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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un 03. 2024

강동원 배우의 얼굴만 믿고 설계한 것 같은 '설계자'

<설계자> 스포일러 없는 리뷰


모델 겸 저승사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검은색 옷 입고 다니는 남자 영일(강동원)이다. 키 크고 얼굴 조막만 하고 잘생겼다. 누가 보면 모델 지망생정도 되는 사람일 것 같지만 아니다. 영일의 직업은 설계자다. 살인처럼 보일 수 있는 사건을 사고로 위장시키는 게 영일의 일이다. 혼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팀원이 있다. 중년의 여성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이다. 매번 찾아오는 의뢰에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영일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의뢰를 해결하는 영일의 팀. 모든 사건을 설계자로서 좌지우지한다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영일의 팀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함과 동시에 우연한 사고로 꾸며달라는 요청이었다. 사건을 의뢰한 사람은 주영선(정은채)이다. 이 주영선이 누구인가?라는 점이 영일이 받았던 사건들과 의 특이점이다. 바로 주영선은 검찰총장 후보자의 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고위공직자가 되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건인 걸 직감하는 영일. 하지만 시선이 많다는 걸 오히려 역이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런 영일의 바람과는 다르게 일은 점점 꼬여간다. 설계자의 존재를 설계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영일의 정체. 이 모든 악행을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


<설계자>를 설계하다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쓰고 싶은 것은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잘 구현됐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핵심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는 신선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건을 조작하는 주인공(영일)에 관한 영화다. 그럼 1차적으로 사건을 조작할 수 있을까/그렇지 않을까에 대해 서로 대립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지 않을까? 영화는 이 1차적인 목적을 충분히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가령 영화에서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많다. 이 선택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이 마무리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는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영화가 인물의 욕망을 단순하게 짠 편이라 영일의 시점만 쫓아가도 이야기의 표면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영화의 리듬이라는 측면에서 쓸데없이 늘어지는 장면이 많음에도 대략적으로라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까이 있고 그만큼 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재키(이미숙)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사실상 재키가 이 영화에 작동하는 모든 모티브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티브? 바로 정서다. 이 영화에서 누가 설계자고 설계자 머리 위에 누가 있고 주인공 영일과 대결하는 흑막이 누구고 이런 거 별로 안 중요하다. 물론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본질이 아니다. 다시 돌아와서. 재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 재키의 동선이 영일에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사실상 영화의 플롯이 이것과 동일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월천의 동선도 이해가 된다. 월천만? 점막과 이치현의 행보까지 영화가 같은 모티브를 인물에게 반복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거 놓치고 영화 보시면 솔직히 이게 뭔가 싶으실 것이다(사실 안 놓치고 봐도 이게 뭔가 싶으실 것이다). 그냥 단지 이 캐릭터들이 이 결론에 도달하는 걸 보기 위해 이 영화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다른 관점에서 관람하시는 걸 제안하는 바다.


설계자 맞아?


이 영화의 두 번째로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구성 방식이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 치고 굉장히 불친절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떻게? 어떤 관객들의 입장에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이게 뭐야?”라고 느낄 만큼 맥이 빠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일반적인 플롯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교훈극이 아니다. 여러 사건을 연이어 배치시켜서 이 일들이 만든 정서를 영화의 핵심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말이 좋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지 이 단점은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근원적으로 결함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 이유.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전적으로 다른 길만 골랐다. 상업영화의 큰 덕목이 뭘까? 기-승-전-결의 쉬운 플롯과 이에 따른 간단한 결과물이다. <범죄도시 4>나 <파묘> 같은 영화들이 작가로서의 개성을 포기하고 상업성을 택했다는 걸 많은 팬들이 기억할 것이다(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각본을 쓰는 입장에서 이 부분을 염두하고 싶었다면 그대로 가면 된다. 하지만 이 <설계자>는 반대다. 사건들만 연이어 보여줄 뿐 결론을 애매하게 지어 영화의 혼선을 스스로 만든다. 대표적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을 보면 후반부 전개와 아예 통으로 어긋난 것 같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단면을 보여준 다음 그 인물이 그렇게 말하면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에필로그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앞에서 한 인물이 했던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실 그 캐릭터도 똑같은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 안에 관객들을 속이는 속임수도 너무 많다. 하우저 TV(이동휘) 같은 캐릭터가 들어간 이유를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왜? 이 인물이 그렇게까지 필요한 인물이 아니니까. 이 인물을 대표하는 집단은 앞에 이미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 상에서 어떤 유효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이 캐릭터의 악행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리액션이 없는 수준이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병폐를 보여주기엔 연출이 생동감 넘치지 못했다. 물론 어떤 영화가 이런 할리우드식 전개를 쫓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상업영화라면 흔히 하는 말처럼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 설계자의 설계 치고 허점이 너무 많다. 이 허점을 하나하나 다 손꼽기엔 너무 많아 적기도 힘들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나만 써보자면, 영일이 기획하는 모든 설계에는 3자가 개입해선 안 된다. 어떤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그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는 시기도 새벽녘이 아니다(새벽녘이어도 그 근처에 사람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부 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단지 거기에 그 사람이 단 한 명만 있단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선 설계자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일이 설계자라는 것 치고 인간관계성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부실하다. 그나마 재키와의 관계가 특별한 것 말고는 이 사람의 용인술은 극을 이끌기엔 터무니없다. 설정을 뒷받침할 만 당위성을 영화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유. 이 영화에서 현실을 다루는 방식은 굉장히 낡았다. 예를 들어보자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내용은 이 고위직의 후보로 임명되는 과정을 다 담았다고 보기엔 어렵다. 대통령은 뭐 하고 여, 야 정치인들은 무얼 하는 걸까? 법무부장관은? 이 인물은 본인의 직업인 검사를 잘 활용하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냥 단지 영화가 1차원적으로 줄거리를 전개하기 위해 해당 직업만 가져오니 인물의 개성도 납작해지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재키도 마찬가지고 월천도 마찬가지고 이치현도 마찬가지다. 이 인물들을 둘러싼 가장 핵심 설정이 이 영화의 사건들과 계속 대치되는 감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약간 갈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담고 싶은 건지. 장르적으로 재미있고 싶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건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채로 기능적인 전개만 돋보인다. 각본 상에 있는 설정들이 상호 간에 충돌하며 '서로 틀렸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음향 믹싱이다. 플롯이 친절한 것도 아니고. 어떤 캐릭터는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이물감이 심한 영화에 음향까지 안 들리는 건 영화를 더 조악하게 만드는 요소다. 대표적으로 글쓴이는 탕준상 배우가 말하는 거 못 알아들었다. 이 인물 입에서 중요한 대사가 몇 있는데도, 그걸 강조하는데도 못 알아들었다. 탕준상 배우가 비교적 신인이라? 글쓴이는 강동원, 이미숙, 이종석 배우 같은 베테랑의 입에 나오는 대사도 못 알아들었다. 특히 강동원 배우가 맡은 영일 캐릭터는 감정선이 납작한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저음으로 대사를 전달한다. 믹싱 상태가 좋았어도 안 들린다는 사람 많을 텐데 그마저도 안 좋으니 잘 안 들린다. 그래서 글쓴이가 세 사람을 돌이킬 때 후반부 이미숙 배우의 개인기를 보여주는 장면 말고는 “두두두두”만 생각난다.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싶고 장력이 팽팽하려고 해도 영화가 그럴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가 불친절하고 사건마다 개연성이 얼마나 헐렁한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설계자>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헐렁한 이야기 틀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배우가 있다. 바로 김신록 배우다. 이 영화의 조악한 믹싱에도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지 스스로 보여준다. 가령 이치현(이무생)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이 인물은 별다른 연출이 필요 없다. 그냥 말투와 눈빛처리만으로도 이 영화가 기획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대 역인 이무생 배우가 광기를 숨기는 캐릭터라면 이 인물은 광기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사회화된 광기여야 적합하다. 그럼 목소리 톤을 높이는 대신 눈을 이용해서 몰아붙이는듯한 연기가 좋겠지? 이 배우는 그걸 그대로 구현한다. 우리가 알던 김신록 배우의 퍼포먼스와 그렇게 멀리 떨어진 모습은 또 아니지만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난다는 점에선 기록할 만하다. 


여전히 4번 타자


이 <설계자>가 개봉하는 현재까지 강동원 배우는 계속해서 패전 투수를 자처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영화의 팬인 글쓴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비슷한 정도의 잘생김을 가지고 있는 누구는 광고모델로 전직했는데, 이 분은 아직도 영화배우잖아? 그래서 글쓴이는 현재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처한 입장이 궁금하다. 과연 좋은 시나리오가 오는데도 이런 선택만 하는 걸까  싶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대참패를 기록한다 하더라도 강동원 배우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강동원 배우의 퍼포먼스가 아쉽지도 않았다. 강동원 배우는 자기의 색을 깔끔하게 소화한다. 영화가 괴작이더라도 강동원 배우는 제 몫을 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강동원 배우가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를 표하고 싶다. 강동원이라는 이름 하에 <천박사 퇴마 연구소>나 <인랑>, <골든 슬럼버> 같은 영화들은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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