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들이 직접 쓴 수필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만난 첫 수필 〈수업료〉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쓴 글이었습니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교실에서 일어서야 했던 부끄러움,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친척에게 도움을 청하러 먼 길을 걸어가는 여정, 그리고 친구들이 모은 ‘우정통’으로 다시 학교에 돌아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짧고 단순한 문장 속에 가난의 무게,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부끄러움,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외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읽는 순간 아이의 숨결이 바로 전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슬프거나 애잔하기만 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손길, 친구들의 마음,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가 겹쳐지며 작은 빛이 환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의 글에 반해 영화 〈수업료〉까지 찾아보았습니다.
194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금 유튜브에서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된 화면 속에 남은 집과 교실, 아이들의 표정은 글로 읽은 감정을 한층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살던 집의 구조, 공동 수돗가, 교실 풍경 같은 것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당대의 공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지요. 텍스트로는 알 수 없는 공간과 몸짓, 아이들의 시선을 영상으로 만나는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제국의 어린이들』에는 조선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의 수상작이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땅에서 쓰인 글이지만 두 나라 아이들의 시선과 경험이 다르게 드러나지요. 어떤 아이는 고양이를 기르며 즐거운 시간을 기록하고, 또 어떤 아이는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돼지를 키웠습니다. 누군가는 방 정리를 하지 않아 엄마에게 혼이 나고, 또 누군가는 아픈 어른을 대신해 한겨울에 쌀을 씻으러 공용 수돗가로 나갑니다. 똑같이 일상에서 출발한 기록들이지만, 그 안에서 읽히는 삶의 결은 달랐습니다.
조선 어린이들의 글에서는 언제나 가난과 결핍의 흔적이 따라붙었습니다. 부모가 일을 찾아 떠나며 집을 지키는 건 할머니와 아이뿐이었고, 아버지의 부재나 불안정한 직업은 그대로 아이의 서사에 들어왔습니다. 반면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은 일상의 사소한 규율과 놀이를 중심으로 흘러갔습니다. 고양이나 강아지가 등장하고, 어머니의 훈육이 일상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같은 땅, 같은 시기에 쓰인 글인데도 두 세계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저자의 해설은 이런 차이를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단순히 글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왜 이런 글들이 상을 받았는지, 어떤 가치가 강조되었는지 짚어 주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불안을 담아낸 글일지라도 끝에는 ‘인내’와 ‘근면’, ‘효’와 ‘협동’이라는 덕목으로 정리될 때 수상작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글은 순수한 기록인 동시에, 제국이 바람직하다고 여긴 ‘어린이상’을 증명하는 자료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다 보면 아이들의 세계는 곳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드러냅니다. 눈 내린 아침을 묘사하는 글에서는 얼어붙은 펌프와 새하얗게 쌓인 마당이 눈앞에 펼쳐지고, 가축을 기르던 글에서는 그 동물이 단순한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수단임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가장 슬픈 순간이 동물이 죽었을 때가 아니라 팔려 나갈 때라는 구절은, 아이들의 삶이 어떤 조건 속에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레 오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식민지 시대의 아이들에게 제국은 국가가 원하는 욕망을 덧씌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성적과 성취, 미래의 성공이라는 프레임으로 아이들을 다시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과거의 기록집을 넘어섭니다.
소박한 아이들의 문장은 그 시대의 그림자를 드러내고, 저자의 해설은 그 그림자에 숨은 의미를 밝혀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어린이들의 생활 기록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성찰로 확장됩니다.
아이들의 글에서 시작한 경험은 결국 “지금 우리는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