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2024년 9월 7일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는 새로운 세계로, 나는 나의 진창으로 되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의 독백이었다.
그의 세계로 돌아간 것은 선배인 나가사와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도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부족할 것 없는 집안과 학벌,
떡 벌어진 체구에 외국어에 능통한, 외교관을 꿈꾸는 나가사와 선배.
그와 비교하면 자신의 환경은 평범한 소시민이었고, 지독한 방황을 겪는 와중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독백은 나가사와의 공간을 '세계'로,
자신의 공간을 '진창'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나가사와의 세계에도 어두움은 있었다.
그 마음은 고독하게 음울한 진흙 구덩이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그의 이율 배반성을 처음부터 명백히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이 어째서 그의 그러한 면을 보지 못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사나이는 이 사나이 나름의 지옥을 안고 살았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이 대목을 읽은 뒤 나는 종종 자문했다. 정말 모두 자신만의 지옥이 있을까?
법정스님은 인생의 고해의 바다라고 하셨고, 지옥 같은 경험이라는 표현도 적지 않다.
지옥 같은 직장, 지옥 같은 학교 또는 수많은 지옥들을 우리는 살면서 경험한다.
그러나 삶에 지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있다 보면 천국 같은 순간도 존재한다.
무더운 날, 잠시 그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살아가는 함께 지옥을 견뎌 내는 사람을 보며 위안받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 위로할 수 있는 지옥이 아닌,
자신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지옥도 우리에겐 존재한다.
가볍게는 이불킥을 하는 후회되는 일들에서,
존재를 위협할 정도의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까지...
와타나베가 이야기한 나가사와의 자신만의 지옥이란 그건 것이었다.
다 갖은것 같지만, 그에게도 존재하는 고통
그저 편할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한 그런 어두움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어쩌면,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고 돌아보고 상처받고 회의하는
박문호 교수의 지적처럼,
동물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자신을 학대한다
미래와 자유와 기억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잘못도 하지만,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그런 자신만의 지옥이 없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네타냐후를 보며,
저 사람은 그 무수히 많은 죽음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감정과 느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끊임없이 저렇게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지옥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자신만의 지옥을 애써, 아니 보란 듯이 외면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그녀의 딸은 결국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스라엘 전역에선 네타냐후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https://www.nytimes.com/2024/09/01/world/middleeast/hamas-hostage-video-eden-yerushalmi.html
https://www.youtube.com/watch?v=cEyisuomY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