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취리히-인천 직항 운행을 재개했다. 코로나 발발 후 3년 간 자취를 감췄던 직항이 다시 열린다는 소식은 4월 즈음 한국행을 계획했던 우리 부부에게 반갑기 그지없었고, 뉴스를 접하자마자 앞뒤 안재고 잽싸게 항공권을 구매했다. 1년 반 만에 가는 그리운 내 조국, 대한민국. 그러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현재, 반가움과 들뜸, 기대 속에 걱정과 염려 또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중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치솟는 물가
-한국 뉴스를 검색할 때마다 물가 오른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교통비며 외식비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월급 빼고)다 오르는 추세다. 채식주의자인 남편을 위해 서울의 대체육 식당 몇 곳을 알아봤는데, 파스타 한 접시가 2만8천원이란다. 파스타가 2만 8천원이면 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이곳 스위스에서도 절대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특히 채식 메뉴 가격대가 훨씬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는 이곳 외식 시장에서는 더더욱.
다들 스위스가 무조건 비싼 줄 알지만, 사실 장바구니 물가는 전혀 높지 않다. 특히 일상적으로 접하는 식료품은 오히려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다. 500그램 청포도 한 상자를 한화 4천원 이내로 살 수 있고, 큼지막한 애플망고도 한 개 2천원이 안된다. 사과같은 흔한 과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과일/야채만큼은 매일같이 원없이 먹는 이곳에 있다가 과일/야채값이 금값인 한국에 가면 과연 얼마나 자주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과일/야채 덜 먹고도 변비 걸리지 않길 기도해야 하려나.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 습관
-스위스의 운전자들은 매우 젠틀하다. 여기 살면서 스위스 욕 많이 했지만 스위스 사람들 운전 습관만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차 나고 사람 난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서는 횡단보도가 보이면 사람이 있든 없든 무조건 전방 50미터부터 서행한다. 신호등도 필요 없다. 보행자가 도로 옆에 서있기만 해도 차들은 일단 멈추기부터 한다. 보행자가 망설이면 눈과 손으로 어서 건너라는 신호도 보내줄 뿐 아니라, 다 건너갈 때까지 주행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려준다. 한국에 살면서 차를 피하기 바빴던 나였기에, 이주 초기에는 ‘차가 보행자를 기다려주는’ 이곳의 현실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러한 스위스 운전자들의 젠틀함은 유아차를 가지고 나가면 더욱 배가된다. 멀리서부터 유아차를 보고 아주 여유있게 멈춰주기 때문이다. 폭이 3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신호등 없는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려 차 수십 대를 먼저 보내야 했던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입장이 되니 교통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한국에서 얼마나 안심하고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불안감이 앞선다.
수많은 노키즈존
-스위스인인 남편은 ‘맘충’, ‘파파충’이라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사람을, 그것도 아이를 둔 부모를 싫은 벌레에 비유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아이라는 엄연한 존재를 지워버리는 수많은 노키즈존도 이곳 시선으론 ‘세상에 이런 일이’다. 아이가 못가는 덴 성인 업소밖에 없는 스위스에서 살다보니, 카페나 음식점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마저 아이의 출입을 제한당하는 한국은 (또다른 의미로) 어메이징한 나라다. 한국에서의 나는 아이와 동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디서 ‘맘충’ 소리를 들을지 부단히 두려워하며 가고 싶은 카페도 마음대로 못가고, 바쁜 시간에 유아차를 끌고 지하철도 못타게 될 것이다.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작은 인간들이 있는 나라, 아이에게 허용보다 금지를 먼저 배우게 하는 사회. 이처럼 아동혐오가 만연한 한국에, 처음으로 부모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는 심정은 이래저래 복잡할 수밖에 없다.
‘혼혈’ 아기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시선
-한국 사람들은 ‘혼혈’ 아기에 관심이 지대하다. 아니, 꼭 집어 말하면 우리 딸 같은 ‘백인 혼혈’ 아기에 유난히 호감도가 크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소위 ‘유색 혼혈’ 아기는 ‘백인 혼혈’ 아기에 비해 그 주목도가 떨어진다. 남편이 백인인 걸 아는 한국 지인들 중에는 아기 사진을 보고 ‘역시 우월한 유럽 유전자’라며 인종주의를 대놓고 드러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듣는 한국인인 나는 이런 말들이 불편하다. 아기들은 ‘백인 혼혈’이라 예쁜 게 아니라, 그냥 아기라서 예쁜 것이어야 한다. 우리 부부같은 한-스 국제 커플들이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갔을 때 아이를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시선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는 있지만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행히(?) 우리 딸은 눈도, 머리도 까만색이니 한국에선 그냥 한국인으로 보이길 바랄 따름이다.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기쁨도 잠시, 현자 타임이 온 요즘은 하루하루 걱정거리가 시나브로 늘어난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도, 애국심도 매우 강한 나지만 부모가 되어 처음으로, 또 오랜만에 가는 고국인지라 문제점들이 더 두드러지게 다가오는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쪼록 이번 한국행이 내 나라를 향한 애정을 저버리지 않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서럽고 피로한 순간, 한국에서 차곡차곡 우려낸 행복한 추억들을 에너지 드링크처럼 들이킬 수 있도록, 갈 때마다 정이 새록새록 드는 내 나라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