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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Jul 15. 2024

셀링 클럽의 지명권 수집은 정말 악행일까?

2024년 KBO리그 지명권 트레이드 논란

KBO리그 복수 구단의 단장들이 키움 히어로즈의 지명권 수집에 대해 성토하고 나섰다. 키움은 오는 9월 9일에 열리는 2025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현재까지 총 3장의 지명권을 수집했다. 정규시즌 개막 전 포수 이지영을 3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대가로 SSG 랜더스에 보냈으며, 지난 5월에는 만 21세의 국가대표 유격수 김휘집을 NC 다이노스에 보내며 1·3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왔다. 키움은 지난해에도 총 14장의 지명권을 손에 쥔 채 드래프트에 임했으며, 드래프트까지 남은 2개월 동안 추가로 지명권을 수집할 전망이다. 그런데 타 구단이 보기에는 키움의 지명권 수집을 통한 '상위권 유망주 독식'이 과하다는 것이다.


금일자 <스포츠서울>의 기사에 따르면, 모 구단의 단장은 "(키움과 트레이드를 할 때) 굵직한 선수일수록 상위 라운드 지명권은 필수"라고 볼멘소리하며 "보완할 규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1라운드 2년 연속 거래 금지, 혹은 1라운드는 트레이드 금지 등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타 구단 단장 또한 "한 팀에 유망주가 너무 쏠리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나"라면서 "지명권 트레이드에 제한을 뒀으면 좋겠다"고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몇몇 단장들은 미국프로농구(NBA)의 '테드 스테피엔 룰(Ted Stepien Rule)'을 참고하여 지명권 수집을 방지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테드 스테피엔 룰'은 키움처럼 선수를 팔아서 지명권을 모으는 구단을 규제하는 조항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사기 위해 지명권을 판매하는 단장들이 구단을 망치지 못하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 NBA 벤치마킹하자고? '테드 스테피엔 룰은 지명권 파는 팀 규제하는 규정'

NBA 프로농구단 클리블랜드 캐빌리어스 역사상 최악의 구단주로 평가받는 테드 스테피엔. (사진 출처 : elgurudelbasket.com)

사업가였던 테드 스테피엔(1925~2007)은 20대 초반이었던 1947년에 단 500달러를 가지고 광고 회사인 Nationwide Advertising Service를 창립했으며, NBA에 발을 들이기 직전이었던 1980년에는 회사의 규모를 연간 8,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았던 스테피엔은 1977년 남자 프로 소프트볼 리그(APSPL)가 출범하자 이듬해 클리블랜드 제이버즈를 인수해 APSPL에 참가했으며, 1980년에는 프로농구단 클리블랜드 캐빌리어스의 지분을 82%가량 매수하며 NBA의 구단주가 됐다.


수완가였던 스테피엔은 매년 리그 최하위에서 허우적대던 캐빌리어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승부수를 띄웠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명권 장사'였다. 스테피엔은 3년간 캐빌리어스의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무려 다섯 장의 1라운드 지명권을 상위권 팀에 판매했다. 하지만 지명권을 내주며 영입한 선수들은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오히려 상위권 팀들이 캐빌리어스에게 받은 1라운드 지명권으로 좋은 기량의 신인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각 구단의 수준 격차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스테피엔의 횡포를 더 지켜볼 수 없었던 NBA 사무국은 1980년 겨울에 캐빌리어스의 트레이드 권리를 동결시켰고, 모든 트레이드를 사무국의 승인 하에 이루어지도록 제한했다. 이와 함께 구단에서 함부로 지명권 판매를 남발해 1980년대 초반의 스테피엔처럼 구단을 망치지 못하게끔 신설한 규정이 바로 '테드 스테피엔 룰'이었다. 해당 규칙으로 인해 모든 NBA 팀은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2년 연속으로 타 구단에 넘길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테드 스테피엔 룰'에서 지명권을 받는 구단의 손발을 묶는 내용은 없다. NBA의 '셀링 클럽'은 선수를 보내는 대신 몇 장의 1라운드 지명권도 제한 없이 받을 수 있다. 




● KBO리그에서 지명권 거래 제한됐던 이유는 '부자 구단의 횡포' 때문

각각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박재홍, 마일영. (사진 출처 : 주간동아, 스포츠코리아)

KBO리그에서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 동안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 거래가 금지됐던 적이 있다. 이는 현대 유니콘스의 과도한 상위 라운드 지명권 수집 때문이었다. 다만 현대는 키움처럼 현재를 팔아 미래를 사 오는 대신, 가난한 구단들에게 현금을 주고 지명권을 구매함으로써 신인 최대어를 싹쓸이하는 횡포를 부렸다.


1990년대 당시 재계 1위였던 현대 그룹은 여러 차례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려고 시도했으나, 타 구단들의 반대에 막혀 좀처럼 KBO리그에 참가하지 못했다. 결국 현대그룹은 제2의 프로야구 리그를 만들겠다며 1994년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창단했다. 그리고 신인 드래프트 최상위 순번에서 지명을 받은 선수들에게 프로야구단이 제시한 계약금보다 2~3배는 많은 금액을 건네면서 이들이 실업리그행을 선택하게끔 유도했다. 당시 KBO리그는 아직 FA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으며,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은퇴 시기는 오늘날보다 훨씬 빨랐다. 선수들은 선동열이 1억 원대 연봉을 받는 KBO리그에 가는 대신 현대 피닉스의 손을 잡는 길을 택했다.


1995년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며 KBO리그에 참가하게 됨에 따라, 피닉스 소속의 선수들이 KBO리그로 향하게 됐다. 이때 현대는 자신들이 하이재킹한 선수들을 각 프로야구단에 이적료 없이 돌려주는 대신 조건 하나를 걸었다. 해당 선수들을 실업리그로 하이재킹할 때 안겨줬던 계약금을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구단이 현대의 제안에 동의했지만, 해태 타이거즈는 현대가 박재홍을 피닉스로 데려가며 줬던 4억 3000만 원의 계약금을 물어줄 형편이 안 됐다. 결국 해태는 1992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권을 현대에 내주고 전년도 8점대 투수였던 최상덕을 받아오는 형식으로 박재홍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박재홍 트레이트를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본 현대는 이후로도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투수 문동환의 계약금 4억 원을 돌려받는 대신 외야수 전준호를 받아오는 거래를 성사하면서 큰 재미를 봤다. 하지만 현대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쌍방울 레이더스의 구단 사정이 어려워진 것에 주목한 현대는 총 15억 원의 현금을 쌍방울에 내주며 포수 박경완과 마무리 투수 조규제를 영입했으며, 2000년 신인 드래프트가 실시된 1999년 11월 2일에는 쌍방울에게 5억 원을 내주면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받아오기에 이르렀다. 이때 현대가 지명한 좌완투수 마일영은 데뷔 2년차에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10승 투수가 됐다. 


결국 돈으로 우승 트로피를 구매하는 수준이었던 '부자 구단' 현대의 횡포를 두고 보지 못한 KBO는 드래프트 지명권 자체를 거래하지 못하게끔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다시 말해, 24년 전 KBO리그의 드래프트 지명권 양도 금지는 '가난한 구단'을 보호하기 위해 KBO가 브레이크를 걸었던 셈이다.




● '셀링 클럽'이 '현재'를 대가로 지불하고 정당하게 데려온 '미래'가 문제라고?

20홈런 포수 박동원을 내준 대가로 얻은 국가대표 포수 김동헌, 토종 에이스 최원태의 대가로 받아온 전준표.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다시 키움의 지명권 장사(?)를 둘러싼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키움은 2021년 1월의 김상수 트레이드(김상수 ↔ 2022년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지명권, 현금 3억)를 시작으로 지난 4년간 총 여덟 장의 드래프트 지명권을 얻어왔다. 그리고 지명권을 받아오면서 내준 선수들은 모두 키움을 대표하는 얼굴들이었다. 


김상수는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40홀드를 기록한 셋업맨이었으며, 박동원(↔ 김태진, 2023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 현금 10억)은 잠실 야구장에서도 20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거포 포수였다. 주효상(↔ 2024년 2라운드 지명권)은 1차지명 출신으로 구단 차원에서 꾸준히 1군 경기에 내보내며 차세대 주전 포수로 키우던 유망주였다. 김태훈(↔ 이원석, 2024년 3라운드 지명권)은 마무리도 가능한 셋업맨이었으며, 최원태(↔ 이주형, 김동규, 2024년 1라운드 지명권)는 국가대표 출신의 토종 우완 에이스로서 LG 트윈스의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 되었다.


키움은 현재를 팔아 미래를 산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2022년에는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박동원의 부재로 우승에 실패했고, 지난해에는 최원태를 LG에 보낸 직후 선발진이 완전히 붕괴되며 처참한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서 손에 넣은 것이 바로 만 19세의 나이에 국가대표 포수가 된 김동헌, 선발 유망주 전준표, 차기 주전 유격수 이재상, 그리고 사이드암 유망주 노운현·이우현이었다. 


'지명권 장사'라는 프레임에 가려졌을 뿐, 키움은 현재를 팔아 미래를 샀던 캐빌리어스나 약소 구단의 지명권을 돈으로 매수했던 현대의 경우와 다르다. 키움은 모든 리스크를 감수해 가며 '셀링 클럽'으로서 정당한 값어치를 치르고 미래를 구매했다.




● '지명권 수집' 그만하라고? 생떼는 이제 그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2주 남긴 상황에서 최대어로 떠오른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 조상우.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복수의 KBO리그 프로야구단 단장들이 키움의 '지명권 수집'을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트레이드 블록에 올라와 있는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 조상우의 값어치가 비싸기 때문이다. 


내년 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는 조상우는 현재 우승을 노리나 불펜이 약한 복수 구단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형욱 키움 단장은 "조상우는 우리 팀의 간판선수"라면서 "김휘집 트레이드로써 1, 3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왔다. 조상우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휘집 트레이드도 거래 성사 당시 적잖은 수의 NC 팬들이 너무 비싼 값을 치렀다며 성토한 바 있다. 각 구단 단장의 입장에서도 조상우의 몸값은 섣불리 거래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비싸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가뜩이나 뎁스가 얇은 '셀링 클럽' 키움으로서는, 타 구단에 판매할 경우 1군 불펜진 자체가 완벽히 붕괴될 리스크가 뒤따르는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높은 값어치의 미래를 책정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몸부림이다. 그리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필수재도 아닌 상품의 비싼 값이 불만이라면, 구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금 타 구단들은 조상우의 값이 비싸다고 투덜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키움의 미래 보강 전략이 과하며 이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이런 모습을 가리켜 '생떼 부린다'라고 말한다.


6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각 구단에서 선수 몸값에 과한 거품이 껴있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그런데 구시렁거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KBO 총재에게 부탁해 FA 선수의 몸값을 최대 80억 원으로 제한하는 'FA 상한제'를 도입하려 했다. 당연하지만 프로 스포츠 산업이라는 바닥 위에 주저앉아 떼를 썼던 각 구단과 경제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려 했던 정운찬 前 총재는 비웃음을 샀다. FA 상한제와 지명권 거래 규제가 어떤 모습에서 닮았냐고? 둘 다 똑같이 주장하는 사람이 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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