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Apr 24. 2021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대란걸 알기에’

<노매드랜드>

오늘은 공부하기가 싫었다. 외우던 단어책을 덮었다. 배고프다. 라면 끓일까? 아냐. 라면은 안 먹어도 될거같아. 그저께 <레 미제라블>을 봤었다. 오늘은 약속이 없다. 막학기를 맞은 대학생이란 이렇게나 심심하다. 올 봄 샀던 옷들을 입고 나가볼까. 여행을 못간다는건 이렇게 갑갑하다. 아예 그 맛을 안들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과 함께 신발을 신었다. 뭘 할지도 생각 안했다. 그냥 무턱대고 앉아있는거다. 이번달 통신사 무료 영화표가 있었다. 이번달에 보려고 계획했던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메가박스엔 상영관이 없다. 롯데시네마는 그냥 안간다. 딱 안성맞춤이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 계획이 순조롭게 지나갔다.


저벅저벅. 버스에서 내렸다. CGV가 있는 시청에 멍하니 서있었다. 돌아다니고 싶었다. 아무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자주 가던 꽈배기집이 있었다. 저기 1000원치고 맛있었어.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삼삼오오 누구와 함께 가고 있었다. 누구는 연인이었고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익숙한 장소가 몇개 보였다. 아. 여기서 누가 알바했었는데. 누구는 또 무슨 일을 했었는데. 오랜만에 오는 시청이었다. 가까이 가기 싫은 곳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영원한 건 없었다. 나도 변했고 세상도 많이 자랐다. 여기 근처 살던 형은 잘 사려나. 있을 때 잘할 걸 그랬나봐. 또 어떤 술집을 지나갔다.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는 걸 잘 못하는 나는 불필요한 오해도 만들어봤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생각났다. 세상에게 하고 싶었던, 속에 있는 말이 많았는데 말이지. 상영시간이 되자 다시 CGV로 돌아갔다. 영화가 시작 할 시간이었다.


<노매드랜드>는 돌아다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초반 도입부부터 아마존에서 근무하는 여자 주인공의 삶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 고장나기 5분전인 밴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화장실은 차 안에 있는 페트병으로 해결한다. 하루 벌어서 하루 끼니 해결한다. 이렇게 고정적인 집이 없는 탓에 주위 사람들의 걱정도 많이 산다. 어떻게 사냐는 말에 어찌저찌 산다고 대답할 뿐인다. 사실 주인공 펀은 말이 좋아 유랑하는 사람이지 홈리스에 가깝다. 자그마한 밴에서 자다가 부지 관리인에게 들켜 쫓겨나기도 하는게 부지기수다. 펀은 어렸을때 부터 이런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펀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자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펀을 기다리는 공동체가 있었다. 같은 노매드들이었다. 영화는 이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갈등이나 화합의 장면이 없다. 그냥 단순히 보여줄 뿐이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객이 함께 같이 사는 것 같은 경험을 안겨준다.


난 이 영화의 이런 연출지점이 참 좋았다. 펀에게 동정심을 갖지 않는 연출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는 펀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세상과 아예 멀어진 사람은 아니다. 그녀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나오기는 하지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느냐? 아니다. 좋은 일도 없지만 부정적인 사건이 영화에 나타나진 않는다. 펀과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영화는 이런 평탄한 각본을 통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꼭 좋은 일이나 나쁜일만 일어나야 삶인건 아니다. 감독은 연출을 통해 이런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이해해서 이 영화가 좋았다. 동정심을 갖지 않는 화법은 이런 이점만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다른 특이점을 갖는다.


어울려 산다는 것. 영화는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지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들 그렇겠지만 주변사람들과 허구한 날 싸우면서 살진 않는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과 항상 무언가를 공유하며 산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영화 안에선 별의 별 사람과 이에 알맞은 일상들을 보여준다. 먼저 떠난 아들을 기리기도 하고, 그릇을 깨먹기도 하고 또 신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삶을 보여주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한 부분에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부분을 제외하곤 영화는 우리 일상에 있을 법한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난 감독이 이 연출지점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극적인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던 사람이 공감할거다. 그런데 에피소드를 통해 이해를 돕는것이 아닌 일상을 보여주는 화법을 썼다. 이렇게 같이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는건 '그래. 나도 저렇게 좋은 주위사람들이 있었지'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일거라고 생각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만약 없다면 이 사람은 미래에 무슨 사건을 겪어 사연이 생길 예정일테지.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상처를 감당하고 이겨낸 후의 입장일거다. 영화는 이렇게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공통점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시끄러운 속사정을 최소화하고 현재에 집중해 관객에게 '당신이 겪는 소소한 힐링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 후반부의 명대사 '영원한 안녕이란 없다. 언젠가 꼭 만나게 될 테니까'란 대사도 주인공과 한 인물이 대화하다 나온 말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대부분의 기쁨은 관계에서 온다. 영화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를 괄호치고 현재만 보여줘서 우리에게 어울려 산다는게 어떤 힘을 주는지를 말해준다. 신선한 화법이다.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지 않고 '그래. 나도 저런 사람이 주위에 있지' 생각이 들게 하는거다. 그것만으로도 난 기분이 좋아졌다. 노매드랜드는 이런 특장점을 가지고 우리의 내면에 다가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상에게 하고 싶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우리는 주위에 누군가가 있어서 살 수 있다.  그것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 얼굴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직 작별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가 이 생각에 힘을 보태줬다. 이 영화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 쯤이면 서로 웃으면서 볼 수 있겠지. 좋은 영화다. 아마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나처럼 함께 있거나 떠나보낸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이유가 있는 작품이었다. 볼까말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마 메이저 시상식에서 적지 않게 상을 타게 될거다.









이전 07화 사랑은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