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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leehan Jun 24. 2018

나는 네 차에 올라탄 몇 번째 여자야?

sandwich 

 




1.

나는 네 차에 올라탄 몇 번째 여자야?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궁금해 하면 한 사람을 잊는건 티셔츠 한장 어깨뼈에 걸치는 것보다 쉬운 일이 된다.

사람 취급 한 장 없이 덜컥 하고 나를 내던지던 그 아이는 여지없이 내가 없이 살아왔던 삶처럼

번쩍거리고 우월하고 차갑게 돈종이를 깔고 앉아 푹신하게 웃으면서 잘 살겠지 그게 얄미워서라도


멍청하고 건방지긴. 여기가 무슨 미국이야?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진짜 너한테는 네가 사는 세상이 미국이겠네 싶어서 아 미국은 미국이겠구나 . 하긴 그래서 너는 내가 '미국이야?'라고 묻는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구나.

하기야 누가 나한테 여기가 무슨 한국이야? 라고 하면 갸우뚱 할 것 같긴 하다. 

너가 밟고 서있는 보도블럭 한 조각을 누군가는 떼어 안고 오고 싶었을걸 너는 그걸 평생 모르고 살겠지만 그래도 죽어서 차가운 땅에 묻힐 때면 너는 나보다 양 옆으로 열 뼘 쯤은 넓은 땅에 묻혀서 네 후손들이 뿌리는 맑은 술에 명절마다 무덤 마를 일은 없겠다만 어차피 너나 나나 눕는 곳은 다 차가운 땅속일텐데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삶이 찬란할 적에 누군가에겐 꿈인 도시에서 너는 햄버거를 씹고 술을 마시고 게워내고 오줌을 갈기고 침을 뱉고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다 했을거 아냐. 부러운 새끼.

나는 네 차에 올라탄 몇 번째 여자야? 절실 하지도 않은 말을 괜히 한번 허공에 붉게 목놓아 찢어놓았다.

나는 네가 안고 싶었던 몇 번째 여자야? 나는 네가 자주 먹던 휘낭시에를 알고 있던 몇 번째 여자야?

나는 네가 진심을 흉내낼 수 있었던 몇 번째 여자야?


코가 뜯어질 듯이 유난히 추운 겨울날 원두 가루를 뒤집어 쓰고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로 너 아닌 다른 남자를 서툴게 좋아할 적에 그 때. 저울질이라는걸 해보기도 전에. 너라는 하찮은 추를 쇠접시에 올려보기도 전에.

쿵 하고 나를 무서워 하던 누군가가 내 마음에 떨어지는 바람에 너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을때 그 때. 

아마 그때가 내 평생에 가장 현명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미 내 평생 가장 현명한 선택을 번복하면서 깨달은 재미있는 사실은 세상 가장 현명한 선택을 번복하면 세상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멍청하게 하루 하루를 짓이기고 있다. 일종의 벌을 받는 시간들인 것이다.








2.

나이가 들면 최선을 다해서 멍청해지는게 현명한거라고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

나보다 여덟살 나이가 많은 남자는

내가 늙기 싫어하는걸 우스워했다 . 나는 그게 화가 나서 그 남자한테 나는

"하긴 너는 계란 한 판 하고도 계란 한 알이 남잖아 어차피 그럼 비어있는 판 하나가 더 있어야 그 남은 한 알도 끼워넣을 수 있을걸 ? 그러니까 너는 판이 두개. 육십살 인거나 마찬가지야."

"그럼 너도 서른살이나 마찬가지야?"

"아니지 무슨 소리야 나는 한판도 아직 다 못 채웠잖아. 한 판이면 충분해. 스물 세 알."

입모양으로 이십삼 이라고 뻐끔거리면서 양손으로 손가락을 각각 두개. 세개를 펼쳐보이며 말했다.



우리는 실없이 웃었다.

그 날 밤에는 서로 세상에서 제일 우울하기 자랑을 하다가 마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샌드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샌드위치 말고 다른 샌드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대마초를 일컫는 은어가 샌드위치라고 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색이 온통 뒤섞이는 이야기, 시간이 엄청 느리게 간다는 이야기 이를테면 엘레베이터가 1층에서 7층에 도착하는데까지 70분처럼 느껴진다고 했던 이야기. 

"그럼 한 층 올라가는데 10분 정도로 느껴졌다는거네? 그럼 그 날 너가 샌드위치에 취한게 아니었고 단지 엘레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진짜 70분이 걸린거였으면 어떡해? 약에 취하면 뭐가 허구이고 실체인지 분간이 안될거 아냐."

" 진짜 그런걸 수도 있겠지. 근데 중요한건 내가 그날 그 순간에 그렇게 느꼈다는거야. "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끄 라깡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 

"그거 참 너랑 어울리네 욕망이론 같은거 너 그런거 좋아했을거 같아 왠지." 

귀를 자른 화가의 이야기. 

"너는 그 화가가 귀를 잘라서 좋아하는거지. 안잘랐으면 안좋아했을지도 몰라 . 근데 고흐가 자른건 왼쪽 귀야오른쪽 귀야? "

"아마 왼쪽 귀 일걸? 그런데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이 세상에 완벽하게 대칭인 사람은 없어." 


나는 그 남자를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있는건 어쨌든 그 남자도 별 게 아니다.

왜냐하면 누가 날 무서워했을때 나는 그게 참 비참했었던게 기억이 났다.

과거의 나처럼 그 쓰레기 새끼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서 혼자 카레를 먹으러 가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아도 크게 아쉬워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 또한 그게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고 나의 8년 후는 저렇게 한심하고 순수하고 결이 매끄러운, 어둡고 끝없는 지하터널 같아 질까. 결이 매끄러운 어둡고 끝없는 지하터널 같은 사람은 마찰이 없기 때문에 지하로 고꾸라지는 속도를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애를 보면 느껴졌다. 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는 것. 결국 길고 긴 대화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구원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내 혀가 너무 무겁고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박박 지우려고 했던 핏자국을 그 애는 쾌락이라고 하는 말에 아 그래 맞아 어디서 읽었는데

그건 중독성이 있대. 사실 자기강박과 자기학대는 뇌과학적으로 아주 쾌락적인 중추와 연결되어 있어서 ....

말끝을 흐리자 마자 내가 깨달았던건 아무리 그래도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기 싫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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