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싫은 술버릇은 왜 있었을까요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전남 지방에서 서울까지 주말마다 입시 학원을 다녔었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 때는 고시원에 살면서 학원을 다녔고 학기 중에는 매주 토요일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무궁화호를 타고 학원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 못할 짓이다.) 그런 노력 끝에 나는 집 근처 국립 A 대학교와, 충청도에 위치한 사립 B 대학교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가까운 학교를 가기를 원했고, 나는 그럴 마음이 단 1g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고집을 부려 B 대학교를 선택했고, 20살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 대학 시절을 맞게 되었다.
신입생 생활의 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술자리였다. 고향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지역 출신의 친구들과 대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우리 과는 엄청난 여초 학과였는데, 40명이 채 안 되는 우리 학번 학생 중 남학생은 8명 정도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나는 동기들과 꽤 잘 지냈고, 모든 행사며 술자리는 빠지지 않는 충실한 신입생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보니 과 행사가 아니더라도 따로 만나 술 마시면서 노는 경우가 잦았고, 그 중에는 남자 동기들도 한 두 명씩 껴 있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신입생답게 "한번 마시면 끝을 봐야지!" 마인드로 술을 마셔댔는데, 취하면 나오는 술버릇이 있었다. 그 술버릇은 높은 확률로 술자리에 남자 동기가 껴있으면 발동했다. 그 술버릇의 루트는 보통 이랬다.
1. 술을 잘 마시다가 갑자기 상대를 노려본다.
2. 상대방이 의아해하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3. 당황한 상대방이 왜 우냐고 물어보면 "너도 나 싫어하지"라고 말도 안되는 생떼를 쓴다.
4. 아니라고 상대방이 꽤 오랜 시간 해명해야만 울음을 그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진상 중의 진상이었는데, 당시 내 기준에서는 술만 취하면 무의식적으로 나오던 버릇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1학년 2학기 도중, 취한 내 모습이 찍힌 동영상을 보고 단박에 고친 탓에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왜 남자들이 있을 때만 저랬냐, 물으면 나는 고등학교 때 같이 고등학교를 다녔던 남자애들과 지독하게 사이가 안 좋았다. 사이가 안 좋았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만난 남자 동기들과 잘 지낸다는 것이 한때는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술만 마시면 그래서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있던 걱정과 우울함이 튀어나오는 듯 했다.
만약 내 고등학교 동창들이 이 글을 본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니가 언제 괴롭힘을 당했어?" 라고 어이없어 하면서 말이다. 졸업한지 10년이 다 되어갈만큼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원래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거지 같았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1920*1080 픽셀의 유튜브 동영상 고화질처럼 선명한 것이다.
내 이름이 아닌 '자이언트'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면서 낄낄대던 일, 복도 쪽으로 난 창으로 복도를 지켜보다가 내가 지나가면 교실 문을 발로 차서 날 놀래키던 일, 보충 수업 시간에 내 책상을 찾아서 욕이 가득한 쪽지를 넣어놓고 간 일, 급식실에서 나를 향해 크게 욕을 하던 일,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내게 전화를 걸어서 놀리던 일... 거짓말 같지만 전부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혹시 내가 그들한테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그렇게 남자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여'학생은 내가 알기론 나 한 명 뿐이었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나는 키에 대한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심해졌고, 내 키를 증오했으며 학교 가기가 싫어서 혼자 울기도 했다. 진지하게 자퇴나 전학을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10대 후반의 나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들을 생각하면 웃기기만 하다. 나를 대놓고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 중에서 나보다 키가 큰 남자애가 한 명도 없었다는 일도 코미디다. (그 중 한 명은 졸업 후 나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걸기도 했다. 물론 거절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대학교 때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쳤고, 아직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내 트라우마에 높은 기여를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왜 걔네들한테 한 마디도 못 했을까. 정말 우습고 별 것도 아닌 애들인데 말이다.
대학교 때는 다행히 키가 크다고 대놓고 괴롭히거나 면박을 주는 남자 사람들은 없었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친구들도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고향을 벗어나 보낸 대학 생활은 내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
어떻게 보면 나를 괴롭혔던 남자애들에게 고맙기도 하다. 난 그렇게 인생을 살지 말아야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딴 식으로 남에게 표출하진 말아야지, 다짐하기 때문이다. 가끔 SNS를 통해 알기 싫어도 그들의 계정이 눈에 띌 때가 있는데, 여전히 지들끼리 잘 만나고 잘 놀면서 키는 그대로인 것 같더라. 역시나 인간은 끼리끼리라는 말이 맞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