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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오 Oct 03. 2022

출산에 대한 썰을 풀어드립니다.

인간이 겪어서는 안 될 고통, 2편


열 달 동안의 긴 임신 기간 중 나를 가장 괴롭힌 빌런은 그 흔한 입덧도 아닌 다름 아닌 눈 다래끼였다.

살면서 눈 다래끼가 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이 질환은 임신 7개월 차에 들어설 때부터 시작해 모유 수유를 끝내고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거진 10개월을 나와 함께 동거 동락하며 임신하면 눈 다래끼라는 공식으로 영원히 죽을 때까지 내 기억 저편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놈만 아니었어도 둘째를 가져볼까 하는 마음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져볼 만도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에 하나 눈 다래끼가 또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둘째 임신은 없는 걸로.

(아이도 중요하지만 내 몸뚱이도 소중하니께요..)




양쪽 두 눈의 위아래 할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개가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니 늘 내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통증은 차치하고라도 눈곱이 끼고 항상 눈에 뭔가 덮인 것 마냥 답답해서 만사가 귀찮을 지경이었다. 눈이 불편하니 몸의 움직임 역시 제약이 생기고 그에 따른 높은 긴장감으로 늘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감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희소식이라면 출산 후 입원 기간 동안 계속해서 소염제, 항생제를 투여받기 때문에 아마도 눈 다래끼도 호전되지 않겠냐는 담당 주치의 이야기에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실낙 같은 희망이 결국 대실망 감으로 다가오는 게 인생의 참 재미 아니겠는가?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항생제 너 따위, 드루와 드루와!!)


진통을 겪으며 온 몸과 얼굴에 힘을 줄 때면 그 울통 불퉁한 눈들이 마치 터져버릴 것 같아 그것이 더 걱정이 되었다는 남편만의 출산 에피소드를 들으니 참 쓴웃음과 함께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내 두 눈이었다.




출산 후부터는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가는 안과마다 모두 모유 수유가 끝나면 오라는 통보만 듣고 오기 일쑤였다. 애를 낳고 난 후 6개월간은 그저 찐득하게 붙어버린 눈을 겨우겨우 닦아가며 새벽 밤낮을 불문하고 수유를 하느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니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

그렇잖아도 면역력이 떨어져 눈 다래끼가 난데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절대로 좋아질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이유로 모유 수유를 강제 중단하게 되었고 한 편으론 드디어 눈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순 있단 생각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치료 과정의 고통은 또 다른 어려움으로 기억된다.




눈 다래끼를 '짼다'는 표현으론 설명이 부족하고 '눈을 후벼 판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대여섯 번의 시술 후 더 이상은 째지 말고 바르는 약과 먹는 약으로 치료하기로 하며 대망의 다래끼 치료가 끝이 났는데,

지금에서야 가장 후회가 되는 부분은 다래끼가 주렁주렁 열린 내 몰골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기간 동안 셀카를 찍지 않은 탓에 아기와 함께한 사진이 다섯 장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내 꼴은 비록 그렇더라도 나의 첫아기와 함께한 소중한 6개월이었는데, 다시 못 올 그 시간을 오롯이 내 머릿속 기억으로만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 내심 속상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수유등에 의지해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더듬 더듬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린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자리에 앉아 둘만의 교감으로 가득했던 그 순간들.

그때의 공기, 냄새, 촉감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감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 가는 게 느껴지는데 사진으로라도 남겼더라면 조금이라도 오래도록 이 감각들을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하루빨리 치료를 받고 싶단 생각에 모유 수유를 서둘러 중단해 버린 것도 아기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난 여전히 그 무엇보다 내 몸 아픈 게 제일 싫은 사람인 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라고들 하던데, 난 왜  몸이  중요한 것인지 모성애 같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모성애.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혼자  진지충이 되곤 한다.


애를 막 낳았을 때에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내 눈에 사람을 넣어. 난 절대 못해.'


그리고 조금 키워보고 나서는,

'그래, 눈에 넣을 순 있겠어. 하지만 너무 아플 것 같아.'


그러면 도대체 언제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이 된다는 말인가?




-번외, 내 남편의 부성애 이야기-


우리 부부는 어떠한 특정한 상황에 서로를 놓아보고 그 상황에 쳐했을 때 각자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에 대한 시물레이션을 종종 돌려보곤 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인데.


바야흐로 때는 아기가 막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

상황 1 : 만약 여보가(나=와이프) 아기를 구하다 죽었다 쳐. 그럼 난 나중에 애한테 '너 때문에 네 엄마가 죽었어.'라고 원망 섞인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상황 2 : 반대로 여보가 살고 아기가 죽었어. 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하진 않을 것 같아. 원하면 새로 아기를 갖자고 할 것 같아.


그리고 아기를 조금 더 키운 시점.

남편 왈 1: 부모 대신 죽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겠어.

남편 왈 2: 와이프 대신 죽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렇다고라고 할 수 있지.

남편  3: 자식 대신 죽을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죽을 수도 있고, 어떠한 말로도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겠어...'


우리 남편의 부성애는 날로날로 커져만 가는데.



[황제펭귄 사진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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