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니고민 Nov 16. 2024

첫 직장, 복사기의 세상에 갇히다

도장 꾹. 복사와 스캔

어릴 적 친구들과 놀 때나 쓰는 표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복합기 앞에서 멀뚱멀뚱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것저것 눌러보았지만, 내가 알 리가 있겠는가?

결국 옆자리 선배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 선배님은 언제나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무엇이든 알려주려 애쓰신다.

내 업무를 담당하던 사수는 없지만 사무실에는 내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분이나 계신다.


윗선에서는 계속해서 뭔가를 지시하며, 옆에 물어보라고만 한다.

'난 아직 내 자리 컴퓨터에 어떤 파일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누군가는 특정 파일이나 문서를 찾을 때 "탐색" 기능을 쓰거나,

포털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해 "탐색"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것이다.

나도 핑거프린스가 되고 싶지 않다....


이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도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검색하고 탐색할 텐데....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내가 답답하기만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뭐라도 해봐야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모르다 보니,

하루 종일 쫓겨 다니기만 한다.

중간중간에 업무 지시를 받으면 그 무게가 배가 되어 쏟아진다.

'너희들은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구나...'


그렇게 내게 주어진 업무와 해야 할 일들은 산처럼 쌓이는데,

시계는 어느새 퇴근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결국 나는 집으로 도피했다.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에 필요한 아주아주 기본적인 기능들을 익혀본다.

옆자리 구세주들에게 묻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매일매일 유튜브를 보며 자판을 두들겨본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나도 아침에 씻고 준비해서 나갈 곳이 있다는 것에 작은 행복을 느낀다.

이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주변에서도 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하니

누군가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축하한다며 잘해보라는 듯 심심한 안부를 전해준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사수 없는 신입의 생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