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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연필소리 Apr 22. 2024

<일류의 조건>, 2006

한발짝 더, 조금만 더 뛰어보려고.

<일류의 조건>은 하루키가 쓴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연재 중인 <하루키로 만난 인생 이야기>의 연재 취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류의 조건>의 가장 결정적인 내용이 집약 되어 있는 마지막 챕터가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루키에 대하여 내적 분석 뿐만 아니라 외적 분석도 하루키를 통한 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여다 봄에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는 사람이지만, 하루키의 스타일 계발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읽고 나름대로 분석해왔던 하루키 월드를 꺼내볼 수 있어서, 한사람의 독자로서도 뜻 깊었습니다.



[일류의 조건 - 사이토 다카시] 한 발짝 더, 조금만 더 뛰어보려고.


생활 패턴에서 운동을 빼보는 것은 어때? 내 생활은 무척 단조롭다.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면서 전자책을 음성(tts)으로 듣고, 근무가 끝나면 곧장 헬스장으로 이동해서 몸을 단련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한시까지 야근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세시쯤에 잠든다.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는 운동이 끝난 후에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두시쯤에 잠든다.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운동 때문에 퇴근 시간이 더욱 늦어지는 나를 위해서, 친한 직장 동료 A가 넌지시 운동을 쉬어보라고 권했다. 운동이 내 삶의 원동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라서 안돼. 운동은 날 피곤하게 하기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티게 해주는 설정이랑 비슷하달까. 낙이랄까.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가떨어졌을 거야. A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했다.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작품관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상통하며, 그들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놀란의 경우 거대한 비극을 그에 상응하는 스케일과 영화적 언어로 표현하고, 그 비극을 극복하는 것이 사소한 일상임을, 평범한 사람들임을 극적으로 대비함으로써 일상의 소중함과 평범한 사람들의 헐거운 연대라는 주제의식을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루키는 극히 비현실적인 사건과 무수한 메타포를 장대한 스케일로 전개하되, 현실적이고 담담한 문체를 구사함으로써 도처에 존재하는 위협과 인간의 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존의 이룩과 치유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평범한 사람도 해낼 수 있는 일임을 역설한다.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울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들의 작품이 지금만큼 좋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적절하지 못하면 내용이 오염되고, 형식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내포하는 메시지가 충실하지 못하면 작품은 빈 껍데기가 되고 만다.


내 몸을 단련하는 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선택하는 것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책상 앞에 앉아 독서하고 연필로 이면지를 채우는 일은 내 몸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몸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책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계발서 형식의 에세이를 읽지 않는 것은, 10년 가까이 글과 함께 지내고 꿈을 키우면서 내가 직접 혹은 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익힌 지혜만이 나를 개발시킨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나는 오랜 세월 직접 겪으며 이야기가 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직접 깨닫고 믿게 된 사람이다. 타인이 자신의 자기 계발 과정의 엑기스를 글로 전달한다고 한들 그것이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믿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독서 친구이자 여행 작가인 안시내의 추천으로 만난 <일류의 조건>은 그런 의미에서 자기 계발서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종류의 작품이다. 본작은 작가가 자신의 자기 계발의 결과를 전달하기보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며 그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하여 밟아야 하는 과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찰한다. 본작은 내용과 형식(콘텐츠와 컨테이너)에 있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을 일류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퍼 놀란과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본작은 뛰어난 컨테이너가 메시지를 수신자에게 전달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논증하고 있으며, 또한 형식에 담길 내용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구축하는 방법을 숙달이라는 키워드로 함축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일류라는 하나의 거대한 스타일로서의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삶의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각 요소들의 스타일, 나아가 총체적으로 존재 자체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며, 그 완성을 촉진한다고 설명한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다. 브런치에 <하루키로 만난 나의 인생 이야기>를 제목으로 하는 브런치북 연재를 하고 있을 정도로 하루키 식(式)의 치유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하루키가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나아가 패셔너블한 작가로서 세계문학의 한 축, 일류가 되어가는 과정을, 한 챕터 전체에 걸쳐 지켜보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본작은 하루키의 인터뷰 내용을 기초로, 하루키의 달리기를 하는 습관과 재즈, 클래식을 기반으로 락, 팝 등 여러 장르의 음악에 심취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또 그의 스타일이 확립됨에 따라 다시 그의 취향도 영향을 받았음을 설명한다.


본작에 따르면 숙달을 통한 스타일의 형성이 중요한 이유는 내적인 자질은 존재의 선천적 속성의 제한을 받지만, 어떤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도록 창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관계성을 만드는 '기술'(p. 257)은 단련, 숙달로 체화가 가능한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술적 차원에서의 스타일의 완성이 그 형식적 스타일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적 차원의 스타일의 기틀이 되어주며, 존재의 내적 완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만의 고유한 본질적 자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발견하고 그와 합치하는 것이 그 인간의 고유한 인장, 총체적인 스타일을 완성한다. 이런 측면에서, 동경하는 스타일을 자기의 강점과 결합하여 모방하고,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자신에게 진정하게 필요한 정보를 요약하고, 그리하여 희미하게 완성된 자신만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것을 촉진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서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순전히 훈련의 영역에 있는 행위들이 진정한 자아의 발견과 그와의 화해라는 내적 완성을 추동한다는 관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또한 본작이 자신의 주장을 다각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보며 검증하고 있는 바, 상당히 설득력이 높다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본작이 주장하고 있는 관계성을 만드는 ‘기술’을 하루키의 달리는 행위와 하루키 월드라는 고유한 작품 특징을 완성한 업적의 연관성을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실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다. 신체적 단련과 작품관의 완성, 문체의 완성이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무라카미식 스타일의 요소들을, 신체는 한계임과 동시에 그릇이고, 인간을 존재하는 모든 요소는 서로 교차하면서 영향력을 주고받고, 그 과정에서 시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오히려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고 풀어내고, 독자는 이에 대하여 공감하게 되면서 본작이 제시하고 있는 ‘숙달’의 힘에 대하여 체감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만물이 메타포라고 믿는다. 그의 작품이 몰입을 이끌어 내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환상에 가까운 배경과 참혹하고 냉정한 현실이 빚는 전래 동화와도 같기 때문이지만, 또한 그의 믿음처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가 메타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하루키 문학에서는 공상에 가까운 설정들이 꿈을 통해야만이 겨우 닿을 수 있는 현실, 두 개의 달, 끝없는 지하세계 같은 작품의 배경화면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인물들이 사실적으로 대화하고, 현실적인 문체로 이를 담담히 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작품 읽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삽입한 메타포를 더듬으며 독해하는 행위야말로 ‘어떤 대상과 자신 사이에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도록 창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p.257)’ 행위와 맞닿아 있고, 이것이 하루키의 스타일이 몰입할 수 있는 스타일이자 지속가능한 스타일이 된 것의 원인이다. 본작이 이야기하는 숙달의 비결은 집중력의 유지, 몰입이고,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으로 독자로 하여금 숙달하도록 유도한 셈이다. 이로써 숙달의 원리에 대한 작품의 논조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패션(Fashion)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어휘로, 주로 유행하는 복식, 양식을 지칭하는 데에 쓰인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 대하여 내리는 '패셔너블(Fashionable)하다.'라는 판단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구사하는 복식이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양식을 잘 따라가고 있다.'라고 이해하기 쉬운데, 이는 패션(Fashion)이 그저 복식에 한정되는 어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손으로 만들고 빚다, 만드는 일 혹은 활동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틴어 팍티오(fáctĭo)를 그 어원으로 한다. 그러니까 이 어원에 따르면 패션은 한철 유행보다는 시대에 걸맞은 활동 방식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그리고, 복식을 포함한 생활양식에는 존재가 일생을 통해 빚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활동의 지표가 되는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패션을 유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 사고하고 유행에 맞춰 복식을 갖춰 입는 것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시대에 걸맞은 사고방식을 갖추고 라이프스타일에 이를 반영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패션이 함의하는 바를 생각하면 패션의 변화 속도는 제법 빠른 편이다. 패션이 계속 바뀌는 이유는 시대가 바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고, 어떤 자아가 주된 자아로 발현되느냐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존재와 존재가 품은 의미는 변화하며, 세계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한 존재가 자신의 특정 자아와 합일을 이루기까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세계 자체도 세월을 넘어 늘 일관적이기 어렵다.


정리하자면 패셔너블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운영하기 위한 철학이 있고,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신념을 효과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전달하고, 또 시대의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시대와 자신이라는 존재간의 거리를 조화로운 공간으로 조성 가능한 시대감각을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복식을 포함한 생활양식에도 적확한 방법으로 반영한 사람이다. 프라다나 보테가 베네타에서 나온 신제품으로 온몸을 휘감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패셔너블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대가 변하는 것, 패션이 바뀌는 것은 존재 안에 있는 단단한 무엇인가들이 모여 만드는 결과이지, 소수의 브랜드가 결정하고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패셔너블한 글과 요리에는 자신에게 담긴 메시지를 청자에게 가닿도록 만드는 데에 탁월한 기능을 소화하는 컨테이너가 필수적이다. 색깔이 화려하나 장식은 소박한 편지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음을 고백하고, 마음에 걸맞은 봉투에 담아, 스티커까지 붙여 보내온 편지를 누가 찢어 휴지통에 버릴 수 있을까. 누구라도 그 마음을 받으면, 최소한 일기장에 갈무리하거나 읽고 있던 책에 끼워 역사의 한켠에 밀어 넣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시, 크리스토퍼 놀란과 무라카미 하루키다. 혹자는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와 작품의 스케일에 비하여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 그 규모가 작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요소들의 규모의 통일성이 아니라 스타일의 합치다. 그들의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그들의 작품이 갖는 고유한 스타일, 인장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스스로 작업에 몰입하며, 또 그 결과물에 관객과 독자 또한 자연스럽게 몰입한다는 점이다. 껍질보다 알맹이가 더 중요하다는 식의 가치판단은 일류라는 스타일 앞에서 무의미하다.


<일류의 조건>을 읽으며,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너는 일류가 되고 싶은지. 그리고 조심스레 대답했다. 나는 적어도 내가 꿈꾸는 어떤 분야에서는, 일류가 되고 싶다. 일류는 더 이상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고, 유명해진다는 의미와 상통하지 않는다. 고유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 패셔너블한 사람. 외부의 시선에 지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인장을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 오늘 헬스장 피티권을 연장했다. A가 안다면 못 말린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금만 더 뛰어보려고. 하고 대답할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어디에 가닿을지 모르겠지만, 일류가 되고 싶다. 본작은 에너지를 어떻게 얻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연소하느냐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번아웃으로 통칭하는 멈춤의 순간은 대부분 에너지가 모두 닳아버린 지점에 불쑥 찾아오지만, 어쩌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쌓여 있는 시점에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단련해 보기로 한다. 조금 더 숙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조금 더 연소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또 흘러들어올 것이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은 교차한다. 그 포물선들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래서 조금 더 뛰어보려고 한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스타일을 찾아서. 일류가 되는 그 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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