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경험을 느끼게 해 준 스타트업 씬의 2년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제로베이스에서 한 땀 한 땀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에이전시에서의 신규 구축 프로젝트는 초기 기획부터 시작해 서비스를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서비스 오픈 이후 내 손을 떠난 서비스는 그 이후의 운영 상황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서비스를 만들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서비스를 어떻게 유저들이 사용하고 성장시킬지까지의 고민을 하고 싶어 스타트업 Co-Founder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평소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동화책을 좋아했기에 아동 콘텐츠 관련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찰나, 유아 놀이 교육 콘텐츠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스타트업의 제의가 들어왔다.
대표님을 만나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고민 없이 바로 이 신생 스타트업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직장 대비 연봉도,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은 리스크가 있는 결정이었지만 서른이 되기 전에 온전히 내가 주도하여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이때가 아니면 쉽게 뛰어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리게 된 결정이었다.
초기 멤버는 마케팅과 사업을 담당하시는 대표님,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콘텐츠 전문가, Front-end와 Bank-end 개발이 두루 가능한 개발자, 그리고 UX/UI와 전반적인 디자인을 담당하는 나 이렇게 4명이었다.
각자 분야의 R&R이 명확했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한 땀 한 땀 서비스를 만들어 나갔다.
공용 오피스에서 하루는 10 to 7의 규칙적일 일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번 아웃의 무서움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너무 달려서 번 아웃이 오는 일이 없도록...)
몸이 오피스에서 머문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서비스를 생각하는 시간에는 따로 구별을 두지 않았다. 아니 구별을 둘 수가 없었다. 눈 뜬 후부터 눈 감기까지 하루 종일 서비스를 생각했다. 이동 중에, 퇴근 후 집에서, 주말엔 카페에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만큼 초기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비스에 애정이 갔고, 업무 시간엔 자리에 앉아 작업을 하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점심이 되고, 저녁이 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이때 체험한 몰입의 경험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첫 beta 버전 서비스를 내놓게 되었다.
Beta 버전을 준비하며 회사의 CI, 서비스 BI, 주요 캐릭터와 서비스 아이덴티티 등의 전반적인 브랜드 디자인에서부터 Beta 서비스의 기획, UX/UI 디자인을 담당하였다.
디자인을 1,2년 넘게 손 놓은지라 원하는 퀄리티만큼 손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과물들이 100%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서비스에서 시각적인 디자인의 완성도는 당장의 우선순위가 높은 작업은 아니라 판단하고 주변 디자이너 지인들의 피드백을 받아 가며 1차적으로 브랜딩을 정리했다.
(서비스 개발을 완료하고 디자인 인력이 정비되면 브랜딩 리뉴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때 정리한 브랜드 디자인 요소가 아직도 서비스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후 아이의 연령에 맞는 놀이&육아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서비스 핵심 콘셉트에 맞춰 MVP Beta 버전 웹 사이트를 만들어갔다.
Beta 웹 서비스에 콘텐츠를 올리고, 기존에 대표님이 운영하던 육아 커뮤니티를 통해 콘테츠를 바이럴 해 나갔다. 커뮤니티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그만큼 Beta 웹 서비스의 방문자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콘텐츠가 엄마들에게 통한다는 것을 검증하고 실질적인 애플리케이션 제작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의 웹이 연령별 콘테츠를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모아놓은 콘텐츠의 허브라면,
앱은 보다 개인화된 정보를 통해 아이의 연령에 맞는 콘텐츠를 매일 새롭게 추천하는 타임라인 형태의 콘셉트를 가지고 UX/UI를 설계했다.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앱은 조금씩 가입자 수와 Active User를 늘려갔지만, 매출로 이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 없는 상황이었다.
트래픽을 통한 광고 수입보다는 직접적인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였고, 우리 서비스의 콘텐츠 색깔에 맞게 아이와 함께 놀아줄 수 있는 놀이 교구를 제작하게 되었다.
놀이 교구 제작 역시 테스트를 통한 검증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대량으로 교구를 만들어내기보다는 펀딩을 통해 우리가 만든 교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 먼저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결과는 펀딩 실패, 반응은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했다.
초기부터 우리 서비스를 사용해 애정을 가진 User들이 교구 패키지를 구매해 주었으나 의미 있는 매출로 이어지진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처음 제작해 본 교구 패키지가 생각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자 문제점 분석에 들어갔다.
엄마들을 타깃으로 한 놀이 교구 패키지인데 너무 전문적인 지식과 어려운 내용의 콘텐츠가 교구 사용의 허들을 높였다는 자체적인 판단을 하고, 교구 사용을 쉽게 해 줄 추가 콘텐츠를 제작해 서비스를 통해 무료 학습지 형태의 추가 패키지를 제공했다.
오프라인 교구를 구매하면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추가 콘텐츠를 더 받아 볼 수 있게 하는 모델이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추가 콘텐츠인 활동지를 받기 위해 서비스에 방문하는 User의 수도 늘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콘텐츠 서비스에서 교구 패키지 판매로 확장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게 되었고,
서비스 상단의 Beta Icon을 제거하고 본격적인 서비스 운영에 돌입했다.
서비스의 핵심인 아이 연령별 콘테츠를 모두 제작하고 난 뒤에는 오프라인 놀이 교실을 열어 우리의 콘텐츠를 직접 부모와 아이들이 체험해 보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해 보았다.
놀이 교실을 운영할 새로운 사무실을 구해 주말마다 부모와 아이들에게 놀이 교육을 진행했다.
놀이 교실이 진행되는 동안 부모와 아이를 관찰해 1:1 맞춤 놀이 솔루션을 앱을 통해 제공하는 형태의 서비스 모델이었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며 놀이 교실에 만족해하는 부모님들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초기 우리의 리소스로는 (속된 말로)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오프라인 교구 패키지를 구매하면 온라인 콘텐츠를 추가해서 보내주는 교구 패키지 모델 쪽에서 좀 더 반응이 온다고 판단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교구 패키지 제작에 리소스를 많이 투자하기 시작했다.
서비스의 확장 방향을 오프라인 놀이 교실에서 온라인 콘텐츠와 오프라인 패키지가 융합된 교구 판매 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틀고 나갔다.
서비스 디자인의 UX/UI부터 오프라인 교구 패키지 디자인까지, 이제는 혼자서 모든 디자인 작업을 감당하기 벅찬 시점이 왔을 때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프로덕트 디자이너, 오프라인 교구 패키지 디자이너, 바이럴 영상을 제작할 영상 디자이너를 순차적으로 채용하고 '팀'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료 디자이너들이 생겼다.
교육 콘텐츠 팀 역시 제작해야 하는 콘텐츠가 늘어남에 따라 콘텐츠 전문가들을 추가로 채용하였다.
물론,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함께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그저 나이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직접 사람을 채용해 보니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신규 채용 인력과 기존 인력 간의 갈등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갈수록 패키지 디자인 쪽으로 업무가 집중되다 보니 R&R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맡은 '팀장'이라는 직책을 통해 나의 한계가 드러난 시점이었다.
팀장인 내가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과 팀원들에게 분배해야 하는 업무가 다른데, 팀원에게 일을 주면 나도 그만큼의 똑같은 일을 하고 거기에 추가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하고 멍청한 판단이다.)
패키지 디자인 작업은 단순 그래픽 작업이 많았는데, 하루 종일 그렇게 작업을 하고 나면 정작 중요한 서비스 방향성이나 디자인을 잡는 일은 항상 뒤로 미뤄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나의 한계를 몸소 경험하고, 다행히 디자인 팀의 업무도 R&R에 따라 어느 정도 루틴을 찾아갈 때쯤,
나에게도 pivot, 회전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프로덕트가 기본적인 기능들을 갖추고 난 이후에 서비스는 프로덕트 UX/UI의 우선순위보다는 오프라인 패키지 판매에 중요도가 올라갔고, 나 역시도 오프라인 패키지 제작에 리소스를 가장 많이 할애하고 있었다.
직접 프로덕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을 해보니, 보다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에이전시에서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 이직을 결심한 것처럼, 그렇게 나의 두 번째 회사이자 첫 번째 스타트업과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출산을 앞둔 지금, 드디어 그때 만든 서비스를 User로서 제대로 써볼 수 있는 시기가 온다.
임신 중부터 간간히 콘텐츠를 받아보고 있지만 이 서비스의 핵심 콘텐츠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육아 콘텐츠이기 때문에 출산 이후 나의 아이와 함께 놀이하는데 이 서비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내가 만들었던 서비스가 User로서 나에게도 보템이 된다는 것이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 새삼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도 서비스를 잘 키우고 성장시켜주고 계신 기존 멤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