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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Apr 24. 2021

나와도 친하지 않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우리

<그녀(HER)>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찬 2018년 여름이었다. 반팔셔츠가 땀으로 다 젖었다. 박시한 핏에 통풍도 잘되는 옷이었지만 역시 나는 땀이 많은 타입이었다. 따르르릉. 전화가 들려왔다. 어. 난 잘 지내지. 추억의 장소 몇몇 군데를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보였다. 난 딴 세상에 있었다. 으으. 땀이 너무 많은건 힘들어. 두드러기때문에 온 몸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푹 쉬어야지. 영혼이 담긴 듯 안 담긴듯한 통화를 끝냈다. 후다다닥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누군가가 보였다. 눈을 저 멀리로 피해버렸다. 여기서 보다니.


누구에게나 창피한 기억은 있다지만 나에겐 영원히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난 나눌게 없는 사람이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걸까.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었다. 부끄러운 기억 몇개가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군. 그 사람은 날 봤는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 같았다. 등 뒤로 돌았다. 큰 도로변에 있어서 다행이야. 많은 사람들 사이로 슥 지나갔다.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에 있어서 보이질 않았다. 저 사람도 날 마주치고 싶지 않겠지. 그런걸 떠나서 불편한 건 어쩔수가 없다고. 버스 정류장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냈다. 음악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없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을 켰다. 누군가가 올린 스토리 게시글을 눌렀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였다. 네가 별게 아니라면 세상도 별게 아닌걸로 받아들여.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은 문구라서 공유했겠지만 그냥 난 창을 황급히 닫았다. 아니면 어떡하지. 내가 생각하는게 틀리면 어떡하지. 나 혼자만 그 사람을 오해했던 거라면 어떡하지. 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불확실한 물음과 함께 버스를 탔다. 버스는 차도로 쌩쌩 달렸다.




<그녀>는 타인에 대한 이해에 관한 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하는 일을 한다. 누군가의 입장을 대신해서 진심을 전하는 역할이다. 테오도르는 이 업계에서 인기가 많다. 글을 잘 쓰기도 하고, 공감능력도 나름 괜찮아서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런 주인공의 재능과는 별개로 테오도르는 아내와 별거중이다.  이 현실과 직업의 괴리때문에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던 도중,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인공체계 사만다가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통 속 안에 있는 외로움을 터놓지 않는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만이 유일하게 열려있다. 전 부인에게 얻었던 상처부터 일상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별의 별걸 다 사만다에게 털어놓는다. 주인공은 듣는걸 잘하는 사만다를 좋아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일반적인 커플들이 하나 둘 씩 할법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테오도르는 여러 암초에 부딫히기 시작한다. 사만다가 실존인물이 아닌게 굉장히 중요했다. 주위의 시선이 곱지 못할거라는게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할 정도로 전 부인 캐서린은 이에 경악한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이 관계가 옳은건가에 대한 회의감이 머릿속을 가득찰 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이에 관한 어떤 질문을 하게 되고 이내 깨닫게 된다. 나(테오도르)는 대상을 객체로만 바라보고 주체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주위 사람들이 이에 적지 않게 상처받았다는걸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주인공과 친구 에이미가 태양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마무리된다. 쓴 바와 같이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건 영화 안에서 이루어진 사랑은 없다는 것이었다. 주인공들은 보고싶은 대로만 본다. 그 사람을 주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영화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풀어낸다.


첫번째.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말을 잘 들어줘서 좋았던거지 대상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운영체계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그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례보다 중요한 부분은 업그레이드 되는 동안 먹통이 되자 당황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만다가 운영체계라고 하더라도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 당황하고 힘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사만다가 생각했을때 자신이 사랑받아야 할 이유가 단순히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라면 맥이 많이 빠질거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모습이 강제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사람 자체의 모습이 아니게 되고, 머지 않아 관계에서 좌절할수밖에 없다. 테오도르는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 이전에 타인의 부재와 자기 자신의 허전함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한 한계에 부딫힌거다. 단순히 사만다가 실존인물이더라도 러브스토리가 순탄하지는 못했을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번째. 테오도르는 앞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아내와 다시 재결합 할 수 없다. 주인공은 이혼서류에 왜 도장을 찍어야하는지 몰랐다. 과거를 회상하더라도 즐거웠던 시간만 기억했다. 일단 단면적으로 아내가 자기의 어느 부분에 힘들어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는 듯한 인물로 나온다. 이는 엔딩부분 주인공의 회한에서도 드러난다. 틀에서만 맞추려고 했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대사이며 영화가 말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앞의 두가지, 관계에서 미끄러진 이유가 이 공통점을 가지며 이것을 실제로 깨닫고 나서 태양빛이 비추는 엔딩으로 작품이 끝난다는것이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러면 생각해 볼 수 있다. 감독이 생각하는 관계와 이해, 외로움이란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는것이 아닐까 추론해본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한가지에 붙박혀있으면 그것만 보여지기 마련이다. 있는 그대로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거야 말로 새로운 깨달음이고 관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건 이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오랫동안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관계에서 좌절했다. 왜 이런 일들을 겪은걸까 생각해봤다. 나를 믿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상대방은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또 A상황에서 B라는 해결책이 통한다고 해서 모든 곳에서 다 적용되는건 아니라서 무조건 옳다나 틀리다라는 식으로 답해선 안된다.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때문이었다. 틀릴수도 있고 옳을수도 있다. 난 만약 틀린다면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자신의 어느 한 구석도 다 받아들이지 못해서 나는 내 생각대로 세상을 받아들인 것 같다. 누군가를 정신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서라면 나를 지지하는게 먼저다. 순서가 맞아야 내 외로움도 인정하고 타인도 받아들일 줄 아는 거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영화들이 재개봉할 때 이 작품을 봤다. 이 영화를 보고 어느 순간 잊어버렸던 철 없는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나는 어땠을까.  누구를 지지할 때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메세지 하나하나를 알게 해주는 <HER>은 참 좋은 영화다. <조커>와 <마스터>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보여주는 파괴적인 연기가 아닌, 로맨스 장르에서의 와킨 피닉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래를 연기한 배우지만 모든 이들의 현재를 확인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로맨스장르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 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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