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인들의 잃어버린 타코와 그 뒤에서 돈 세는 백인들
멕시코 계 이민자가 많은 LA에서 타코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대로변을 따라 타코 트럭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흔하다. 5불쯤 내면 일회용 접시 위로 따끈한 타코를 세 개쯤 받을 수 있는데, 값싸고 간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만한 음식이 없다.
타코는 멕시코에서 왔지만 타코를 먹는 사람은 멕시코 인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LA에서 타코는 모두에게 사랑 받는 음식이다. 피부색이 어떻고 출신지가 어디던, 트럭 앞에 서서 타코를 손에 쥐고 한껏 베어 무는 모습은 누구나 똑같다. 그런 타코에 대한 멕시코 인들의 자부심은 특히 대단한 편인데, 타코는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타코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멕시코 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노동자의 음식이었던 타코는 이주하는 멕시코 인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값싸고 간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타코는 철도나 광산에서 일하던 멕시코 인들의 서러운 타향살이를 달래주던 몇 안 되는 위안거리였다.
그러던 타코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에게도 매력을 점점 인정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싸구려 길거리 음식으로 여겨졌으나, 어느 순간 미국 음식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토르티야와 고기로 이루어진 타코의 간편하고 직선적인 맛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사회에도 어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멕시코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타코가 미국 음식 문화의 주류로 우뚝 선 모습은 언뜻 미국 내 멕시코 인들의 모습을 닮았다. 타코만큼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간 멕시코 인들이 미국 내에서 가지는 입지 또한 크게 성장했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주했던 멕시코 인들의 배를 채워 주던 타코는 그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음식이자, 더 나아가 그들의 이주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래선지 멕시코 사람들은 타코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 타코 식당이 맛있는지 한 마디만 질문하면 20분 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다. 이때 나는 굳이 말을 많이 할 필요 없이 맞장구만 쳐주면 되니, 영어가 서툰 나로서는 이만한 주제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감히 멕시코 사람 앞에서 타코벨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멕시코 음식 체인점 타코벨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멕시코 인들에게 반감의 대상이다. 죄목은 가짜 타코 판매다. 타코벨에서 팔고 있는 타코, 즉 바삭한 토르티야에 간고기와 양상추, 체다 치즈를 넣고 사워 크림을 뿌려 마무리한 타코는 멕시코에 없는 종류의 타코라는 것이다. 진짜 멕시코 타코는 옥수수 반죽으로 만든 말랑한 토르티야에 멕시코 방식으로 조리한 고기와 고수, 양파를 넣고 살사를 뿌린 음식이라고 했다. 대강 보면 그 타코나 이 타코나 같은 타코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겉모습만 비슷할 뿐이지 전혀 다른 음식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코벨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타코를 주력 상품으로 팔고 있다. 양배추를 달달한 소스에 무쳐 정통 김치라고 내놓는 한식집을 상상해보라. 아무리 다양성의 시대라지만, 한국인의 시선에서 곱게 봐주기는 힘들리라. 마찬가지로, 자기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멕시코 사람들이 타코벨을 좋게 봐주었을 리가 만무하다. 실제로 전세계 6000여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타코벨은, 그 정체성이 멕시코 음식 전문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멕시코에는 매장이 없다. 1992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멕시코 본토에 상륙을 시도했으나, 차가운 반응 아래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도로 짐을 싸야 했다.
타코벨이 정통 타코 대신 이단의 노선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멕시코 인들은 그 원인을 타코벨 소유주의 인종에서 찾았다. 타코벨의 주인이 백인이기 때문에, 타코벨에서 파는 타코도 따라서 백인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타코벨의 타코는 19세기 후반 멕시코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타코와는 다른 음식이 되었다. 겉의 토르티야도, 속 안의 재료들도 모조리 백인들의 입맛에 따라 바뀌었다. 이제 미국에서 사람들이 흔히 즐기는 타코는 더 이상 멕시코 인들의 음식이 아닌 백인들의 음식이다.
이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남아있다. 멕시코 인들이 자신들의 자부심이 가득 담긴 타코를 백인들에게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돈이다. 타코벨의 미국 내 연간 마케팅 비용은 한화 4천억 원 이상을 상회한다. 2019년 1월 한 달 간 TV 광고료만 대략 700억 원 이상을 지출했다. 트럭에서 ‘진짜 타코’를 파는 멕시코 상인들은 눈 뜨고 당할 수 밖에 없다. 진짜 타코를 홍보할 광고비는 타코 수천 개를 팔아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가짜 타코 광고는 무엇이 진짜 타코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물론 타코 트럭을 자주 접하는 LA 사람들이야 헷갈릴 일이 없다. 그러나 한국 같은 타코 불모지에서는, 자본을 타고 날아 온 타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다. 애당초에 타코를 몰랐으니 진가품 여부를 따질 수도 없다. 처음 보는 타코가 우리에게는 진짜 타코일 테니 말이다.
진짜 타코가 좁고 더운 트럭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타코벨의 가짜 타코는 세계로 뻗어나간다. 백인들의 마케팅 전략은 세상 사람들이 타코벨의 가짜 타코를 진짜 멕시코의 맛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멕시코 인들의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하지만, 애당초에 자본이 모자란 그들은 백인들의 마케팅 전략을 따라 할 수 없다. 그들의 타코가 아무리 경쟁력이 있다 한들, 게임에 진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이 순리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멕시코 인이 부자 백인들에게 타코를 빼앗기는 것은, 안타깝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코는 그간 멕시코 인들과 함께했던 역사적 맥락이나 다른 가치들은 깡그리 잊어 버린 채, 더 많은 금액을 배팅한 백인을 따라 떠났다. 아무리 땅을 치며 울어봐야 이곳은 자본주의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이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규칙이다. 과연 누가 의리 없는 타코를, 가난한 멕시코 인을, 혹은 부자 백인을 비난할 수 있으랴.
미국 건국의 기반인 기독교의 신약성서 마태복음 25장 29절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욱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마찬가지로 미국의 근간인 자본주의 속에서, 부유한 사람은 더 큰 투자로 더 큰 기회를 얻고 가난한 사람은 그나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벌 기회마저 부자에게 내주게 된다.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마태효과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마태효과는 걷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 내 상위 1%의 사람들이 부의 40%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한 2010년, 상위 1%의 인종 구성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92.5%이었다. 미국 독립선언문 2장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구절을 무색하게 만드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바라보며, 부자 백인들에게 타코를 내주어야만 했던 멕시코 인들을 위해 심심한 위로를 보낼 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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