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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그린드레스 Aug 07. 2021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커피를 실컷 마실 수 있고, 원비를 마실 수도 있고, 생새우를 날렵하게 잡아채서 죽인 후 초고추장을 찍어 먹을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다, 이 세 가지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좋았지만 세 번째는 떠올리기 괴로웠다.


어릴 때 커피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고 해서 향을 맡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아니면 집에 언니랑 둘이 있을 때 몰래 타 마시던가. 이것도 아니면 엄마가 남겨준 한 모금의 커피를 아껴가면서 마시던가.

어른이 되면 커피를 마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참 빨리 크고 싶었다.

그 당시에 에스프레소는 당연히 없었고, 믹스 커피가 대세였다. 나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만 믹스 커피는 싫어한다. 그럼에도 어릴 때 기억 때문에 아주 가끔 설탕과 프림이 잔뜩 든 믹스 커피를 마시곤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주 드셨던 원비. 

내 또래 아이들은 박카스에 환장했는데 난 오로지 원비. 인삼을 싫어하는데도 그 향과 들큼하고 쌉싸래한 맛이 참 좋았다.

커피는 항상 너무 많이 마셔서 탈이지만, 원비는 전혀 마시고 싶지 않다.

그때는 왜 그리 원비가 좋았는지 모르겠다. 원비 역시 아이들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아버지가 한 모금 남겨준 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생새우!


서울에도 횟집에 생새우를 파나? 못 본 거 같다. 회를 좋아하지 않아서 횟집에 갈 일이 거의 없어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어릴 때 강릉 바닷가에 즐비한 횟집에는 생새우도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형제가 많아서 친척들이 모이면 사람이 정말 바글바글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때 어른들과 사촌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의 횟집에 갔었다.

지금도 회를 즐기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때는 회를 아예 못 먹었다. 사촌아이들과 함께 서비스로 나온 튀김을 먹고 있었다.

어른들이 각종 회를 다 시켰는데, 생새우도 있었다. 생새우는 말 그대로 살아 있으니 새우가 튀어 오른다. 생새우를 접시에 담고 그 위에 망이 덮인 채로 상에 올라왔다. 


생새우를 먹으려면 재빠른 스킬이 필요하다. 망을 아주 조금만 열고 새우를 집어서 상에 한 번 매치고 기절시켜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글로 쓰니 엽기적인 거 같은데 새우가 튀어 올라서 이렇게 먹을 수밖에 없다.

회를 전혀 못 먹었기에 접시에 나온 회를 보기만 해도 비위가 상했다. 생선이 눈을 껌뻑이는 것도 보기 힘들었고.


그 날 처음 생새우 먹는 것을 보았는데 생선회는 생새우에 비함 양반이었다.

어른들이 싱싱하다면서 새우를 열심히 드셨다. 그분들껜 죄송하지만 정말 몬도가네도 생각나고 너무 보기 무섭고 힘들었다.


그 중에서 우리 외숙모가 정말 잘 드셨다. 사람 좋고 다른 사람 부탁을 거절 못하는 외삼촌 덕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강릉에서 친척들이 모이기 전에 어머니가 외삼촌과 통화하는 것을 언뜻 들었다. 외삼촌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갚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한 것을 어머니가 들어주고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 외삼촌은 그 전에도 지인이 권하는 비싸고 쓸모없는 보험을 들어주어서 돈을 날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외숙모와 부부싸움을 했다고 들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외삼촌은 참 좋은 분이셨다. 사람이 좋고 심성이 착하고 여려서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다 들어주었던 것이다. 바깥에서는 좋은 평판을 들었겠지만 외숙모 입장에서는 나쁜 남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가계 경제가 힘들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외삼촌 덕분에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외숙모는 밖에 나가서 일을 시작하셨다. 가정을 일으켜 세웠다. 24시간 바쁠 텐데도 외삼촌 집에 가면 집은 항상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사촌 동생도 우등생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외숙모는 참 완벽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외숙모가 생새우를 집어서 쉼 없이 먹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설령 내가 벌인 일이 아니더라도, 가족 중 한 명이 돈을 날려도 책임지고 일어서야 할 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거. 때문에 그깟 생새우를 집어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이라는 거.’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었다. 강해지려면 생새우를 먹어야 한다! 뭐 이런 느낌?!

불혹을 넘긴 나는 커피를 즐기고 원비는 사먹지 않는다. 생새우는 그 날의 느낌 때문에 지금도 먹고 싶지 않다.


요즘도 횟집에 가면 생새우가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생새우를 날렵하게 집어서 먹을 수 있다면 나도 좀 날렵하고 강해질까? 워낙에 느려터지고 약해빠진 허약한 영혼을 가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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