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햇빛에 검게 그을린 피부, 눈가의 자글자글 잡힌 주름, 곳곳에 보이는 검버섯, 길게 늘여 틀인 흰 수염, 이 노인은 얼핏 봐도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고목처럼 메마르고 거친 손에는 삽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정확한 시간에 삽을 들고 콜로라도 파이크스산 어귀의 상수리나무를 찾았다. 나무 주변을 둘러보고 삽으로 그 둘레의 땅을 파냈다. 이 작업은 오후까지 지속되었고, 정확히 3시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갔다.
시간이 제법 지나자 3m가 훌쩍 넘는 거대한 상수리나무의 깊은 뿌리가 드러났다. 나무 주변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멍들이 생겼다. 깊이는 적어도 20m는 되어 보였다. 그는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해 줄사다리를 설치하고 땅굴 곳곳에 조명을 설치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행인이 그에게 물었다.
“아니, 할아버지, 여기서 대체 왜 땅을 파고 계신 겁니까?”
“이곳에 금맥이 있네.”
그가 답했다.
“아니, 금맥이요?”
행인은 놀라서 재차 물었다.
“1850년대 후반 골드러시 때 발견된 금광이 이 밑에 파묻혔네. 1872년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나 250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지. 그때 함께 묻힌 금들이 이 아래 있다네. 나는 32년 전 몬태나주 반나크의 한 골동품 상인에게 지도를 구입했네. 정확한 금의 위치가 표기된 지도였지. 나는 지난 30년간 정확한 금맥의 위치를 찾기 위해 인생을 바쳤네. 그리고 바로 이곳에 그 장소임을 알아냈지.”
노인의 진지한 말투와 표정, 그리고 오랫동안 깊게 파인 이 거대한 땅굴을 보니 그의 말이 사실 같았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미친 것이리라.
“아, 제가 땅 파는 것을 돕겠습니다. 만약 금이 나온다면 저에게도 조금 나누어 줄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문제 될 것 없지. 이 밑에는 평상을 파도 다 못가 질 금이 쌓여있으니까.”
행인은 곧바로 땅을 파는 데 동참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금맥에 대한 소문을 들은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굴의 깊이가 40m에 달하자 지하수가 터져 나왔다.
“지하수다. 이제 이 아래를 더 파면 금맥이 보일 것이요. 지하수에서는 곧 사금이 흘러나올 것이오.”
노인이 말했다.
그때였다.
제복을 입은 한 사내가 노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미스터 킴?, 킴철구?”
제복의 사나이가 말했다.
“내가 김철구 맞소.”
노인이 말했다.
“몇 달 전 실종 신고를 받고 온 경찰입니다. 함께 서에 가주시죠. 따님께서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노인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순수히 경찰차를 탔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한 중년의 여성이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인에게 다가와 다그치며 말했다.
“아버지, 또 여기서 땅 파고 계시면 어떡해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은 매일 드시라고 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