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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한강의 기적,
어느 쪽으로 흐를 것인가...

파리에서 본 세상

소년이 온다의 역자인 데보라 스미스는 영문판 역자의 말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그 대목을 읽으며, 역자가 이야기한 '한강의 기적'과 작가 한강의 작업이 겹쳐졌다.

한강의 기적?

노벨상도 기적이라면 기적이 아닐까?

운으로 주어졌다는 의미에서의 '기적'이 아니라,

이 보석 같은 작품을 노벨에서 보아주었다는 것, 그것이 작가의 노력이 만든 '기적' 아닐까


우린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전쟁을 거치고, 폐허에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

그것은 박정희의 손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인데,

우린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전두환시대가 나았다고 말한다.

그때의 기적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피땀을 쏟아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프랑스의 한 방송사는 말한다. 전쟁을 100년 안에 극복했던 나라는 단 두나라, 이스라엘과 한국이라고...


그러나 작가 한강의 기적은 다르다.

먹고살기 위한 길이 아니었다.

작가의 말처럼 2013년 암울한 시기에,

누가 이 글을 읽어주기나 할 텐가라는 암울함 안에서 작가는 글을 써 내려갔다고..


예술이란, 

늘 그렇게, 어떤 보답이나 대가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을 안고, 인고의 세월을 쏟아내는 작업이 아닐까..

돈이 아닌, 경제적 보상이 아닌, '알 수 없는 곳'에 이끌려 삶을 태우는 것이 작가의 삶이 아닐까..

마음이 따뜻한 사회는 그런 작가의 작품을 '보아주고' 또 '읽어'준다


우린 이제 어떤 한강의 기적으로 흘러갈까

여전희 강남불패의 신화를 모두 꿈꾸며,

아라뱃길에 유람선을 띄우고, 대형 국기게양대를 세우는 천박한 길로 흘러갈까,

그렇지 않다면, 

돈이 되는 것이 아닌, 멈추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할 수 있는, 함께 사는 삶의 길로 흘러갈까

우리의 주머니를 채우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가슴과 심장을 채워줄. 그런 길로 흘러갈까..


천박한 기레기 언론은 노벨상수상의 두고 k 문학 어쩌고 하며 쾌거라고 난리일 때

작가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부친을 통해 전한다.

가자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무슨 기자회견이냐고..

우리 사회는 이런 작가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

우리 언론은 이런 작가를 이야기할 깊이가 있는가?

쾌거를 말할 때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이 말해온, 노벨이 주시한 '연약한 삶'의 이야기를, 광주의 의미를, 

4.3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에 떠다니는 기래기들과 정치,

반대편의 한강이 써 내려간 역사의 상흔들,

우리는 어느 쪽으로 흐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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