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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20. 2023

약과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탁월함을 만드는 한 끗의 힘


  “약과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하지만 ‘그 유명하다는 약과,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하기 위해 지난 주말 함덕해안도로를 내달렸습니다. 명절도 아닌데 난데없이 약과타령인 이유는 갑자기 우리 집에 ‘약과귀신’이 하나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서 한 번 맛보았는지 딸아이가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나오면서 내일은 ‘미니약과’를 먹고 싶다고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은 천지개벽할 정도로 드뭅니다. 왜냐하면 우리 딸은 입이 짧기로는 6세 아이 중 제주시 1 등가는 아이일 것이니까요. 영유아검진을 하면 키, 몸무게는 매번 뒤에서 100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처참함을 보여줘 왔습니다. 반색하고 당장 다음날부터 테이블 위엔 ‘미니약과’ 전용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야금야금. 딸아이는 등원 이전, 하원 이후 하나씩 곧잘 하나씩 꺼내먹었습니다.     


  ‘딸내미 1kg 더 찌우기’가 연중 과제인 우리 집은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습니다. 딸아이가 자발적으로 주전부리를 챙겨 먹다니요. 그러다 보니 몇 번 먹으면 설탕의 단맛이 경솔하고 경망스럽게 치고 나오는 편의점표 미니약과보다는 떡집에서 찹쌀가루로 제대로 반죽해서 만든 건강한 고급약과를 먹이고 싶었습니다. 그때 퍼뜩 떠오른 것이 제주도에도 지점이 있다는 줄 서서 먹는다는 ‘약켓팅’의 주인공! 장인의 손길로 유명한 그 약과점이었습니다.   

  


  멀리 약과가게가 보입니다. 여름날 에메랄드 빛 영그는 함덕해안을 따라 차들이 양쪽에 줄줄이 서있었습니다. 주변엔 별다른 관광지나 다른 시설물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이 약과가게를 위한 차량들로 보였습니다. 실로, 약과가게 요거 하나가 집객파워가 엄청나네요.

  우리가 가게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디올 컨버스 백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가는 임산부 한 분, 걸음이 느린 아이를 들쳐 매고 들어가는 아저씨 한분이 우리 앞줄을 척! 꿰차셨습니다. 남는 게 시간이다 하며 여유 부린 우리였지만 괜히 서둘러봅니다. 앞쪽으로 대기 약 5명. 다행히 줄은 그리 길지 않았고, 대부분 포장손님이라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안내판에 이런 문구를 발견한 것이지요.

  ‘중고판매 등의 우려가 있어서 음료 1개당 약과 2개로 판매를 제한한다.’ 구요. 약과 2개를 사려면 음료 1개를 필히 함께 구매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제학적으로 ‘음료 끼위팔기’가 행해지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약과 3~4개를 사려면 어쩔 수 없이 음료 2잔을 사야 하는 식이지요. 이해가 안 되는 약과가게의 판매정책은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공장사정상 부서진 모양의 약과만 판매하고 있으니 양해 바란다는 공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상품성이 없는 ‘파지약과’만을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니, 공장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 가게엔 부서진 파지약과만 파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왜?, 잘 담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상품성 없는 걸 다 줄 서서 사고 있지?’

  마음은 이미 삐딱하게 15도 기울어졌습니다. 맛없기만 해 봐라 벼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래저래 19,000원을 결제하고 가게를 나옵니다.      



  궁금함에 참을 수 없어서 약과 한 팩을 차 안에서 뜯었습니다. 계피 향 솔솔, 달달한 집청의 향이 비닐을 뜯자마자 뭉근하게 풍깁니다. 일반 미니약과보다 검붉은 색감에 청이 충분히 스며들어 표면은 에나멜 구두처럼 반질반질하게 식욕을 잔뜩 돋우는 모양새입니다. 한입 베어 먹으면 느껴지는 이 쫄깃한 식감! 조청과 찹쌀의 찐득한 만남이 선사하는 환상의 콜라보! 입 안엔 흡사 단감을 먹을 때 느껴지는 그 아련하고 은은한 단맛이 꽉꽉 들어찹니다. 아메리카노와 먹으니 몇 개를 먹어도 단 맛에 질리지 않았습니다. 딱딱하지 않고 쫀득쫀득하게 입안을 감싸는 달콤함에 계속 당깁니다. 확실히 이 맛은 일반 떡집에서 먹는 약과보다 맛있었습니다. 큰일입니다, 남편과 나는 딸내미 주겠다고 산 약과 한 팩을 벌써 절반이나 먹어버렸습니다.      


  “아! 자존심 상해.”

  가게의 이해 못 할 운영정책에 맘이 상해, 내심 ‘거봐, 약과가 거기서 거기지!’ 같은 멘트를 당장 꺼내들 준비를 했었습니다. 한식대첩 심사위원들처럼 깐깐하게 식감과 단맛의 세기 등을 분석하려고 벼르던 찰나였습니다. 근데 이 맛은 우리의 KO패. 완패. 너무 맛있었습니다. 필시 이 한 끗 다른 약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반죽과 집청의 재료 혼합비율, 튀김의 시간, 집청을 재울 때의 온도와 습도 등 엄청난 비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멀리까지 바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며, 손님이 불편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열게 하는 원동력일 것입니다.    

  


  타임 화이트셔츠 ‘46만 5천 원’, 셔츠하나에도 한 끗 핏의 차이가 4~50만 원의 가격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손예진의 엘리사브 웨딩드레스는 ‘한화 3,100만 원’. 천편일률로 보이는 드레스 디자인이지만 약간의 ‘느낌’ 차이가 수천만 원의 가치를 좌우합니다. 매일 15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나는 특히 ‘김애란 작가’가 낚아내는 일상 속 아련한 활어의 말맛을 위해, ‘허은실 시인’이 아삭하게 무쳐내는 이야기를 읽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립니다.  그 한 끗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온리 원. 그것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감각이 예민한 자만 포착할 수 있는 작은 차이라 해도 그들은 ‘약간의 탁월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별러야 할까요.     


  제주도에는 그 한 끗 차이를 위해 오늘도 많은 사장님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골목식당’에 출연한 서귀포 돈가스 사장님은 새벽부터 출근하여 돼지고기 힘줄을 제거하시겠죠. 동문시장의 크림빵 제빵사들은 다양한 제주도 특산물을 공수해다가 매일 다양한 종류의 크림을 만드느라 꼬박 시간을 쓰겠지요. 그들의 노력이 있기에 기꺼이 성지순례와 오픈런에 동참합니다. 그분들이 있기에 제주는 오늘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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