이는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로 콩알탄 공격을 받은 트라우마가 있어 유아차를 붙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남자아이: 안에 아기가 있어?
나: 응.
남자아이: 빵 살(0살)이야?
나: ('아기가 몇살이야?'도 아니고 단호하게 '빵 살이야?' 물어봐서 당황) 어? 응, 빵 살.

남자아이: 그럼 언제 한 살 돼?

나: 내년 7월. 너는 몇 살이야?

남자아이: 난 일곱 살. 

나: 아, 일곱 살이구나. 

남자아이: 아기 유치원 다녀?

나: (빵 살짜리가 유치원을? 이건 또 뭔소린가) 아니, 아기는 너무 어려서 유치원 못 가. 
남자아이: 그럼 어디에 다녀?

나: 음, 아무데도 안 다니지만 만약 다닌다면 KITA(스위스식 어린이집)에 가겠지?

남자아이: 그렇구나. 

난 이 낯선 남자아이가 우리 딸아이한테 해코지라도 할까봐 얼른 내게서 관심을 접어주길 바라며 아이 부모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캐러멜 봉지에서 캐러멜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여준다. 

남자아이: (캐러멜 봉지를 자랑스레 치켜들며) 내가 좋아하는 거야. 

나: (손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캐러멜이 들어와 있는 사실에 놀람) 어? 아, '미카무' 캐러멜을 좋아하는구나.

남자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러멜을 내가 알아봐줬다는 사실에 흐뭇해하며 뒤늦게 온 엄마와 함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쿨하게 사라졌다. 

생전 처음보는 7살 짜리한테 캐러멜을 선물받다니. 흔치 않은 이벤트인지라 좀 놀랐지만 이내 웃음이 났다. 그냥 스몰토크와 함께 동네 사람들한테 캐러멜 나눠주기를 즐기는 보기드문 특급 인싸일 수도 있는데, 미안하게도 내가 오해했다.
이곳 사람들과 다른 외모때문에 언제나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것에 익숙한 내게, 편견 없이 다가와 호의를 베풀어준 낯선 아이가 고맙다. 한 동네에서 누군가로부터는 무서운 콩알탄을 받고, 누군가로부터는 달달한 캐러멜을 받다니, 이런 소소한 반전이 있어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잊지 않을게, 네가 준 캐러멜. 



 

작가의 이전글 스위스의 '시월드'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