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루벤 카디네스 영입
키움 히어로즈가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34), 루벤 카디네스(27)와 계약했다. 이로써 키움은 외야 양 코너를 용병으로 채움과 동시에 2009년 서울 히어로즈 이후 16년 만에 '2용타 체제'로 정규시즌을 맞이하는 팀이 되었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 KBO리그는 2014년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2명에서 3명으로 확대했고, 2020년에는 3명 모두 한 경기에서 동시에 출전할 수 있게끔 규정을 손질했다. 하지만 지난 11년간 외국인 슬롯 3개 중 2개를 타자 영입에 사용함으로써 정규시즌을 준비한 구단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시즌 중 대체 영입을 포함하더라도 2015년의 kt 위즈와 2019년의 삼성 라이온즈, 2020년의 SK 와이번스(現 SSG 랜더스)가 전부였다.
2015년 당시 신생 구단이었던 kt는 네 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음에도 3개의 슬롯을 투수 영입에 사용하면서 1군 데뷔 시즌을 준비했다. 타선이 조금 약하더라도 세 명의 외국인 에이스가 선발 로테이션에서 버텨준다면 어떻게든 1년을 버틸 수 있다는 계산 하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정규시즌이 개막하자 타선의 허약함이 도드라졌고, 투수진에서는 엄상백·정대현·정성곤 등의 투수들이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결국 kt는 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앤디 시스코를 방출하고 1루수 댄 블랙을 영입하며 타선을 보강했다.
kt의 승부수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거대한 신체 조건을 토대로 한 파워와 빼어난 컨택을 겸비한 블랙의 가세가 정교함이 다소 떨어졌던 kt 타선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블랙은 잔부상에 시달리며 54경기 출장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12개의 홈런과 3할 3푼 3리의 고타율, 0.989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며 앤디 마르테, 김상현과 함께 강력한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했다. 블랙을 영입하기 전까지 리그 최하위권이었던 타선은 6월 한 달간 팀 타율 3위·홈런 1위를 기록하는 등 매 경기 불을 내뿜기도 했다.
kt와 블랙의 동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단 첫 1군 시즌을 최하위로 마무리한 kt는 팀 타율 6위·OPS 8위 등 중하위권의 성적을 거둔 타선보다는 리그에서 유일하게 5점대 중반대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진이 더욱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kt는 15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와 FA를 통해 외야수 유한준과 이진영을 영입하고 '3투수·1타자' 조합으로 외국인 선수 슬롯을 구성하면서 블랙과의 이별을 택했다.
2019년의 삼성은 중심 타자인 구자욱이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외야 구멍을 메우기 위해 맥 윌리엄슨을 대체 선수로 영입했다. 한국행 직전 4년간 트리플A에서 호성적을 올렸으며 빅리그에서도 많은 기회를 받았던 윌리엄슨이 타자 친화 구장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다린 러프의 뒤를 받쳐준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40경기 동안 4홈런에 그치는 등 기대에 전혀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고, 삼성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일조하고 말았다.
MLB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톱 유망주 출신인 화이트는 SK 유니폼을 입기 전까지 4년간 빅리그에서 760타석의 기회를 받을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던 거포 유망주였다. 클러치 능력에 있어 정평이 나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많은 홈런에 비해 효율적으로 타점을 생산하지 못하던 SK의 타선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두 차례의 손가락 골절 부상을 당하며 겨우 아홉 경기만을 뛴 채 시즌아웃 되었고, 사실상 두 명의 외국인 선수만으로 잔여 시즌을 치른 SK는 3할 중반대의 승률에 그치며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용타 체제'로 정규시즌을 준비한 마지막 팀은 2009년의 서울 히어로즈다. 하지만 16년 전의 히어로즈는 키움과 달리 리그 최상위권의 토종 선발진을 보유했기에 과감히 두 명의 외국인 타자를 기용할 수 있었다.
창단 후 첫 시즌이었던 2008년의 히어로즈는 선수단이 100%의 실력을 낼 수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최종 7위로 '꼴찌'를 면했다. KBO리그 굴지의 강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단을 그대로 물려받은 덕분이었다. 특히 선발진의 경우 외국인 선수인 제이슨 스코비가 6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 중 퇴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상위권의 퍼포먼스를 뽐냈다.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 장원삼과 10승 투수 마일영, 선발 유망주 이현승으로 구성된 '장마리 트리오'가 선발진을 지탱한 덕분이었다. 이러한 전력적 배경은 히어로즈가 외국인 선수 최대 2인 보유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2용타' 전략을 택하게 해줬다.
많아 봐야 일주일에 두 번씩 경기에 나서는 외국인 투수 대신 매 경기마다 타석에 들어선 클리프 브룸바와 덕 클락은 각각 히어로즈의 좌·우 날개가 되어줬다. KBO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브룸바는 30대 중반의 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까지 2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괴력을 과시했다. 클락은 3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구단 역대 최초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등 공·수·주 모든 분야에서 팀의 돌격대장으로 활약했다. 이 해 히어로즈의 정규시즌 최종 순위는 6위었으나, 4위와의 승차는 단 5.5게임에 불과했다.
2009시즌 종료 후 히어로즈 역시 타 구단처럼 외국인 투수를 영입했지만, 이는 결코 '2용타 체제' 전략의 실패 때문은 아니었다. 2010년 정규시즌이 개막하기 전 이현승과 장원삼, 마일영을 모조리 현금 트레이드로 팔아 치우면서 선발진의 기둥이었던 '장마리 트리오'가 해체된 탓이었다.
KBO리그에서 복수 구단이 2명 이상의 용병 타자로 외국인 선수 슬롯을 사용한 마지막 시즌은 2006년이다. SK 와이번스는 내야수 시오타니 가즈히코와 캘빈 피커링을 영입했으며, 한화는 전년도에 맹활약을 펼친 내야수 루 클리어·외야수 제이 데이비스와 재계약함으로써 두 시즌 연속으로 '2용타 체제' 전략을 밀어붙였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는 오늘날의 키움과 마찬가지로 외야 양 코너를 외국인 타자(브라이언 마이로우·펠릭스 호세)로 채웠다. 심지어 롯데는 시즌 중 브라이언 마이로우가 부진으로 방출되자 대체 선수로 또 다른 타자 용병(존 갈)을 데려오기도 했다.
다만 2006년의 롯데는 네 명의 토종 선발이 규정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선발진에 여유가 있던 팀이었다. 에이스 손민한이 두 자릿수 승수와 2점대 중반대 평균자책점으로 1선발 역할을 해냈고, 만 21세의 좌완 유망주 장원준이 규정이닝보다 50이닝 이상 많은 179.2이닝을 투구하면서도 3점대 중반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손민한의 뒤를 받쳐 줬다. 염종석과 이상목 역시 전성기에는 다소 못 미칠지언정 규정이닝과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SK와 한화의 선발진 사정도 비슷했다. 한화는 문동환-류현진-정민철-송진우로 이어지는 단단한 선발진을 자랑했다. SK는 채병용과 윤길현, 김원형이 선발진을 지켰다.
키움은 올해 아리엘 후라도와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라는 리그 최정상급 외국인 투수 듀오를 보유했음에도 선발 WAR 리그 5위에 그쳤다. 선발 로테이션을 고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토종 투수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하영민뿐이었기 때문이다. 시즌 전 토종 선발 후보로 기대받았던 김선기와 조영건은 고질적인 제구 불안 탓에 시즌 중 계투진으로 강등됐다. 이종민이 선발로서 아홉 차례의 기회를 받았으나 8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쳤고, 시즌 초반 호성적을 펼친 김인범도 시즌 중반부터 뚜렷한 약점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다. 결국 키움은 시즌 후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30km/h 초반대까지 떨어졌던 정찬헌을 마운드에 올려야 했다.
'고졸 루키' 김윤하가 역대 키움 히어로즈 고졸 신인 중 선발투수로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은 고무적이었다. 2년 차에 토종 에이스로 성장한 최원태가 1군 데뷔 시즌에 올해의 김윤하와 비슷한 성적을 올렸음을 생각하면, 김윤하 역시 당장 내년부터 규정이닝을 던지는 10승 투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 19세의 신인 투수에게 3선발 중책을 맡기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2017년의 최원태는 제이크 브리검, 앤디 밴 헤켄, 신재영의 뒷순번 로테이션에서 시즌을 시작해 부담 없이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그러나 2025년의 김윤하는 자신의 뒷순번 로테이션에 고졸 신인밖에 없다는 부담감을 안고 상대 팀의 토종 1선발과 맞붙어야 한다.
'빅 레드 히어로즈' 시절을 연상케 하는 화끈한 야구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푸이그는 30홈런 타자가 단 한 명밖에 없었던 투고타저 시즌에 이정후와 함께 팀 내 유이한 20홈런 타자였다. 다가오는 12월에 만 나이 34세를 맞이하는 적잖은 나이가 리스크지만, 에이징 커브만 오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이 보장될 것이다. 카디네스 역시 부상으로 신음하기 전까지는 풀타임 시즌을 소화했을 때의 성적이 기대되는 퍼포먼스를 뽐냈다. 두 타자가 외야 양 코너에서 활약한다면 분명 팀 100홈런을 겨우 넘긴 올해보다 훨씬 나은 타격 성적이 따라올 테다. 타자 유망주들의 푸이그-카데니스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의 우산 아래서 성장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2025년의 키움은 선발진'도' 불안 요소라는 것이다. 공을 못 치면 경기에서 패배하지만 공을 못 던지면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 키움 팬들은 이 사실을 후라도와 헤이수스, 하영민이 등판하지 않는 날마다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 사실을 내년에도 확인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졸 2년차 김윤하와 고졸 루키 정현우가 구단의 '베스트 플랜'대로 1군 선발진에 연착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