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Feb 25. 2024

모두의 시린 겨울을 달랠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바튼 아카데미> 스포일러 없는 리뷰


  


남겨진 사람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족 없이 독수공방 하는 역사 선생님 폴 허넘(폴 지아마티)이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이브. 폴이 소속한 고등학교는 이미 방학을 하고도 남았다. 텅텅 빈 학교. 학교가 비었다는 의미는 폴에게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바튼 아카데미’엔 남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다른 주인공 앵거스(도미닉 세사)였다. 당연히 앵거스 혼자만 남은 건 아니다. 여러 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학생과 걸핏하면 싸우는 앵거스. 앵거스는 여러모로 골칫덩어리였다. 크리스마스인데 내가 얘를 봐야 해? 폴에게 스트레스가 팍팍 쌓인다. 귀찮아 죽겠는 건 폴도 마찬가지지만 앵거스도 선생님이 좋진 않다. 학생들에게 있어 비호감덩어리인 폴 선생님. 귀찮은 사람 한명 더 추가다. 둘을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메리 선생님이 급식실에 있다. 메리 선생님도 딱히 방학 중에 일하고 싶지 않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데, 메리, 앵거스, 폴은 서로 보기만 해도 꼴 보기 싫다. 과연 세 사람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느낌 알잖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서 맡아본 향기라는 점이다. 솔직히 이런 영화 어디서 본 것 같다. 버려진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 (아예 딴판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생각난다. <브로커>같은 영화들 대안가족에 대해 다루고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연대와 유머, 감동을 갖춘 영화는 뭐 비단 두 영화와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아주 많다(크리스마스로 국한 짓지 않아도 있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우리가 아는 맛 그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적절하게 터지는 유머와 영화의 톤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충분한 것이다.


그 이면을 꾹 눌러보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견지해 온 필모그래피의 특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그 특성은 깊숙한 인간관계 탐구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디센던트>가 생각났다. <디센던트>는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두고 세 명의 딸과 아버지가 펼치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부녀가 함께 힙을 합쳐 가족 간의 정을 교류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디센던트>가 마냥 연대만 강조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챙겼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이야기를 아이러니로 끌고 간다. <디센던트>와는 당연히 다른데, 대안가족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이 <바튼 아카데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의 엔딩이 묵직하게 다가가는 이유도 이 아이러니의 의미를 영화가 잘 고수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글쓴이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씨네랩 감사합니다!)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새로운 유형의 크리스마스 클래식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글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리 앞에서 파티를 여는 모습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키면 친구들이 스토리에 자기 나름대로 그 파티 현장을 올리기도 하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를 다루기도 했다. 영화는 그 두 가지를 다뤘다. 우선 전자, ‘우리 현실에서 맞이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기본 설정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친구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이 다수인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인간이라면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외로움을 더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기본 설정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외로운 사람들의 내면을 다룬다. 그리고 폴과 앵거스가 이끄는 차의 뒷자리에 앉게 유도한다. 차에 동승함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건 캐릭터들이 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음들을 느끼고 있다는 공감과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안이다. 또 후자 ‘크리스마스 파티’도 다룬다. 이는 전자와는 반대되는 성격인데, 글쓴이는 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묘사하는 방식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파티에 관한 부분이 어떻게 반복되는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급식실 아주머니, 도시락 반찬 가득히


그냥 일반적인 코미디, 가족영화로 읽어도 충분히 좋은 영화인 <바튼 아카데미>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바로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이다. 메리라는 인물의 아들과 관련한 설정을 제외하면 '그냥 2022년'이라고 하고 밖에서 마스크 끼는 인물들로 배경을 설정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근데 왜 하필 1970년대로 설정했을까? 바로 이 영화의 화면의 질감과 음향 연출을 통한 고전적인 향취 때문이다. 글쓴이는 보면서 왜 <황무지>와 <졸업>, <택시 드라이버>가 생각났을까? 그 이유는 화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식에 있다. CG로 사람도 딥페이크로 구현하는 현세대에서 인간관계성을 탐구하는 것도 아날로그틱한데 영화의 형식까지 그 형태를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예고만 봐도 고전적인 향기가 짙은데 실제 작품 안에서도 이를 충분히 구현한다. 어떤 장면에서? 글쓴이는 이 영화 안의 눈밭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인물들이 눈밭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1970년대 할리우드의 향기 그 자체다. 이렇게 영화가 이야기와 장면의 형식을 일치하게 연출한 것이 이 <바튼 아카데미>를 두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룬 성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 거기 서라


이렇게 감독이 영화의 장면 연출과 촬영, 편집을 딱 맞게 만들었다는 뜻은 이 영화를 확실하게 통제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크다. 글쓴이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 감독이 만든 세계 하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이 <바튼 아카데미>가 시네마의 의미 그 정확한 지점을 찔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오펜하이머>에서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에서 볼 수 있던 것이었다. 규모의 관점에서 판이한 두 영화가 어떻게 공통점을 갖냐고? 바로 결과물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오펜하이머>에서 컬러로 된 이야기 / 흑백으로 된 이야기가 별개로 전개되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부딪혀서 쾅 터지는 지점이 있지 않나? 이런 것들은 <오펜하이머>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연출이었다.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판타지물이 많은 현대에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오리지널 한 인간의 감정들을 이야기로 삼겠다는 것이 영화의 포맷이다. 그러려면 1970년대 이야기를 갖고 오는 게 좋겠지? 이왕 아날로그를 다룬다면? 이에 대한 결론이 모인 집합체가 <바튼 아카데미>다. 이게 단순히 <오펜하이머>가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철저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바튼 아카데미> 최고야’라고 주장하는 걸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아쉬웠던 영화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더 필요한 게 있지 않았을까? <바튼 아카데미>나 <오펜하이머>는 그런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모순(<오펜하이머>)과 사람 사이의 연대(<바튼 아카데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아카데미가 이 <바튼 아카데미>를 수많은 후보군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편집/각본상에 노미가 됐는데 뭐 모든 부분에서 시상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바튼 아카데미>가 받는다고 해도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대이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가지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작품/편집/각본이 아닌 두 분야는 남주/여조다. 각각 폴 지아마티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인데, 이 두 사람 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여우주연상 후보인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다. 당장 강력한 상대는(글쓴이가 생각하기에)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의 조디 포스터다. 하지만 그나마 뽑자면 그런 거지 사실 거의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는 이 영화에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왜 유달리 든든할까'라는 점을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설득력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행보에 주목해서 영화를 본다면 큰 감동을 느끼실 것 같다. 남우주연상 후보인 폴 지아마티도 상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BAFTA(영국 아카데미)와 SAGA(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킬리언 머피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다.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어떻게 해야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연기다. 앵거스 역을 맡은 도미닉 세사와 시시건건 충돌해야 강조되는 것을 잘 체화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언가 보여주는 건 많은데 기억에 남는 건 없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