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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Sep 30. 2024

청춘을 세공한 값은 돌아오니까

키움 히어로즈 하영민


한국프로야구(이하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 투수 하영민(29)이 11년차 시즌에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영민은 올해 1군에서 풀타임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150.1이닝을 던지고 4.3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하영민보다 많은 이닝을 던지고 더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토종 투수는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류현진(한화 이글스), 양현종(KIA 타이거즈), 곽빈(두산 베어스) 뿐이었다. 네 명 모두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발투수로 나섰던 '한국 야구의 간판'이다. 하영민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이들과 비견될 만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번 시즌 28경기에 선발 등판한 하영민이 지난 10년간 단 19회의 선발 등판 기회를 얻는 데 그쳤다는 사실이다. 하영민은 데뷔 시즌이었던 2014년에 잠시 로테이션을 돌면서 13회 선발로 나섰으며, 이후에는 중간 계투 요원으로 분류되면서 매년 한두 경기 정도 임시 선발로서 나서는 데 그쳤다. 지난 2년간은 단 한 번의 선발 등판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하지만 하영민은 현실과 타협하고 중간 계투로서 중용되는 상황에 안주하는 대신, 10대 때 일찌감치 선발 경쟁에서 탈락한 이유에 대해 곱씹으며 끊임없이 약점을 보완해 왔다. '어렸을 때 못 이뤘던 그 꿈에 한 번 더 도전'하기 위해서.




● '미래의 선발 에이스에서 패전처리 투수까지' 수면 아래로 하염없이 가라앉다

신인 시절의 하영민. 미래의 선발 에이스로 기대받았으나 2년차부터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선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아마추어 시절 약체팀이었던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를 11년만에 전국대회 결승전까지 이끌었던 하영민은 2014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에서 넥센 히어로즈(現 키움)의 지명을 받으며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최고 145km/h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 3학년 때 매 경기에 등판하다시피 하며 108.1이닝을 던지면서도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정도로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다만 불안 요소 또한 명확했다. 180cm의 키는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투수들의 평균 신장(183.9cm)보다 작았으며, 63kg의 몸무게는 야구선수로서 너무 가벼운 체중이었다. 신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고등학생의 몸으로 3년간 231.1이닝을 던졌다는 점 또한 불안 요소였다. 당시 넥센 구단은 하영민에 대해 "장래성을 보고 뽑은 선수"라고 말하며 그를 마무리 훈련에도 보내지 않는 등 특별 관리했다. 잘못 손댔다간 산산조각 날 수도 있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다루듯 하영민을 육성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종잇장보다 얇았던 투수진 뎁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개월도 안 된 소년을 1군 경기장의 마운드 위로 내몰았다. 프로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도 전에 선발투수로서 데뷔전을 치르게 된 하영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경기장을 배회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최고 146km/h의 빠른 공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이용규·정근우·펠릭스 피에·김태균이 포진한 한화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잠재웠다. KBO 역사상 다섯 번째로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올린 고졸 신인이 된 하영민은 다음 등판도, 그다음 등판도 1군 선발로서 치렀다. 7월 말까지 1군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다.


원석을 다듬기도 전에 끌어다 쓴 후유증은 머지않아 찾아왔다. 데뷔전에서 평균 구속 141km/h를 기록한 하영민의 포심 패스트볼은 그해 마지막 1군 선발 등판이었던 7월 31일 한화전에서 5km/h 가까이 하락할 정도로 힘을 잃었다(136.4km/h). 결국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할 때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던 프로 초년생은 그해 8월부터 넥센이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진출할 때까지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소속팀의 준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염경엽 감독은 2014년 7월 31일 경기 후 하영민을 1군에서 말소하면서 "파워 면에서 메리트 있는 A급 중간계투는 되기 어렵다"며 하영민을 선발투수로 장기 육성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하영민은 이듬해 선발 수업을 받기는커녕 패전처리 투수로 전락했다. 담금질할 시간을 얻지 못한 채 계투진에서 궂은 역할을 도맡던 하영민의 팔꿈치에는 점점 금이 갔다. 2016년 5월에 팔꿈치 인대 미세 파열 진단을 받았고, 1년의 재활을 거쳐 복귀했으나 다시 한번 혹사당한 끝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 두드림 끝에 단단해지다

(원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산산조각 나버린 다이아몬드 원석 조각을 다시 모아 붙이는 과정은 길었다. 2018시즌 종료 후 수술대에 올랐던 하영민은 이듬해 곧바로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2군에서 재활에 전념하는 시간을 보냈다. 팔꿈치 인대 재건술을 받은 이력으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분류된 탓이었다. 그렇게 신체적 기량이 만개할 시기인 20대 중반을 경기장 밖에서 보냈다. 2018년 9월 21일 고척 삼성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던 하영민은 1290일이 지나서야 다시 마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그동안 소속팀의 투수진 사정은 하영민이 부상을 당하기 전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에릭 요키시 - 타일러 애플러 - 안우진 - 최원태 - 정찬헌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에는 하영민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다행이었던 점은,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한 하영민의 팔은 전력 투구시 140km/h 후반대의 강속구를 뿌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군 입대 전 다섯 시즌 동안 80경기에 출장했던 하영민은 지난 2년간 계투진에서 중용되며 98경기에 나섰다.


신인 시절 선발투수를 꿈꾸다 계투진으로 밀려난 무수한 '왕년의 유망주'들처럼, 하영민 역시 점수 차를 가리지 않고 경기 중·후반에 구원 등판하는 해결사 역할에 만족할 수도 있었다. '신인 시절 어려웠던 팀을 위해 커리어를 희생했다'라는 괜찮은 핑계도 있었다. 하지만 하영민은 현실을 핑계 삼아 포기를 정당화하지 않았다. "토종 에이스가 되고 싶다"던 신인 시절의 꿈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서 공이 던져져야만 시합이 시작되는 기쁨을 다시 한번 만끽하기로 다짐했다. 


지난겨울 마무리 캠프를 앞두고 홍원기 감독을 직접 찾아갔다. 선발투수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기 위함이었다. 홍원기 감독이 흔쾌히 수락하자, 그때부터 선발투수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비시즌 기간을 보냈다. 체질상 몸에 잘 붙지도 않는 살을 찌우는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함으로써 단단한 몸을 만들었다. 위닝샷으로 포심 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가다가 홈 플레이트 앞에서 살짝 꺾이는 커터와 포크볼을 연마했다.


4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선발 등판이었던 고척 LG전에서 5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3,111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 "기회를 잡고 싶었다"고 인터뷰했다. "어렸을 때 못 이뤘던 그 꿈을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승리투수가 되고 나서도 성적에 대한 특별한 욕심이 없다고 말하던 신인 시절과 달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150이닝을 던지고 10승을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에도 신인왕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동시에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했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 청춘을 세공한 값은 돌아오니까

11년의 두드림 끝에 히어로즈의 투수진에서 가장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거듭난 하영민. (원본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겨우내 근력 보강에 매진한 20대 후반의 원숙해진 몸은 계속해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아도 신인 시절처럼 방전되지 않았다. 하영민은 올해 28회의 선발 등판을 갖는 동안 5월 10일 한화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평균 142km/h 미만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았다. 공의 위력이 평소보다 조금 떨어지는 날이라고 해서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노하우 없이 힘으로 승부하던 신인 시절과 달리(14시즌 포심 구사율 42.9%), 커터와 포크볼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생긴 덕분이었다(24시즌 포심 36.3%·슬라이더 28%·포크볼 22.3%).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로야구 선수로 뛰면서 겪은 모든 실패와 좌절, 그리고 후회의 경험은 '하영민'이라는 원석을 세공했다. 일반인 기준으로도 깡마른 수준이었던 몸을 조금씩 다부지게 가꿔 나갔으며, '느린 공이 아쉽다'라는 평을 프로 입단 후 5km/h 넘게 구속을 끌어올림으로써 지워버렸다. 지난 2년간 중간 계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지 않았나 싶은 상황 속에서도 혹독하게 세공하고 세공한 끝에, 1년 내내 깨지지 않는 '단단하고 빛나는 보석' 하영민이 탄생했다.


하영민은 지난 8월 17일 사적 롯데전에서 시즌 9승째를 거둔 이후 여섯 번의 등판에서 단 1승도 따내지 못한 뒤 1군에서 말소되며 '시즌 10승'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홍원기 감독은 하영민의 이번 시즌 최종 승수가 9승에 그치게 된 것에 대해 "한 해 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 파악해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로써 격려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뽐내는 보석 중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공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뼈에 사무치게 혹독한 리빌딩 시즌을 보낸 키움은 '토종 에이스' 안우진이 돌아오는 2026년에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이를 위해서는 2025년 이맘때 키움의 전력이 지금과 달리 일정 궤도 이상으로 올라와 있어야 한다. 11년차에 비로소 궤도에 올라온 하영민은 내년에 프로야구 선수로서 최전성기를 맞이하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접어든다. 앞으로 몇 년간 선발투수로서 더욱 단단해질 하영민을 보유한 키움은, 2026년 가을에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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