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를 넘긴 조용한 밤, 오랜만에 쇼팽 피아노 협주곡이 라디오에서 나왔다. 음악을 듣기 좋은 시간이었다. 기대하며 귀를 쫑긋 했다. 그러나, 누구의 연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피아노협주곡, 특히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연주가 좋다물론 모든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그저 병풍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많은 협주곡들에서 오케스트라는 독주 악기와 동등한 무게를 갖는다. 예를 들어,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에선 클라리넷이 멜로디를 연주하고 피아노가 반주를 한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2악장에서도 피아노가 배경으로 물러선듯한 모습을 보인다. 베토벤은 아예 주인공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를 시작하는 5번 황제가 있다. 인문주의자였던 베토벤의 관점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쇼팽은 다르다.
쇼팽은 교향곡도 오페라도 없다. 그저 피아노다. 쇼팽 하면 피아노이고, 피아노 하면 쇼팽이다. 피아노를 위해 태어났고, 피아노곡과 함께 살았으며, 인생을 온통 피아노로 채웠다. 그래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완전히 피아노가 주인공이다. 피아노의 이야기를 들을 분위기를, 그 풍경을, 그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오케스트라다. 그런데 오케스트라가 과도하게 목소리가 크면 피아노의 목소리가 애매해진다.
슬픔의 끝인 2악장의 시작도 그렇다. 마치 환자처럼, 지친 듯 아무 힘도 없는 창백한 분위기로 천천히 시작한다. 그 위해, 영롱하게 빛나는 피아노 선율들이 떨어진다. 이렇게 가만히 전해져야 할 이야기들이, 오케스트라가 너무나 서정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며 나와 버리면, 피아노의 이야기가 빛을 잃는다. 경쾌한 마지막 악장도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와 음량을 겨뤄버리면, 피아노가 더 가련해져 버린다.
그렇게 불만 섞인 감상을 마쳤을 즈음, 김민기 선생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뒷것'이라 칭했던 사람... 마치 주인공인 피아노를 위해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의 오케스트라처럼, 수많은 주인공과 그 작품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했던 사람.
눈부신 영화 속의 명배우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 공간이었던 '학전'이라는 역사적인 공간도 그와 함께 떠나보내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서글펐고, 또 먹먹했다. 늘 아름다운 사람들은 왜 이리도 빨리 떠나는가.. 좀 더 우리 곁에 남아주었으면 하는 이들을 데려가는 하늘이 야속했다.
그러나, 그가 활동한 공간조차 지키지 못하는 우리 사회이고, 우리 문화이지만, 이 아름다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끊임없이 연주되듯이, 이 사회, 우리 무대 어디에선가, 김민기와 같은 선한 시도들이, 마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철저히 초야에 묻혀 음악만에 매달렸던 생트 콜롱브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자 영화였던, '세상의 모든 아침', 그 영화 속 콜롱브의 제자였던 마랭마래는 자신의 삶과 음악 그리고 스승을 그리워하며 말한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다시 오지 않을 그 모든 아침들처럼, 김민기와 같은 사람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면, 처연해도 온 세상에 맺히는 수줍은 아침 이슬들처럼, 김민기와 같은 영롱한 마음들은 끊임없이 맺히고 또 맺히고, 눈물을 떨구어도 또 맺힐 것이다.
아름다운 영혼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들었을 이 세상, 이 천박해진 세상을 떠난 그의 명복을 빌며, 살아남은 자들은 그 슬픔을 안고, 그가 하늘에서 보고 미소 지을 수 있을 그런 세상을 꿈꾼다. 우리 시대에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우리 다음대에라도, 좀 더 가난해지도라도, 모두가 함께 조금 더행복해질 그런 세상을, 아름다운 뒷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김민기를 그리며 쇼팽을 듣는다.
#thegreatdays2024 le 23 juillet 2024 #김민기 #학전 #상록수 #친구 #아하누가그렇게 #바람과나 #저부는바람 #꽃피우는아이 #길 #아침이슬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