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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22. 2022

00. 커리어 회고 (Prologue)

지극히 개인적인 커리어 회고

“경력은 사다리가 아닌 정글짐이다.”
LEAN IN-Sheryl Sandberg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커리어에 대한 통찰이 담긴 한 문장이다.

린인(LEAN IN)을 읽으며 처음 저 문장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를 위로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서비스 기획을 정석으로 배우지 않고, 이것저것 주어진 데로 업무를 진행하다 정신 차려보니 서비스 기획 포지션이 되었다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었다.



시각 디자인 학부에서 일러스트와 편집 디자인이 좋아 동화책 출판사에 지원했지만, 최종 실기 면접에서 탈락하고 나의 첫 직장은 일러스트 아르바이트로 인연을 맺게 된 선배님들이 운영하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였다.

이전까지는 관심도 없던 UX/UI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졸업한 시각 디자인 학부에서는 UX/UI 디자인에 대한 커리큘럼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웹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한 학기 정도 수업을 들은 게 전부였다.

실무를 하며 UX/UI를 익히고, 부족한 인력에 기획 업무를 함께 보게 되면서 나의 커리어는 점점 UI 디자이너에서 서비스 기획자라는 타이틀로 바뀌어 갔다.


서비스 기획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사수도 레퍼런스도 없는 상태에서 관련 서적들을 읽어가며, 인터넷에서 기획 템플릿 문서들을 살펴보면서 서비스 기획에 대해 배워갔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한 UX 컨설팅부터, 경쟁 PT에서 프로젝트를 따오기 위한 제안서 작업, 상위 기획 등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사업 기획의 일부를 경험해 볼 수도 있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무모하게, 용감하게 부딪히며 깨지며 배워나간 나의 첫 직장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남겨주었다.


https://brunch.co.kr/@han-na/2



직접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해 보고 싶어 합류하게 된 스타트업에서는 디자인 팀 리더로 브랜딩 디자인부터 서비스 디자인, 콘텐츠 디자인 등 전반적인 디자인 업무를 책임지게 되었다.

다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돌아와 시각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On-Offline의 서비스 경험적인 측면까지 디자인하는 프로덕트 총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디자인 팀의 팀장으로 서의 역할, 서비스(프로덕트)에 대한 방향과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PO로서의 역할(그때는 PO라는 타이틀이 흔히 사용되지 않을 때지만), 계속해서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병행하며 정말 열심히 서비스를 만들었고, 나의 한계와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비스 오픈 이후에 미약하지만 J커브를 그리는 경험도 해보았고, 서비스 방향을 Pivot 하며 매출을 올리는 소중한 경험도 해보았다.

몰입의 경험이 뭔지 알려준 스타트업 씬의 2년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만든 서비스는 퇴사 후에도 남은 멤버 분들의 노력으로 잘 성장하여 유지되고 있다.


https://brunch.co.kr/@han-na/3



보다 서비스 기획에 집중하고 싶어 이직하게 된 중견 IT 회사에서는 서비스 기획부터 PM(Project Manager)의 역할을 아주 진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해온 서비스 기획이 User Side에서의 고민만 있었다면, 이때서야 비로소 개발자들과 제대로 협업하며 서비스의 구현에 대해 이해하고 기획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 구현을 위한 상세 정책과 예외 케이스들을 정의하고, 구현 과정에서 이슈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 조율하며 기획 의도를 설득하고, 때로는 일정과 공수를 고려한 Plan B로 타협하며 서비스를 고도화시키는 경험을 진하게 맛보았다.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시점도 이 시기였던 것 같다.

퇴사 직전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에서는 컨소시엄 형태로 1년간 외주 개발사 포함 약 40여 명이 넘는 인원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매니징 하면서 신규 서비스를 론칭한 경험은 전 직장에서의 마지막 1년을 갈아 넣은 알찬 시간으로 기억된다.


https://brunch.co.kr/@han-na/4



지금은 글로벌 IT회사에서 핀테크 서비스의 UX를 담당하고 있다.

좀 더 UX에 포커싱하여 깊게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이제야 1년이 지난 짧은 기간이지만,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새삼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의 새로운 미션은 글로벌 User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국가별 정책과 문화, User사용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기획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협업에 있어서도 글로벌 멤버들과 일하게 된 만큼 일하는 방식이나 스타일, 언어가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돌이켜 보면 에이전시에서부터 스타트업을 거쳐 글로벌 IT회사 까지, 디자인에서 기획-사업-PM 지나 UX에 집중하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 온 것 같다.


인생 만화 중 하나인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의 슬램덩크에 ‘신현철’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키가 작았던 그는 가드부터 포워드, 센터까지 키가 자라며 코트의 세 포지션을 경험하며 슬램덩크 세계관 내 최강 팀인 산왕의 주장이자 고교 NO1. 센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배구 선수 김연경 역시 배구를 시작할 때는 작은 키로 공격보다는 수비에 집중하는 포지션이었다고 한다.

키가 작아할 수밖에 없던 수비 연습이 추후 키가 자라며 공격과 수비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특별한 선수로 그녀를 만들었다.


여러 포지션에 대한 경험이 한 사람을 얼마나 독보적인 선수로 만드느냐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여러 포지션을 경험한 것만으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포지션을 담당하게 될 때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는 것, 단순히 경험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경험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습득해온 사람만이 돋보적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나의 발자취는 어떠했을까?

새로운 포지션,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때마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동안의 과정은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내려 온 시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넓은 구덩이의 폭을 날카롭게 좁혀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찰나,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그동안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스스로 이 질문에 자문하고, 앞으로 나의 커리어를 어떻게 뾰족하게 다듬어야 할지에 대해 회고를 해보려 한다.

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헤매지 않고 가능하면 빨리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첫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중견 IT기업으로 이직을 위한 면접 때 들었던 질문이 있다.

“그래서 한나님은 디자이너예요? 기획이에요? 사업이에요?”

어렴풋한 기억에는 “시장에서 인정받고, User에게 도움이 되는 퀄리티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뉘앙스로 대답했던 것 같다.


결론은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 사용자에게도 회사에도 가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

그 과정에서의 나의 역할에 크게 제한을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살기 하나쯤 가지고 있는 전문가이고 싶다.

프로덕트를 총괄하는 PO이건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PM이건 User에 집중해서 UX를 고민하는 사람이건,

그 안에서 나만의 필살기를 가지고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 회고록 시리즈를 마무리할 때쯤엔 어렴풋이 To-Be의 내가 좀 더 그려져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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