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택시와 연초
도착 8분 전
주섬 주섬 휴대전화를 꺼내고서는
나는 지하철 타기를 포기했다
급하게 어디론가 가야할 일이 생긴 것이
무척 반가웠지만
조금이라도 준비가 늦어지면 나는
택시를 타야 하고 그러면
부른 택시를 길에서 기다려야 하고
9786 9786 내가 부른 택시 번호를
9786 9786 되뇌이면서
그러면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동작대교를 건너야 하고
그 곳에 겹겹이 쌓인 그 모든 추억을 만나야 하고
나란히 팔을 스치듯 덜컹이며 지나는
4호선 열차를 바라봐야 하고
그 동작대교에 흐르는 낭만을 다시 마주보아야 하고
그러면 네 얼굴을 떠올려야 하고
도착 6분 전
나는 담배 한개비를 꺼내 물었다.
맞바람을 반대 손으로 돌려 막고서는
파다닥 붙여진 불씨에
네 기억을 들이마셨다
그 작은 불씨에도 단숨에
발그레해진 연초 끝을 보면서 언젠가
내 얼굴도 이렇게 쉽게 타올랐던가 하면서
그러면 나는 우리의 시작을 떠올려야 하고
처참하게 사랑에 빠졌던
한손에 돌려잡던 네 손깍지의 감각이 느껴져야 하고
도착 3분 전
언제나처럼 다 태우지 않은 담배는 바닥에 떨어지고
아직 뻘건 불씨는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았다.
허나 나는 이내 외면하고는 발끝으로 비벼 끈다
언제 타고 있었냐는 듯이
납작하게 죽어있는 담배를 보면서
그러면 나는
다 태우지 못 할거면서
금방 꺼트릴거면서
왜 그렇게 나를 쉽게 집어들었는지에 대해
내 사랑의 실패를 떠올려야 하고
미쳐 다 타지 못한 시간들을 기어코 손에서 떠나보내며
고작 한 개비의 무게에 숨이 막혀
서글퍼져야 하고
도착 1분 전
나는 한창 타던중에 바닥에 떨궈진 꽁초처럼
옆으로 힘없이 누워 얼굴을 붉혔다
불씨가 애 먼 곳에 번지지 않게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리고는
다 탈 때까지 이대로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너는 툭 하고 나를 버려두고 길을 떠났고
나는 그 자리에 누워 뻘건 얼굴을 하고서
마음에서 왕왕대는 서러움에
너가 떠난 자리를 한참이나 흘겨보았다
왜 차라리 나를 즈려 밟아주지 않았느냐고
왜 나에게서
그렇게 예쁘게 떠나갔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