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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고 Jun 04. 2021

방과 집을 숱하게 옮겨 다닌 내 삶을 반추해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가끔은 그런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꼭 같은 주제로 내 이야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와 나의 것이 이루는 교집합이 작은데도 책 한 권을 아우르는 주제에 홀라당 마음이 빼앗기는 그런 책을요.


이 책의 부제는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의 집을 만나기까지 거쳤던 6군데의 집을 소개하고 그곳에서의 일화를 꺼낸다. 인생의 한 시절을 보낸 공간을 회상하면서 그는 가족을 헤아려보기도 하고 한때 머문 공간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이 책에서 집이라는 개념은 한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넓게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걸쳐 해석된다. 이렇듯 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 집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지나온 거처를 떠올리지 않기는 힘든 일 일 것이다.


나의 기억은 집이라는 물질적 환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정한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집의 형태, 구조, 배치, 마감재, 색깔, 빛의 방향, 심지어 벽 귀퉁이의 흠집 같은 것이 기억의 일부로서 나의 서사를 형성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98쪽


나는 책을 읽으며 지난날 거쳐왔던 집에 대해 꾸준히 생각했다. 그곳은 늘 ‘집’은 아니었고 대부분은 ‘방’에 가까웠지만 크기와 상태에 상관없이 그 공간 속에서 펼쳐 보였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차곡차곡 겹쳐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책을 덮으며 종이에 그동안 머물렀던 곳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부산 남구 대연동, 진구 가야 2동과 서구 서대신동, 처음이자 마지막 하숙을 했던 서울 마포구의 하숙집, 부모님의 값진 노동으로 캐나다 벤쿠버에 얻게 되었던 집, 대학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주소 란에 읍면동을 썼던 세종시 조치원읍 신안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프랑스에 머물며 살았던 파리 외곽의 작은 동네 쀠또(Puteaux)와 파리 중심에 자리한 4구 마레, 이후 서울로 돌아와 동교동과 서초동, 논현동을 전전했던 자취 생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방학마다 단기 임대로 누군가의 공간을 빌리거나 기숙사를 제외해도 13군데였다.



그중에 내가 온전히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역시나 고향에 있는 부모님 집밖에 없다는 건 씁쓸한 사실이지만 집이든 방이든 그렇게나 많은 곳에 나의 과거와 삶이 묻어 있다는 사실은 내게 이 글을 연재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198쪽


집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쓴다. 그 시작은 피카소 미술 학원을 다니던 유년시절의 내가 기억하는 부산시 남구 대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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