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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n 16. 2023

저니맨의 다음 여정을 응원하며

키움 히어로즈 NO.43 에릭 요키시 

지구 정반대 편의 동아시아 야구 리그까지 찾아오는 외국인 선수 대부분은 저니맨(Journeyman)의 커리어를 갖고 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분명 경쟁력이 있지만 빅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한 미생. 하지만 손바닥을 물집투성이로 만든 글러브를 차마 내려놓지 못한 야구광들. 그렇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무수히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 스포츠맨이 NPB나 KBO리그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에릭 요키시도 그런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1989년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난 요키시는 노스웨스턴 대학 졸업 후 고향의 야구팀인 시카고 컵스의 지명을 받으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5년간의 마이너 생활 끝에 빅리그 무대를 밟아 4경기서 14.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88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요키시의 공은 메이저리거가 되기에 너무 느렸고, 컵스 구단은 유망주의 나이를 지난 평균 89.3마일의 좌완 투수를 전력 외로 분류했습니다. 그렇게 요키시의 여행이 시작됐습니다.


2016년 4월에 친정팀 컵스로부터 지명할당을 당한 요키시는 시카고에서 자동차로 20시간 떨어진 거리의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마이애미 이적 후에는 루이지아나주 뉴올리언스의 마이너 팀에서 뛰었으나, 두 달 만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825km/h 떨어진 거리 도시의 장기 숙박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2017년 봄에는 애리조나 디백스로 이적함에 따라 10시간 거리의 테네시주 잭슨시로, 이듬해에는 내슈빌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겨울,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눈앞에 둔 요키시는 인천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요키시가 버건디 캡을 쓰고 마운드에 섰던 시간 동안 훌륭한 성적을 올렸는지는 길게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의 사실입니다. 그는 지난 4년간 네 번째로 많이(118회) 선발투수로 등판해 세 번째로 많은 이닝(707.2이닝)을 던졌습니다. 키움 히어로즈 투수로서는 유일하게 50승 이상(51승)을 거뒀으며, 같은 기간 투수들 중 가장 높은 승리기여도(sWAR 20.10)를 올렸습니다. 드류 루친스키, 케이시 켈리와 함께 KBO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외국인 투수'였습니다.


경력만큼 빛나는 것은 그가 지난 5년간 한국과 키움 구단에 보여준 애정입니다. 요키시에게는 몇 번이나 상위 레벨의 리그로 떠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현지 매체가 요키시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그를 눈여겨보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요키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키움에 남아 후배 선수에게 변화구를 가르쳐주며 겨울을 보냈습니다. 허벅지의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윈나우'를 천명한 소속팀의 성적을 위해 아픔을 참고 공을 뿌렸습니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중요한 시기에 다쳐서 미안하다"였습니다. 


한 달 뒤 만 나이로 서른넷이 되는 요키시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구단도 팬들도 선수 본인도 그의 여정이 한국에서 끝나기를 바랐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저니맨은 다시 캐리어를 챙기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키움 유니폼을 입은 기간 동안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다음 여행지에서도 모두의 사랑을 받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5년 만에 다시 시작된 요키시의 여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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