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l Jan 01. 2022

세상이 나의 사투에 관심이 없을때

겨울의 어느 덕수궁

눈 오는 덕수궁의 행각
덕수궁 정전, 중화전
석어당 앞에서 선조를 떠올렸던 고종
고종은 딸이 있는 준명당으로 건너가 글을 보고 필묵을 하사했다


덕수궁은 조선사에서 두 번 쓰였다. 의주 파천에서 돌아온 선조의 임시 거처였고, 아관파천 이후 이차한 고종의 마지막 자리였다. 304년의 간격이 있지만 원인은 같다.


고종도 선조를 떠올렸다. 고종은 선조가 승하한 석어당 앞에서 선조를 말했다. 300년 전에도 조선을 지켰다. 그의 뜻을 계승하겠다. 고종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2년 뒤 명성황후는 살해당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시대가 있다. 고종이 선조보다 무능해서만은 아니었을 거다. 때로 운명은 개인의 사투와 무관하다.


그러나 어떤 사투라도 흔적을 남긴다. 예순다섯의 고종은 준명당을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옹주는 8살 때까지 아버지와의 추억을 남겼다. 1907년엔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에서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다. 100년 뒤 후손들은 중명전에서 헤이그 특사 특별전을 열었다. 슬픔이 아닌 의지의 공간으로 기억했다.


무력한 오늘의 사투도 어딘가에, 누군가에, 언젠가는 남을 것이다. 덕수궁을 걸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