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오래 함께 하고 있는 30년 지기 내 사람, 친구 '수'는 어려서부터 가슴이 뜨거웠다.
늘 가슴에 사랑을 품고 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편안하고 배려하는 성격이라 인기도 많다. 거기다 가슴이 뜨거우니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열렬한 연애 몇 번은 하고도 남았을 텐데 참 얄궂게도......
그 친구는 외사랑 혹은 짝사랑 전문이다.
꼭 저 좋다는 사람 마다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끙끙 앓는다.
일부러 그러자고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저도, 지켜보는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그리고 곁에서 지켜보는 친구 입장에서는 꼭... 저가 바라보는 상대보다 저를 바라보는 상대가 훨씬, 나아 보여 속이 터지기도 했다.
아무튼, 그 사랑타령도 나이 들며 먹고살기 바빠지자 슬슬 사그라드는 듯했다.
대신 외롭다 타령이 전화로 반복됐고, 적당히 외로움을 즐기는 매정한 이 30년 지기는 타박하기를 반복하다가 취미활동을 권유했다.
"출퇴근하느라 운동할 시간 따로 내기 그렇잖아. 그 동네 둘레길도 좋으니까 자전거나 걷기 동호회 같은 거. 아님 악기 배워보든가."
본인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여자 여자 한 것들'은 관심 없는 취향이라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 동호회를 찾아보더니 며칠 후 드디어 한 모임에 가입했다고 연락이 왔다. 혼자는 떨려서 친구의 모임에 따라 들어갔단다. 주로 걷거나 가벼운 등산도 하고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등 운영진들이 추진하는 대로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처음만 좋았다.
활기찬 친구가 전화로 주말마다의 체험기를 들려줄 때마다 나도 즐거웠다. 거기서 좋은 친구들, 나아가 좋은 남자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좋은 남자를 만났다. 저만 또 혼자 속으로 좋아하는 남자를!
고백도 못하고 앓고 있는지 몇 달. 고백 못 하는 이유는 많기도 하다. 지금까지 마음 접기를 열 번은 더 했을 거다. 작은 행동에 의미 부여하고 혼자 기뻐하고 혼자 절망하고. (아니, 혼자 아니고 with me...)
나중엔 십 대 그때처럼, 이십 대 그때처럼, 또 우리 둘이 싸울 지경.
하하! 사랑 이 놈 참...!
그러기를 반복하다 드는 생각.
그래도 친구가 부럽다. 지금도 사랑을 하는 친구가.
외사랑이 아니었다면 물론 더 좋았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이랄까 감정의 움직임이란 꼭 마주봐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냥 내 감정을 다시 좀 몽글몽글 피워보고 싶은 거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마무시하게 용감해지던 나를 다시 보고 싶은 거다.
갑자기 이번 가을 들어서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한 번도 짝사랑, 외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세상 절친 둘이 정 반대의 성향이다.
나이 먹는 것이 점점 크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 예뻤던 시기가 너무 어이없게 지났다고 슬퍼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싶어졌다. 연애 말고 사랑.
나 혼자 조용히 하다 조용히 끝낼 외사랑. 조금...비겁한가?
소심해서 그럴거다.
어느 쪽이든.
그 사람 얼굴 한 번 보려고 오가는 길을 서성이고 싶다.
잠을 안 자도, 밥을 안 먹어도 그 사람 생각이 곧 에너지가 되어 거뜬한 그런 일상.
가슴이 아프면서도 행복한.
외로운 것도 아닌데 다만, 이번 가을을 유난히 앓는 것일까.
친구 수는 지금 걷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막히는 서울 근교 도로 위에 있다.
오늘 모임에 그분이 참석한다. 안 봐도 훤하다. 남녀 가리지 않고 털털하게 웃고 떠들다가 그분의 등장과 함께 그쪽으론 고개도 못 돌리고 말수가 적어질 친구의 모습.
타박하는 내 잔소리에도 웃으면서 오늘 입고 갈 옷을 고민하던 친구가, 여전히 귀엽다.
친구가 나보다 젊은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순도 높은 마음일 것이다.
오늘은 이야기라도 많이 나누고 오너라, 친구야!
#엄마는#남친#사귀면#잡혀간대요#따님왈#.......#상상속#본부장님만#사랑하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