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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23. 2023

제주도 전입신고를 거절당하다

모두에게 시작은 어려운 법

 “주소이전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주에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 마을주민센터에서 전입을 거절했습니다. 뜻밖의 단호한 거절이었습니다. 과밀화가 걱정인 수도권이 아닌 다음에야 지역자치단체 간 인구유치 경쟁이 있는 거 아니었나요?  

    

 사실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행정업무처리에 다소 게으른 이전 주인이 아직 우리 집 주소지에 세대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죠. 상황은 백번 이해가지만 전에 살던  ‘보령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얼떨떨했습니다. 보령시는 ‘10만 인구 사수’가 지상과제여서 서울특별시에서 전입을 희망한다고 입을 떼자마자 주변 반경 10m가 환대의 분위기로 가득 찼습니다. 담당자는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내게 세상 반가운 표정으로 대천김, 머드화장품, 에코백 등 각종 특산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것도 두 박스나! 내심 이 순간 내가 그리던 전입신고 모범답안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제주의 삶은 제게 ‘로망 그 잡채’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제주발령에 더 이상 주말부부가 지신이 없었던 저는 이참에 꿈에 그리던 환상의 섬에서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보자는 마음으로 직장경력을 포기하고 대차게 휴직을 감행한 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날은 괜히 시작부터 꼬이는 것 같아 풀이 죽었습니다. 상황자체가 쉽게 너에게 주민의 자격을 주지 않겠다는 어떤 ‘적대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딱히 환대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괜히 또 자격지심, 못난 마음을 발동해 봅니다.

  ‘제주도에 텃세가 그렇게 심하다더니...’     


 사실, 생각해 보면 시작은 제게 때로, 아니 항상 버겁습니다. 뭔가 쉽게 되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쉽게 지나갈 것 같았던 주소이전 마저요. 생소한 환경, 모종의 텃새, 소외감, 능력부족, 기대와 다른 현실 등등 처음의 순간을 힘들게 하는 요인들은 너무 많습니다.      


 

 전학 첫날, 첫 쉬는 시간. 그 시끌벅적한 가운데 나 혼자 섬처럼 고요하게 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성장드라마 ‘반올림’에서는 누군가 전학을 오면 관심과 사랑이 싹트는 분위기던데, 이상과 현실의 갭 차이를 이렇게 살벌하게 체험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목받는 것 같아서 화장실도 못 가고, 묵언수행으로 6시간을 풀로 채운 후 하교를 하니 온몸이 안 쑤신 데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다음날 아침까지 침대 위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그러곤 또 다른 고통의 시작.      


  첫 출근. 패기 가득 찬 연수가 끝나고 부서배치받는 날이 되었다. 새벽 내내 어떻게 하면 신입사원으로서 첫인상을 좋게 가져갈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덕분에 그날 제가 이 건물에서 가장 빨리 출근도장을 찍었을 겁니다. 멋진 인사말을 준비하고, 선배님들 이름도 외워놓고, 친화력을 위한 적당한 농담까지 완벽히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큐였고, 실상은 노 필터 환장스토리였습니다. 너무 바쁜 부서라 아무도 신입을 데리러 오지도 환영해 줄 여유도 없어 보였습니다. 모두들 살벌한 레이저 눈빛으로 컴퓨터만 노려봅니다. 제자리엔 컴퓨터나 읽을 매뉴얼도 없어서 정보시스템실에서 조치를 취해주실 때까지 하루 종일 면벽수행하며 신문을 읽었습니다. 세상에, 교도소 독방이 이래서 더 힘듭니다. 게다가 한참 뒤 바로 윗선임이 이렇게 살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수인계는 컴퓨터 파일로 하는 거야”

  네, 전 그때부터 스스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만 했습니다.      



  이 뿐만일까요. 그간 얼마나 많은 시작의 순간들을 기대감에 대한 좌절, 어리숙함에 따른 쪽팔림, 능력부족에 따른 자괴감, 텃새에 따른 외로움과 싸워야 했나요. 첫사랑은 내 눈치 없음으로 인해 말아먹었고, 첫 대외활동은 이미 친분관계에 있던 타 학교학생들 사이에 끼지 못해 혼자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래, 시작은 힘든 거야!”라며 선언했습니다. 다 그런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니 조금 마음이 편해집니다. 음원사이트에서 ‘시작’을 검색하면 두곡의 ‘메가 히트곡’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이태원클라쓰 OST 속 ‘가호(Gaho)’의 곡이고, 하나는 ‘박기영’의 곡입니다. 모두 시작의 설렘과 열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 이면엔 피 철철 나는 실수의 경험과, 나름의 눈물 나는 생존적응기가 깔려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시작하는 여러분, 비단 당신만 괴로운 건 아닐 테니 함께 힘을 내 보아요.   

   


  “오늘 친구들이 아무도 안 놀아줬어”     


 하원길, 소위 어린이집의 ‘핵인싸’ 딸이 뜻밖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제주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신학기 첫날. 어린이집 선생님은 점심 즈음 저에게 따로 전화까지 하셔서 딸아이의 적응을 걱정하는 나에게 안심을 시켜주셨습니다. ‘잘 적응하고 있으며 첫날부터 낯가리는 것 없이 공룡장난감과 논다고 신났어요.’라고.

 분명, 그 말도 참 말일 겁니다. 하지만, 구김살 없이 사람 좋아하는 딸에게도 새 어린이집의 학기 초는 버거운 하루였나 봅니다. 처음 겪는 새로운 환경의 벽.     


  “아이야, 우리 녹아들 때까지 조금 시간을 들이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소외감이 처음 말을 걸어오는 친구인 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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