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김성민
불펜 투수로서 역동적인 폼으로 전력투구를 해도 평균 135.9km/h의 느린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좌완 투수가 있다. 2024년 KBO리그에서 규정 이닝의 30% 이상을 투구한 선수 중 이 투수보다 느린 투심을 던진 이는 여섯 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구속이 중요하지 않은 언더핸드 스로거나 완급 조절을 하며 던지는 선발투수였다. 이 선수는 리그 평균자책점이 4.89일 정도로 타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리그에서 2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점으로 호투 중인 리그 최고의 프라이머리 셋업맨이다.
이 투수가 리그 평균보다 약 5km/h 느린 공으로도 프로야구를 주름잡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글쎄, 어쩌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강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무뎌지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대구상원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김성민은 1년 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상위 지명이 점쳐지는 초특급 유망주였다. 201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최고 144km/h의 빠른 공을 던지며 3승을 책임졌고, 대회 내내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며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쥐었다. 전국대회 종료 후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구단 볼티모어 오리온스와의 계약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볼티모어의 단장이었던 댄 듀켓은 와다 츠요시, 천 웨인 등 아시아권 선수를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었다.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던 정대현을 영입하려 하는 등 마찬가지로 눈독 들이고 있던 한국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좌완 유망주가 등장하자, 발 빠르게 영입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인 드래프트 개최 전 드래프트 대상자와 MLB 구단 관계자가 접촉하는 것은 KBO와 MLB 간의 협정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대한야구협회(KBA)에서는 볼티모어 구단에 즉각 항의하는 동시에 김성민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KBA가 김성민을 한국 야구계에서 영구제명한 직후, 김성민은 "진심으로 여기(미국행)에 내 모든 인생을 걸었다"며 "도박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인터뷰했다. 하지만 볼티모어 구단에 있어 김성민 영입 건은 '팀의 명운을 건 배팅'이 아니었다. 볼티모어는 KBA의 입장 발표 직후부터 김성민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았으며, 그해 7월에는 단장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약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년 전 한 선수의 일가족이 큰 리스크를 짊어지게 설득하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마운드에 설 수 없게 된 김성민은, 고교 졸업 후 일본행을 택했다. 김성민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일본경제대학에서 김성민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안겨줬고, 식비와 기숙사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에이전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김성민이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는 KBA의 영구제명 징계가 해제됨에 따라 대학 졸업 후 KBO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도 열렸다. 그러나 징계 해제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전트에게 '규정을 어기고 국내 프로 구단과 교섭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스포츠 언론에서는 김성민이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국제 야구 협약을 어겼다는 보도를 앞다퉈 내놓았다. 그러나 김성민에 대한 고발은 단 한 달 만에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다. 진실 공방 과정에서 에이전트가 약속과 달리 김성민의 기숙사비와 식비를 대납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김성민으로서는 해외에서 기약 없이 야구를 이어가던 상황에서 영문도 모른 채 체납 독촉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선수 생활에 탄력이 붙을 때 즈음 다시 속앓이를 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일본에서의 4년 동안 조용히 실력을 갈고닦은 김성민은 2017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최고 147km/h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좌완 투수 자원으로 주목받았다. 그해 4월, 김성민은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와 상체 전체에 타박상을 입었다. 4학년으로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려 했다가 도리어 탈이 났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참여한 해외파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김성민이 던진 가장 빠른 공의 구속은 130km/h 초·중반대였다.
여기까지가 김성민의 대학생 시절까지의 이야기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김성민은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최상위 순번에서 SK 와이번스(現 SSG 랜더스)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 구단에서는 김성민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최고 140km/h 후반대의 빠른 공을 던졌다는 점, 트라이아웃에서 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구의 완성도가 높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송일수 스카우트팀 매니저는 "즉시 전력이라고 판단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며 부상에서 회복하고 나면 최고 147km/h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김성민이 대학생 시절의 구속을 회복하는 일은 없었다.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 트레이 힐만 감독이 5선발 후보로 주목한 김성민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지만, 최고 구속은 143km/h에 그쳤다. 결국 5선발 경쟁에서 밀려나며 불펜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개막 직후 한 달 동안 10경기서 11.2이닝 3피홈런 9사사구 평균자책점 6.17로 부진하다가 1군에서 말소됐다. 말소 후 2군에서 선발 수업을 받았지만 17일 만에 트레이드 소식을 접하게 됐다. 넥센 히어로즈(現 키움) 투수 김택형과의 1대 1 트레이드였다.
1군 데뷔 46일 만에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 김성민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며 23경기서 76이닝을 던지며 4승 3패 평균자책점 4.74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이듬해에는 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했으나, 데뷔 3년차인 오주원·김상수·조상우·윤영삼·한현희·양현·이영준과 함께 철벽 필승조를 결성하여 팀의 창단 두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2019시즌 후 비시즌 기간 동안에는 SNS를 통해 팬들에게 재치 넘치는 모습을 한껏 뽐냄으로써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다고 모두가 생각한 순간에 다시 한번 고난이 찾아왔다. 2020시즌 들어 대학생 시절 교통사고로 다쳤던 어깨의 통증이 심해지면서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없었다. 6월까지 단 8.1이닝을 투구하는 데 그치다가 후반기 들어 사이드암 투수로 변신해서 마운드에 돌아왔다. 시즌 중의 투구 폼 교정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리 없었고, 결국 6점대 중반의 높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사정을 알 리 없었던 팬들로부터 실망 어린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2021시즌 후 팔꿈치 수술을 받은 김성민은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단을 추진했으나 낙방했다. 보통 팔꿈치 수술을 받은 야구선수의 경우 신체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공익이 아닌 현역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군 복무 중 공익으로 전환되면서 올해 시범경기 개막일이 돼서야 다시 야구선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실전 감각이 전무한 탓에 시범경기에 등판하지 못했고, 정규시즌 개막 직후 퓨처스리그 5경기서 4.2이닝 7피안타 3볼넷 평균자책점 7.71에 그쳤다.
여기까지가 '프로야구 선수' 김성민의 20대 시절의 이야기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올해 다시 마운드에 서기 전까지, 30대 이전의 김성민이 걸어왔던 길은 단 한 번도 평탄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130km/h 중반대의 공으로 3점 차 이내의 타이트한 상황에서 타자들과 승부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마저 매 경기가 가시밭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야구공은 둥글었고, 험난한 돌밭 위를 덜그럭거리면서도 잘만 굴러갔다. 김성민이 눈앞의 현실에 좌절하여 스스로 공을 멈춰 세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속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제구를 갈고닦는 데 집중했다. 단 한 순간의 사고로 잃어버린 구속에 연연할 법도 했지만, 경솔한 실수로써 데뷔조차 못 할 뻔했던 김성민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빛낼 수 있는 더 빠른 길을 선택했다. 자신이 구위로써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매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시도했다. 코칭 스태프, 전력 분석팀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더 나은 투수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깨 문제로 인해 팔 각도를 내리게 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자신의 투구 영상을 면밀히 분석하며 그립을 연구했다. 기존의 포심 패스트볼 대신 투심 패스트볼을 주력 구종으로 삼았다. 올해 들어서는 사이드암과 쓰리 쿼터 사이의 팔 각도에서 공을 던지는 자신만의 스타일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디셉션을 극대화하면서도 원하는 코스로 공을 던져, 타자 앞에서 살짝 휘는 투심으로써 범타를 유도하는 레퍼토리를 정립했다.
그렇게 30세의 프로야구 선수 김성민이 완성됐다. 아직 베테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젊은 나이지만 스스로도 "군 입대 전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그 많은 경험에서 나름 좋은 것들을 조금씩 적립해 놓았다"라고 말하는 노련한 셋업맨이 되었다. KBO리그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느린 공을 전력투구함에도 불구하고 덤덤히 정면 승부하며 타자들을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내는 철벽 계투가 만들어졌다.
김성민은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던 당시 스포츠 언론으로부터 성적에 대한 질문을 받자 "성적은 늘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투수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데뷔 이래로 개인 성적의 목표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 상 했던 이야기다. 그런데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2019년 직후, SNS에서 '캐슬민'으로서 명성을 떨칠 때 야구 전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있다. "(팬들이 제게 입덕하게 만든) 노하우 따위는 없습니다. 타고난 재능입니다."
올겨울은 지난 2년간 SNS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묵묵히 야구공을 굴려왔던 '김성민의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