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Nov 18. 2024

그 어떤 상황에도 그 사랑을 결코 놓치지 말 것

<아노라> 스포일러 없는 리뷰



인생 역전의 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트립 댄서 애니/아노라(미키 매디슨)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애니가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열심히 사는 애니. 감정을 억누르고 손님으로 온 남자들을 응대한다. 현금이 없으면 "ATM기로 가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어떤 상황에도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 4대 보험 보장 안 되는 직장이더라도 성실하게 사는 애니.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손님이 나타났다. 딱 봐도 돈 많게 생긴 반야(마르크 예이델시타인). 반야는 애니에게 반했다. 반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애니. 그 짧은 순간에 서로 사랑에 빠졌다. 결코 그 사랑을 놓쳐선 안 된다. 반야를 놓치기 싫은 애니. 불안함이 가득할 때 장애물이 등장한다. 반야의 부모님들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아니 결혼을 해도 그런 애랑 결혼한단 말이야? 바로 부모의 부하인 토르소(카렌 카리굴런)에게 연락한다. "얘네 결혼한 거 없던 일로 만들어!" 토르소는 이고르(유리 보르소프)와 가닉(바체 토브마샨)과 함께 반야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그 어떤 상황에도 이 사랑을 놓쳐선 안 된다. 애니는 인생의 아노라를 만날 수 있을까?


션 베이커


올해 칸 영화제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글쓴이는 적지 않게 놀랐다. 션 베이커? 션 베이커가 경쟁 부분에 올랐다는 것도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황금종려상까지? 그의 영화 세계 자체가 사회의 주류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데다 미국사회의 허점을 찌르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바로 전작인 <레드 로켓>에서 백인 남성이라는 전형적인 캐릭터가 ‘난 애국자야!’라고 주장하는 장면은 간단한 비유를 의미하고 있다. 이 인물을 중심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표현하겠다는 야심을 보여준다. 이 야심을 바탕으로 미국 국기가 포장지로 등장하는 장면이나 할리우드라는 장소가 가진 상징성까지 남자 주인공의 전락은 미국사회와 겹쳐진다. 전전작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무니와 아이들은 세 명이서 몰려다니며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닌다. 또 무니의 어머니는 입에 욕을 달고 산다. 이렇게 애정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영화 전면에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단순히 저렴하게 웃기는 캐릭터들이 아닌데, 이렇게 소외계층으로 밀린 사람들이 받아야 할 인간적인 대우(복지)는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션 베이커가 보여준 인물 연출법이 있다. 바로 적당한 거리 두기다. 제삼자 캐릭터 바비를 등장시켜서 이 영화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 현실적이지만 이 인물들을 둘러싼 현실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션 베이커는 이런 식으로 얄밉게 영화를 만드는 인물이기도 했다.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국사회에 대한 냉정함을 공박하는데 머무름이 없다. 또 그러면서 영화라는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마음의 언저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션 베이커는 미국이 얄미워할 만한 필모그래피를 <아노라>에서도 그대로 이었다.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애니가 주인공이다. 애니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 처음 반야를 만났을 때는 뭔가 부끄럽고 쑥스러워하는 기색을 풍긴다. 이 인물이 중반부 찍고 내지르는 대사를 생각해 보면 인물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핼리가 무니를 대하는 다층적인 모습이 이 <아노라>에게 애니에게 그대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영화에서 인물의 가장 기본적인 배경이라고 볼 수 있는 성노동자라는 설정이 단순히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기 위해 사용된 건 아니다. <레드 로켓>에서 미국사회가 그동안 축적해 온 허영심을 드러내기 위해 포르노 배우를 직업으로 삼았다. 또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주인공 모녀의 인간관계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성노동자라는 직업적인 특성이 중요했다. <아노라> 역시 마찬가지로 성노동자라는 직업적인 성격이 영화 후반부에 강하게 감정적인 울림을 전달하기 위해 들어갔다. 다만 미국사회의 낡은 부분을 공격하는 건 줄였다. 인물에게 좀 더 집중해 감정적인 여운을 강화시켰다. 다만 이 특징이 션 베이커 필모그래피의 높고 낮음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강력한 무기에 션 베이커가 더 집중했다는 의미다. 이런 선택과 집중 덕에 션 베이커가 대중적으로도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고도 남는다는 입증이다. <추락의 해부>에서 쥐스틴 트리에가 법정물의 탈을 쓰고 감정적으로 질척거리는 걸 보여주듯 <아노라>에서 션 베이커는 감정적으로 깊은 구멍에 관객을 초대시킨다.


도파민


이 영화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중 하나는 ‘도파민’이다. 영화 전면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므로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주인공 애니의 직업이 뭐지? 바로 성노동자다. <아노라>의 첫 장면은 애니가 직업인으로서 일을 하는 모습이다.  또 영화 초중반부 애니와 반야를 묘사할 때 등장하는 수많은 성관계 장면이 주인공의 스트립 댄스와 같은 선상에 놓이기도 한다. 이 스트립 댄스를 보여주는 방식도 보면 적당한 거리를 주는 척하면서 별 이상한 제스처를 다 보여준다. 왜 이럴까? 이 영화가 상정하고 있는 성 노동의 의미가 그렇다. 사실 초반부에 영화에서 온갖 자극적인 게 다 나와서 그렇지 주인공 애니에게 그 모든 장면은 그냥 일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일’에 대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토로소의 첫 등장 장면이다. 이고르의 첫 장면도 엄밀히 따지면 이고르가 돈 받은 값을 하는 것 그 자체다. 이 모든 과정을 일로 묶는다면 이 <아노라>에서 베드신은 그냥 일의 한 단면이다. 


이렇게 시작한 영화 안의 성관계가 후반부에 이르러 어떤 결론으로 향하는지도 아주 흥미롭다. 영화에서 관계를 하고 나서 반야와 애니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이질적이다. 이 두 인물의 차이점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차이점은 중반부 기점 찍고 사실상의 진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과의 대화와도 두드러진다. 어떤 인물은 누군가와 육체적인, 성적인 호기심으로만 가득 찬 관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어떤 인물과는 반대다. 이 두드러진 차이가 영화에서 성노동자가 등장하는 게 필연적인 토대가 된다. 어떻게 보면 성노동자에 대한 세상의 혐오가 이 서사의 완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실제로 션 베이커가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넣은 거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행동들. 모든 자극적인 장면들이 이 영화의 마무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이 영화가 도파민을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전용기를 타면서 온갖 목청을 다 내지만 영화 안에 방점이 찍힌 장면이 어디고. 돈으로 바른 의상들이 나오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온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어떻고. 션 베이커가 인간의 욕망을 관객에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찔렀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지에 다다랐다고도 볼 수 있는 점이다.



최애는 이창동


이 영화를 만든 션 베이커는 유명한 영화덕후다. 지금 당장 ‘Sean Baker top’이라고 구글에 검색하면 리스트 10편이 나온다. 그중 글쓴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는 <밀양>이다. 그리고 레터박스에선가 뽑은 ‘최애 영화 탑 4’를 뽑았을 때 <오아시스>가 있었다. 이 사람이 영화 덕후라는 예시는 수많은 인터뷰로 보여줄 수 있지만 글쓴이는 이 두 영화를 근거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이 여러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타서 유명한 인물이긴 하지만 최애 중 하나로 <오아시스>를 뽑는 경우는 유니크하잖아? 심지어 이 션 베이커는 이창동 감독 때문에 한국에 온 적이 있을 정도다. 이 영화 구력(?)을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플롯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곳곳에서 <밀양>과 <오아시스>의 향기가 난다. 어떤 장면에서는 오마주가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밀양>과 이 <아노라>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겠지? 한국영화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엔딩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익숙하면서도 다른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글쓴이가 <아노라>를 보면서 느꼈던 건 마틴 스코세이지의 향기다. 어떤 인물이 있다. 인물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그 일대기에서 두 가지를 비춘다. 감정적인 여운과 미국사회의 단면이다. 가령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이 전문 킬러로 전직하면서 온갖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아노라>의 애니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자기가 상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영화에서 뒤틀리는지는 스코세이지의 방식이 비슷한 감이 있다. 하지만 마냥 따라 하기만 했다? 그렇지만은 않다. 엔딩에서 확실하게 휘감으며 아노라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뭘 보여줄 것인가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 션 베이커의 차기작에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라는 호기심이다.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읽는 로맨스 코미디물로도 흥미롭지만 중반부에서 보여주는 감정적인 질척임이 흥미로웠고, 그 중반부를 위해 초반, 후반부를 장르적으로 엮는 만듦새가 놀라웠다. 이 영화가 구사하고 있는 기술적인 부분이 이야기의 주제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훌륭한 세공능력을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쓴이가 글이 아니라 말로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나누고 싶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의 의미다. 예쁘고 잘생기면 좋지. 돈 많으면 좋지. 하지만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요소에 그런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만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건 무엇일까. 다른 관점에서, 과연 이런 수많은 좌절에서, 또 한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린 인물에게 내밀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유리 보리소프가 연기하는 묵묵한 울림이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황금종려상의 이유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걸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