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의 어머니>와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고
연극 <그의 어머니>는 쉽지 않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당신의 아이가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브렌다는 평범한 일상을 살던 엄마다. 그러던 어느 날, 10대 아들 매튜가 강간 혐의로 체포된다. 언론과 대중은 그녀를 ‘강간범의 어머니’로 규정하고, 그녀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엄마’다. 매튜를 사랑했던 지난 시간은 지워지지 않고, 아들을 향한 애정은 여전히 그녀의 뿌리에 남아 있다. 도덕적 분노와 본능적 사랑 사이에서, 브렌다는 매 순간 갈라진다.
연극은 단지 법적 책임이나 도덕적 논쟁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한다는 감정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집은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 2층은 짊어진 죄책감, 1층은 끝내 내려오지 않는 침묵. 그 안에서 브렌다는 비난받고 외면당하며, 끝내 홀로 남는다.
이 연극을 보며 떠오른 작품이 하나 있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13세 소년이 또래 친구를 살해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그 드라마에서 누구도 단순한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소년은 방임된 환경과 혐오의 문화 속에서 점점 고립되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묻는다.
“넌 왜 그랬니?”가 아니라,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누구였니?”라고.
<소년의 시간>이 사회를 묻는 작품이라면, <그의 어머니>는 감정을 묻는 작품이다.
아이를 지켜낼 수 없었던 어른, 지켜야 했던 어른.
그리고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는 어른.
내가 이 두 작품을 함께 떠올린 건 어쩌면 내가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 누구든 ‘그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말릴 수 없었고, 그럼에도 끝내 등을 돌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
그 자리는 감정의 낭떠러지 같고, 동시에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현실이다.
우리는 피해자를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아이를 ‘괴물’로만 단정 지은 사회의 책임도 돌아보아야 한다.
불편한 이야기다. 하지만 불편한 질문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책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