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런 영화를 어떻게 1 천만명씩 '극장'에 가서 볼 수 있는 것일까?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뻔한 줄거리, 똑같은 인물, 긴장감은 제로 미만(왜냐면, 주인공이 너무 강력해서..)...
어느 것 하나 점수를 줄곳이 없는 이 영화가,
어떻게 천만 영화일 수 있을까...
영화시작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을 반복하다, 내게 묻는다,
그런데, 너는 왜 보니?
그러게.. 나는 왜 볼까..
다른 것이 볼 것이 하도 없어서,
엄복동이 수염을 기르고 나와서 보디가드 행세를 하는 드라마나,
현실정치에 비하면 산들바람 정도인데 돌풍이라고 허풍을 떠는 드라마나,
볼만한 작품이 씨가 마른 요즘이어서 보고 있는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서였다.
영화의 약이자 독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책 한 권을 읽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예술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는 앉아만 있으면 된다.
책은, 읽으며 머릿속으로 세상을 짓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눈만 열어두면 된다.
그런데, 이런 수동의 끝이 범죄도시였다.
주인공이 칼을 맞아도 죽을 걱정이 없으니 그야말로 관객의 노력은 제로.
따분한 신파에, 따분한 유모어여서, 크게 웃을 일도 없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서글펐다.
쉬는 것은 좋은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영화를 만들고 또 이런 영화를 천만명씩 본다는 사실이...
확실히 역사는 늘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문득 그 대목에서, 무언가 알아냈을 때의 '쏴한', 쾌감이 밀려왔다.
그래 맞다, 영화 범죄도시가 엉망인 것은, 영화가 아니라 우리 세상이 엉망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기생충의 쾌거와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이 나는 즐겁지 않았다.
전 세계인들이 그 잔인한 게임에 열광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것은 슬픈 한국사회와 우리 시대에 대한 적나라한 자화상이어서 우울했다.
아무 생각 하지 않게 위해, 그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찌르고 죽이는 영화는 보고 있는 이 현실이.
찌르고 죽이고 때리는 영화에 천만이 몰려가는 현실이,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모습이었다.
하여,
가상은 본질의 본질이다.
언젠가 월말 김어준에서 헤겔강의 중 나온 이 대목이, 거기서 이해가 되었다.
범죄도시라는 가상의 영화가 그리는 현실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상은 본질의 본질인 것이다.
헤겔 덕분에 범죄도시를 이해했고,
범죄도시 덕분에 헤겔을 이해한다.
범죄도시와 헤겔주변의 우리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하면서,
희망은 놓지 않으리라..
쉬는 것도 다시 싸우기 위해서이니까..
5편이 나온다면
좀 더 잘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pEOWa_jV-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