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누리고 싶은 행복. 모두가 행복해지고자 이리저리 애를 쓰니 그 진정한 행복을 가지기가 더욱 힘든 것은 아닐까.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권리 같은 것이다. 그냥 재산 유무나 신체의 장애 비장애에 구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행복에 관심이 많다. 행복 해지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쓰고 더 가져보고 는 안 하지만 일단 나는 내 권리를 당당하게 찾기 위해 ‘남들보다’ 일을 적게 하고 공상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휴가를 끝내고 베를린으로 복귀해 이것저것 생각이 정리가 안되던 때에 내 행복의 권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하고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놓은 것을 들춰봤다.
내 메모엔:
행복할 내 권리!
1.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
2. 몰입할 수 있는 활동
3. 파트너
4. 친구
라고 적혀있었다.
1.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
돈은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내가 버는 돈의 금액이 많으면 좋겠지만 돈을 써보니 내 기준에서는 돈이 많으면 많이 쓰고 적으면 또 적게 쓰면 되기 때문에 금액이 많고 적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단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이 중요하다. 한때 돈을 벌지 않는 기간이 있었는데 몇 달이었지만 사람의 정신상태가 일단 먼저 궁핍해옴을 경험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꿈꾸는 것 은 사치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얼마나 좋은 학교를 나오고 전문직이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일단 꾸준히 일하려면 무엇보다 체력과 건강한 정신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2. 몰입할 수 있는 활동
몰입의 에너지는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행복권리의 요소로 작용한다. 다들 학창 시절 끈끈한 우정을 쌓을 때 나는 오타쿠로서 내 정신세계를 확장해나갔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꾸준한 예술 활동이었다. 십 년을 피아노를 쳤고 십 년을 살사를 췄다. 그리고 이십 년 넘게 그림만 그리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몰입하지 못한 그림을 앞으로 십 년 해 보고자 한다.
현실 생활에서 힘이 들어 퇴근 후 티브이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해진다. 한때 나도 일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퇴근 후 티브이만 봤다. 티브이 혹은 맛집 탐험. 그게 그나마 일차적인 욕구를 해소해주고 금방 정신을 재충전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재충전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스포츠에 몰입하거나 예술활동에 꾸준히 몰입하면 그 경험은 상당히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이 되어서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생각보다 더 큰 의미부여와 행복감을 맞보게 해준다. 그런 몰입 활동 안에서는 현실적 한계도 어려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금 글쓰기에 몰입하다 또 밥을 태워먹었다.)
3. 파트너
이 영역은 돈 보다 더 어렵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상처받고 깨진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거나 혹은 가벼운 연애를 즐기기를 지향하는 사람도 많고 또는 굳이 파트너가 없어도 혼자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나도 첫 연애 후 10년 혼자 파트너 없이 지내봤지만 파트너가 없는 것이 내 행복을 가로막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누군가가 나의 거울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이 더 살찌겠구나 하는 생각은 끝없이 지속됐다.
연애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는 파트너가 그저 꼴도 보기 싫었고, 헤어지고 나서는 슬픔과 알 수 없는 홀가분함이 다시 삶의 활력을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인생의 파트너와의 관계야 말로 내 영적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본다. 그 파트너는 꼭 남편 부인이 아니라도 된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 대로 내 현재를 공유할 수 있는 그 누군가이면 좋겠다.
‘함께 있으면 짜증 나지만 없으면 보고 싶은 애: 그 이름은 파트너’
그들은 늘 내 거울이고 그들을 통해서 내 과거의 원가족과의 문제 혹은 관계 패턴을 직면할 수 있고 또 현재를 반추하며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다. 내가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늘 거울로 비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그런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은 더 끔찍하고 슬플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좋은 것이다. 내가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사랑을 주게 되었을 때는 이로 할 수 없을 영적 충만함을 가지게 된다.
4. 친구
어릴 적에는 친구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늘 새로 만나는 친구들이 좋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옛 친구들은 나와는 다른 길을 가고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점점 나와 공통점이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성인이 되어 만난 대학 친구들과 사회인이 되어 만난 친구들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 또한 내 어린 시절 친구들처럼 가치관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경제사정도 다 다르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린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위하는 관계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어떻게 된 것인지 다름에 대한 부분이 더 너그러워졌다고나 할까. 또한 친구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 다름을 억지로 숨기고 관계하지 않아서도 더 좋다. 특히나 원가족과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없거나 형제애가 돈독하지 않은 경우 친구는 형제와도 같다고 본다.
굳이 나의 이득을 위해 친구가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내 성공에 함께 기뻐하고 내 불행을 껴안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내 인생 나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나의 이런 행복권리에 대한 조건들이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는 다고 생각했었다.
수입이 있긴 한데 왠지 조금 더 벌어야 할 것 같아 불안했었고 남자 친구는 쿠바에 친구들은 한국과 인도에 있어 자주 볼 수가 없어서 울적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베를린에 해가 뜨고 낮기온이 18도 올라가면서 기분이 좋아져 내가 생각한 이 조건들은 얼추 잘 충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적고 생각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모든 것은 그냥 생각하기 나름이 된 것이다. 몇 주 전만 해도 이것저것 따지느라 행복의 길에서 멀어진 것 만 같이 여겨지던 내 생활들이 갑자기 좋은 날씨 덕에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니.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돌아오는 길에 피식하고 웃었다.
베를린의 긴 겨울이 지나고 이렇게 따뜻한 날씨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것처럼 그냥 그래도 이것보다 안 좋은 시절도 있었지... 하고 그냥 ‘현재 가진 것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방법이 행복감을 느끼는 조건이고 그렇게 순간순간 하루하루 쌓이는 행복감이 행복해지기 위해 조건이 됨을 알아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