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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l 10. 2024

야구는 마지막까지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스포츠니까

키움 히어로즈 송성문

2024년 7월 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KBO리그 정규시즌 후반기 첫 경기. 양 팀의 1선발 투수 라이언 와이스와 아리엘 후라도가 마운드에 오른 에이스 매치는 5회까지만 해도 한화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했다.


1회초부터 장재영의 타구 판단 미스로 주자가 2루에 안착한 사이 4번 지명타자 안치홍의 좌익수 앞 안타가 터졌다. 3회초에는 나흘 전 KBO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13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던 3번 타자 요나단 페라자, 그리고 안치홍의 빨랫줄 같은 타구가 각각 우측 담장과 좌측 담장을 넘겼다. 한편 경기 초반부터 한화 타자들에게 득점 지원을 받은 와이스는 5회까지 단 50개의 공을 던지면서 키움의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15,000명에 가까운 관중이 찾아온 돔구장을 한화 팬들의 함성 소리가 가득 메웠다.


그런데 6회 들어 경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두타자 3루타와 볼넷, 내야수 실책이 쏟아져 나오며 키움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4번 타자 3루수 송성문. 와이스는 송성문과의 앞선 두 번의 승부 때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공략하며 상대방에게 좋은 공을 주지 않으려 했다. 와이스로서는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된 완벽한 '공략법'이었다. 송성문은 첫 타석에서 건드리지 않아도 스트라이크 콜이 선언될 공을 어쩔 수 없이 잡아당겨 2루수 앞 땅볼로 물러났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약 올리듯이 존을 살짝 벗어나는 유인구에 속아 삼진 아웃을 당했다.


하지만 세 번째 타석에서의 송성문은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송성문은 두 번째 타석과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떨어진 곳으로 날아오는 공을 침착하게 지켜봤다. 초조해진 와이스가 타자의 몸쪽에 꽉 찬 강속구를 던짐으로써 카운트를 잡으려 했다. 송성문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의 공이었다. 4구째까지 미동도 없던 송성문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가며 야구공이 외야 깊숙한 곳까지 굴러갔다. 점수 차를 한 점 차로 좁히는 키움의 후반기 첫 적시타였다.


한 점 차 뒤처진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네 번째 타석에서는 '특급 신인' 황준서의 공을 침착하게 지켜보면서 볼넷을 얻어냈다. 이 볼넷은 경기 내내 있는 힘껏 야구공을 받아 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후속 타자들이 침착하게 투수와 수싸움 하여 짜릿한 역전극에 성공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여기까지의 내용만 놓고 보면 그저 한 프로야구단의 4번 타자가 언제나와 같이 빼어난 실력으로써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7월 10일 현재 송성문은 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3할 5푼의 타율과 .932의 OPS(On base Plus Slugging)를 기록 중인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하나이므로 딱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올해로 프로 10년차를 맞이한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커리어 내내 35개의 홈런과 2할 5푼 6리의 타율, .690의 OPS에 그쳤던 '평범한 타자'에 불과했다.


물론 그가 평범한 타자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는 2024년 현재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다. 키움이 어제 경기의 8회말 투아웃까지만 해도 한 점 차로 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키움이 2024년 정규시즌 후반기의 첫 경기를 짜릿한 승리로 마무리 지은 것처럼, 송성문 역시 팀의 4번 타자 겸 해결사로서 커리어 첫 골든글러브 수상에 도전하는 올스타 3루수가 됐다. 




● 이영민 타격상의 진실? 진실은 '송성문이 잘 쳤다는 것'

이영미 타격상 수상에 대해 "받아도 되나 싶었다"라는 소감을 남겼던 송성문은 프로에서도 매서운 타격으로 퓨처스 올스타에 선정됐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015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5라운드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았던 송성문은 지명 당시 타격에 강점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고교야구 최고의 타자에게 수여하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송성문은 프로 지명 후 인터뷰에서 '이영민 타격상' 수상에 대해 "마음이 조금 그랬다. 내가 받아도 되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어째서일까. 


사실 2014년 고교야구 대회가 한창 진행될 무렵에만 해도 '이영민 타격상'의 유력한 수상자는 송성문이 아닌 다른 이들이었다.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직전까지 5할을 훌쩍 넘는 타율을 기록하던 북일고의 주전 유격수 이도윤, 전·후반기를 가리지 않고 꾸준한 타격감을 보여주던 같은 팀의 1루수 송우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이도윤의 방망이가 식었고, 시즌 막바지까지 5할 타율을 유지하던 송우현도 마지막 전국대회였던 전국체전에서 2할 5푼의 타율에 그치며 4할 6푼 8리까지 타율이 떨어졌다. 이로써 7리(.007) 차이로 송우현의 타율을 앞선 송성문이 상을 받게 됐다.


야구인의 밤 행사에서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면서도 "우현이가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쳤으면 우현이가 탔을 것"이라며 얼떨떨해했던 송성문은 이후 기자들 앞에서도 "규정타석에 딱 걸렸다. 우현이에게 많이 미안하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송성문의 '이영민 타격상' 수상에 대해 단순한 운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서며 3년 내내 꾸준히 성적을 끌어올렸던 송성문 역시 스카우트의 많은 관심을 받는 유망주였기 때문이다. 2014년 초부터 이미 "타격폼이 완벽하다. (3학년 들어) 힘도 붙어서 프로에서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라는 평을 받았던 송성문이었다. 어느 정도의 행운이 작용했을 수 있을지언정, 결국 자신의 실력으로써 상패를 거머쥐었던 셈이다.


송성문은 데뷔 1년차 시즌부터 퓨처스리그에서 화성 히어로즈의 주전 2루수로 나서며 79경기 318타석에서 3할 9리의 타율과 .814의 OPS를 기록했다. 고졸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빼어난 성적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인정받아 퓨처스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인 시절의 송성문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김성갑 前 2군 감독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컨택 능력을 가졌다며 "전체적으로 기량도 좋고 야구선수로서의 성품과 성실성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향후 몇 년간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란다면 국내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극찬을 남겼다. 




● 5년의 정체기, 하지만 포기하지 않다

비시즌 동안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에 임했던 송성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송성문이 히어로즈 야수진의 미래 겸 국내 최고의 타자가 되는 날은 빠르게 찾아오지 않았다. 데뷔 4년차였던 2018시즌에 정규시즌 일정의 절반 이상인 78경기에 나서며 3할 타율과 7홈런을 기록하면서 기대감을 끌어올렸으나, 이듬해 풀타임 주전의 기회를 보장받았음에도 2할 2푼 7리의 낮은 타율과 3개의 홈런에 그쳤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팀에서 세 번째로 많은 타석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홈런은 24개로 매년 8개의 홈런을 치는 수준이었으며, .680의 OPS 또한 파워 포지션인 3루수로서 평균 이하의 성적이었다.


선수 본인이 생각해도 "팀에 민폐인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년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 3루수로서 많은 홈런을 치는 타자로 성장하려 노력했더니, 그때부터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 매번 당차게 방망이를 돌린 덕에 멘탈이 좋다는 평을 받았지만, 사실은 스스로 프로가 아닌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섬세한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고민만 쌓이는 사이 2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무주공산이었던 3루 포지션에는 김휘집이나 고영우 같은 경쟁자도 생겼다. 시범경기에서는 8경기 동안 정확히 1할의 타율을 기록했다. 2024년은 송성문에게 있어 선수 생활 최악의 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에게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었다면 말이다.


홈런 욕심을 포기하고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타격 접근법이 빛을 발했다. 발사 각도는 낮지만 강하고 빠른 타구를 양산하는 타자로 거듭났다. 같은 팀 동료 겸 후배인 김혜성을 따라 혹독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탄산음료를 끊어가며 조각상 같은 몸매를 만들어낸 끝에, MLB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에반 필립스에게 2루타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다. 자신도 이정후나 강백호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후배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80경기 동안 단 하나의 실책에 그치는 등 감정 기복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홍원기 감독은 송성문에 대해 "원래 잘 치는 선수였다"며 "상무 제대 후에도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조금 늦게 올라온 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단지 지난겨울 동안의 노력만이 있었기에 지금의 송성문으로 거듭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송성문은 2021년 겨울부터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2022년 겨울부터는 과거 넥센 시절 히어로즈의 타격코치였던 허문회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에게 꾸준히 개인 지도를 받았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거의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 흘렸던 구슬땀이 커리어하이로 이어졌다. 




●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정해져 있다고? ...아직 모른다. 

송성문은 최근 골든글러브에 욕심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미 끝난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정규시즌은 62경기나 남았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국민 타자' 이승엽을 추억할 때 호리호리한 체형의 교타자였던 신인 시절의 이승엽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또한 그가 40홈런을 쳤던 2010년의 모습이나 일본프로야구(NPB), MLB를 차례로 정복하던 모습을 떠올릴지언정 잠재력을 개화하기 전인 20대 초반의 모습을 생각하지는 않을 테다. 


송성문도 마찬가지다. 이제 좀처럼 포텐을 터뜨리지 못해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만년 유망주는 이곳 고척 스카이돔의 그라운드에 없다. 어느 팀에 가도 당당히 주전 3루수 겸 에이스 타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올스타 3루수'의 모습이 송성문의 현주소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그렇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지만, 사실 1회초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야구는 마지막까지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스포츠니까.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송성문은 최근 골든글러브 욕심이 있느냐는 지상파 언론 기자의 질문에 "이미 끝난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전반기에만 20홈런-20도루 클럽을 달성한 김도영과 자신을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시즌은 아직 62경기나 남았다. 야구 경기로 치면 6회초부터 9회말까지의 시간 동안, 골든글러브 레이스에서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0년 전의 송성문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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