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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l 03. 2023

지각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직장생활 비(悲)스토리

 출퇴근 첫 파트너는 지하철 2호선이었습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 두 입구를 든든하게 이어주는 2호선은 베테랑 출퇴근 맛집 사장님 같은 면이 있어서, 밀어닥치는 수많은 손님들을 능숙하게 착착 실어 날라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같은 시각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 회사 앞으로 신속배달 되었습니다.      


 그래도 출퇴근길은 곤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건너간 다음, 인파 속에서 한참을 출렁출렁이다 앉을만한 자리가 날 즈음되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듯 을지로 입구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하루의 시작, 이제 출근했는데 진이 벌써 빠졌습니다. 시계를 보면 오전 8시 28분. 당시 회사의 출근시간 지침은 9시 30분이었지만,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일찍 가는 것은 예의였습니다. 출근시간에 임박해 도착하면 선배들의 헛기침 세례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2014년 당시는 ‘꼰대들의 전성시대’였으니까요.      


 물론, 한 시간 이상 일찍 출근을 해서 유난을 떨었던 것은 100%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일찍 가야 혼자만의 업무시간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본격적인 업무시간이 ‘땡!’하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팀장님과, 타 부서의 호출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개인메일과 전자공문 수신문서에 벌써 많이 차오른 각종 업무지시를 맥을 짚듯 천천히 파악하려면 일찍 출근하는 건 불가피했습니다. 야근은 또 싫었습니다.

 캬, 지금 생각해도 모범적인 신입직원의 마인드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오, 너 의외로 진국이야’이런 말 듣는 걸 좋아해서 ‘보여주기 식’으로 그랬던 앙큼한 마음 같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잘난 동기들 사이에서 제 무기는 ‘성실’ 단 하나였거든요. 


 당시엔 직장생활 ‘적응’에 온 정신이 팔려 휩쓸려 다녔습니다. 그 때문에,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나 자아성찰이란 고차원적인 감정에 휩쓸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매일 돌아가는 쳇바퀴에 보폭을 맞추기도 버거운 신입직원, 그 시차적응의 기간이 한 6개월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마포 합숙소로 이사를 갑니다. 

이로써 두 번째 출퇴근 파트너는 지하철 5호선이 되었습니다.

 마포역에서 광화문역까지. 나루터에서 청계천 사이를 이어준 5호선은 호텔출신 콧대 높은 사장님 같은 면이 있어서, 저 아래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5 정거장 찔끔 기별도 안 가게 태워주고는 교통비를 챙겨갔습니다. 역에서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듯했습니다.      


 여전히 출퇴근길은 곤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의 불합리에 눈을 떴거든요. 아침, 곤장에 사지가 묶인 듯, 침대 속으로 침잠하는 몸뚱이를 붙들고 ‘연차 낼까’를 수십 번 고민한 끝에 출근 발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출퇴근 행진곡은 에픽하이의 ‘Born Hater.’ 다크 한 스모키향의 비트와 속사포 랩으로 온갖 사회죄악과 부조리를 부르짖고 나서야 조금은 출근할 맛이 났습니다. 

 ‘님이 18년도! 쯤에 날 보면 지금 이런 말 못 할 걸’

 캬. 지금 가사를 떠올려도 시원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100% 자발적으로 일찍 출근해서 유난을 떨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포 합숙소는 여자 동기 5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일찍 일어나야 대기하지 않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5호선은 일찍 가면 내릴 때까지 앉아서 가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오, 너 의외로 진국이야’이런 말 듣는 걸 좋아해서 ‘보여주기 식’으로 그랬던 앙큼한 마음도 있었고요.   


        




 이런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것은 한 독립사업의 담당자를 맡아 진행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관계기관과 MOU를 체결하는 업무였는데 저의 첫 단독 ‘기획업무’ 였습니다. 바야흐로 부서 ‘쩌리’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개무량 그 자체였습니다. 황송한 마음에 유사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고, 판을 키워 시행계획을 세웠습니다. 반응이 꽤 괜찮았습니다. 덩달아 신이 나서 새벽 3시까지 자료를 만들었고, 보고라인에서 추가되는 아이디어도 무리해서 수용했습니다.      


 “이야, 우리 부서에서 젤 열심히 하네.”

 부장님의 기습 사무실 방문. 그때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것은 바로 ‘나야 나♪!’ 홀로 열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부장님께 노출한 것입니다.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거기다 당시 결혼준비까지 함께하면서 주변 동료들은 모두 저의 바쁜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잦은 야근에 출근시간도 야금야금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출근에 대해서 모종의 암묵적 ‘까임 방지권’을 가졌다고 생각했거든요. 야근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신임 이사님의 급 출근점검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메일을 받았습니다.     

 

 ‘다음 메일을 받는 분은 불시 출퇴근 점검결과, 출근시간 이후 출입기록이 확인된 분들입니다. 

 일차적으로 소속 부장님께 소명한 후 사인받아 사유서를 제출하십시오.

 규정출근시간: 9시/ 기록시간 9시 13분.’     


 ‘오 마이 갓!’ 대차게 지각을 했으면 덜 억울했을까요. 알아보니 우리 부서에 지각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대통령의 먼 친척이라는 소문이 있는 차장님, 그리고 나. 

 둘은 함께 부장님 방으로 끌려갔습니다. 참담한 마음으로.      


 “그래, 왜 지각한 거야?” 

 어쩐지 온화한 느낌으로 부장님께서 물으십니다. 당시 저는 ‘야근을 했고, 지하철이 연착되었고... 어쩌고...’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차장님이야, 대통령이 먼 친척이라는 소문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부장님께선 저에게도 한없이 다정한 눈빛을 보내셨습니다. 어쩐지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가 맘에 걸렸습니다. 찝찝했습니다.      




 그 찝찝한 마음은 조만간 실체를 드러냅니다. 

 바로 평정을 통해서요. 당시 저의 직장은 공공기관으로 조직 전체가 한꺼번에 정부로부터 받는 경영평가 외에도 개인 성과평가가 강도 높게 매겨지기로 유명한 조직이었습니다. 반기마다 직속 팀장님과 부장님의 손에 직원전체가 S부터 E까지 성적을 받습니다. 그간 경력 없는 여자신입직원으로서 E 최하점수를 받으며 다른 선배직원들을 깔아주다 드디어 기획업무를 맡아 조금 살림살이 나아지나 싶던 찰나였습니다. 


 결과는? 

 개인성적평정: D


 이후 책잡힐 일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근태시간을 엄수했습니다. 사실, 지각은 사실(fact)이기에 항변할 수도 없었습니다. 부장님을 마음껏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부장님과 동문이라는 다른 직원에게 제 점수를 몰아주신 게 아닐까 하는 모종의 의심은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단 한 번의 지각이었지만 규정위반이었습니다. 이는 그간의 숱한 야근시간을 한방에 무용하게 만드는 파워가 있는 것이지요. 


 이후, 저는 정기인사이동으로 부서이동을 했습니다. 이 부서는 신문 스크랩을 해야 했기에 출근시간이 한동안 6시 이전으로 당겨졌습니다. 한 5시 50분쯤 도착해 팀장님을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팀장님은 흐뭇해하셨습니다. 그 이후 어떠한 야근이 이어지더라도 스스로에게 출근시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 발등을 찍는 일이란 걸 뼈저리게 알았거든요.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래야 직장생활 핀잔도, 원망도, 뒷담화도 맛있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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