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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야매 Mar 04. 2019

사랑하는 그대를 놓치지 않으려면

영화 <루비 스팍스>를 보고

※ 본 글은 영화 <루비 스팍스>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결말보단 과정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영화를 감상하신 후 다시 와서 읽어주세요.



아무리 내가 꿈꿔오던 이상형이라 할지라도, 갈라졌던 목걸이 반쪽처럼 그대가 나와 딱 들어맞을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심지어 내가 그대를 창조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루비 스팍스>의 주인공 캘빈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에, 그가 창조한 이상적인 그녀, 루비를 놓쳐야만 했다.


대인 기피를 앓고 있는 작가 캘빈, 어느 날 자신이 쓰던 소설 속에서 튀어 나온 이상형 루비를 만난다. 루비는 캘빈이 이상적으로 바라던 취향, 성격, 옷차림을 그대로 하고 이미 캘빈에게 푹 빠진 채로 그의 앞에 등장한다. 심지어 그녀는 캘빈이 쓰는 대로 움직이고 변한다. 소설 속에서나 그리던 이상형을 현실에서 만난 캘빈은 이내 루비에게 푹 빠지지만 그들의 연애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는데..


때로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그대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대로 옷을 입는다. 굳이 영화처럼 스스로 창조하지 않아도 우리는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얻곤 한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그 상대가 생각만큼 나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60억 인구만큼 다른 종류의 삶이 있다. 나도 그 60억 개의 삶 중 하나를 살고 있고 상대도 그렇다. 나와 그대가 정확히 같은 삶을 살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상대를 만나 사랑을 한다.


그대와 내가 각자 살아오며 구축해온 서로 다른 삶이 만나는 데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그리고 올바른 사랑은 그 삶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에 기반한다. 나의 삶에 맞는 완전한 그대를 미리 그려 놓고, 단단히 주조된 그 틀에 상대를 강제로 끼워 맞추고자 하는 사랑은 시작부터 균열을 배태한다. 내가 만족하려면 그대의 삶이 뒤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는 폭력에 가깝다.


출처: 영화 <루비 스팍스>

그럼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캘빈은 루비를 점점 속박하고 구속한다. 루비의 삶이 그가 바라던 이상형의 삶과 다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대와 헤어지거나,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는 현실 속의 우리와는 다르게, 캘빈에게는 운 좋게도 제 3의 선택지가 있다. 바로 소설을 통해 그의 입맛대로 루비를 개조하는 것이다. 이제 루비는 캘빈이 그려놓은 틀에 들어 맞는 삶의 모습을 강제로나마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캘빈의 연애는 순탄할 것인가.


치트키같은 제3의 선택지를 택한 결과에 대해 영화는 ‘대실패’라는 답안을 돌려준다. 캘빈은 루비를 억지로 자신의 틀에 끼워 넣었지만, 그녀는 기계 부품이 아닌 사람이었기에, 둘의 관계는 더더욱 어긋나게 된다. 캘빈이 루비를 개조한 이유가 자신의 삶이 뒤틀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듯, 루비도 그녀의 삶이 뒤틀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대를 내 이상향에 끼워 맞추는 제 3의 선택지는 치트키라기 보다는 오히려 파멸로 가는, 사실상 의미 없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사랑을 시작하고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다름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언제나 균열을 내포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 다름을 억지로 조절하려 한다면 그 균열은 더 빠른 속도로 금이 갈 수 밖에 없다는 통찰을, 영화 <루비 스팍스>는 그들의 연애의 파멸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캘빈이 루비를 떠나 보내면서 집필을 끝내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she was free”다. 뒤집어 말하면, 캘빈이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루비는 자유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루비와 자신의 다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캘빈이 드디어 이해했을 때야 비로소 루비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마저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타인의 기대를 항상 만족시켜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도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 이 간단한 진실을, 우리는 사랑을 하는 순간들마다 이따금씩 잊곤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자기 삶의 가치관과 기조에 따라 행동한다. 그 행동에 대한 반응은 철저히 그것을 받아 들이는 그 상대의 몫이다. 상대에게 특정한 반응 혹은 삶의 모양을 기대하지 말라. 그것은 상대의 삶과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받는 그 달콤한 일이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런 사실을 쉽게 망각하곤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미 구속복을 맞춰 놓은 채 그대의 삶과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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