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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Oct 26. 2019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ㅡ 최초의 페미니스트 여성 화가

■다음 글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젠틸레스키  중 일부내용입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ㅡ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서


    

젠틸레스키, 자화상, 1638-39, 캔버스에 유채, 96.5 x 73.7 cm, Royal Collection of British Royal family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7-1651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젠틸레스키의 삶은 17세기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독립적이었고, 전문 직업인으로서 성공적이었으며, 그녀의 작품 역시 강인한 여성상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미술계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왔고, 다른 여성 예술가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젠틸레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혈이 낭자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우리에게 젠틸레스키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유디트와 같은 신념과 의지가 강한 여성들을 그린 그녀의 그림들은 단번에 현대의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평론가인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화가는 없는가?>라는 글에서 젠틸레스키를 언급함으로써, 그녀의 예술세계는 새롭게 조명되었고, 수 세기 동안 잊혔던 그녀의 작품들은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성폭력의 피해자에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다

  

그녀는 여성이 예술가로서 활동하기에는 매우 척박한 시대에, 화가로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무척 힘겨운 삶을 살았다. 17세의 젠틸레스키는 아버지의 동료이자 그녀의 그림 선생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길고 힘겨운 재판을 받았다. 남아있는 재판기록을 통해, 그녀가 부당한 심문과 함께 손가락을 조이는 고문과 부인과 검사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가해자인 타시는 단지 얼마간의 실형을 살고 풀려났다. 당시의 재판기록에 젠틸레스키의 진술이 다음과 같이 남아있다. “그는 방을 잠그고 나를 침대에 던져 내 가슴에 손을 대고 옷을 들어 올렸으며, 목구멍에 손수건을 둘러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할퀴고 머리칼을 뽑았다.” 그는 젠틸레스키를 강간한 후 처벌을 피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했고, 그녀도 하는 수 없이 그와의 관계를 지속했으나 애초에 결혼 의사가 없었던 타시는 약속을 어겼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성은 법정에 고발할 수 없었던 당시 관습에 따라 그녀 대신 타시를 고소했다. 육체적 순결을 잃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상황과 그녀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문까지 당해야 했던 사실은 당시 여성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를 보여준다. 타시는 당시 여성의 정조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편승하여 젠틸레스키가 헤픈 여자라고 거짓 증언할 증인을 구해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재판 도중 그가 전 부인을 죽이고 처제와 간음했다는 사실 등 다른 범죄가 밝혀져 1년형에 처해짐으로써, 다행히 그녀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만약 타시의 여죄가 밝혀지지 않아 그가 파렴치한이라는 것이 묻혔다면, 재판은 그녀에게 억울한 방향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 후, 참담한 경험을 준 로마를 떠나기 위해 피렌체의 한 화가와 서둘러 결혼한 젠틸레스키는 1612년,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녀의 그림들은 일생을 통해 10대에 겪은 이 불행한 사건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로 그려진 자화상>을 그린 1612년에서 1620년 사이,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떠나 로마에서 독립적인 화가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한다. 그녀는 자화상에서, 자신을 4세기 철못이 박힌 수레에 묶여 고문을 당한 끝에 성령으로 구조된 성녀 카타리나의 모습으로 그렸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손을 고문 도구인 부서진 수레바퀴에 대고 있는 성녀 순교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은 자신의 인생에서 개인적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강인함과 회복력을 보여준다.


그 사건 이후, 그녀의 그림은 훨씬 거칠어졌고 강한 여성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녀의 작품들 대부분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린 것들로서, 그중 많은 것이 성서와 신화 속에 나오는 고통받지만 강한 여인들, 그리고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강한 여성들이다. 아마도 젠틸레스키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젠틸레스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로 그려진 자화상, 1616, 캔버스에 유채, 71.5 x 71 cm, National Galler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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