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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Oct 26. 2019

유디트 레이스테르

ㅡ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다

■다음 글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일부내용입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 

            

그림으로 그려진 셀피의 주인공



다음 그림의 주인공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유디트 레이스테르이다. 이 옛 거장의 셀피는 생기에 넘친 눈빛과 스스럼없는 태도에 의해 그녀가 친절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화가의 입술은 마치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약간 벌어져 있고, 눈빛은 생기에 넘친다. 마치 우리가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에 들어가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며 쾌활한 표정으로 반기는 것 같이 보인다. 관람자는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마치 지금 그녀의 화실에 들어가 그녀의 쾌활한 환대를 받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사실 레이스테르는 미소 짓거나 즐거워하는 인물들을 그리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레이스테르, <자화상>, 1633, 캔버스에 유채, 74.6 x 65.1 cm,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워싱턴 DC

    

화가가 자화상을 그릴 때,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기를 원하는가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녀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과 여유로운 자세에 의해 성공한 미술가로서의 자부심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17세기 당시, 여성이 가입하기 힘든 하를렘의 성 루카 길드의 회원으로 입성했고, 젊은 시절 명성을 얻은 전문 화가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작업 중인데도 매우 고급스럽고 우아한 복장을 하고 있다. 귀족의 옷은 아니지만, 레이스가 달린 넓게 퍼진 주름 칼라나 투명한 소매 장식 등 고급 리넨으로 만든 중상류층 여성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감과 씨름하는 화가의 차림새로는 매우 비실용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정장 스타일의 복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친근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태도와 부조화를 이룬다.     

  

노래하고 웃고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다   

  

그렇다면 이 여성 화가는 누구인가?

유디트 레이스테르 Judith Leyster 1609-1660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Golden Age의 풍속화가이다. 풍속화, 혹은 장르화 genre Painting는 서민들이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집안일을 하는 등의 일상생활과 활동을 그린 그림이다. 특히 그녀는 노래하고 춤추고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레이스테르는 베르니니, 카라바조 등이 활동한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들과는 달리, 종교화나 역사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평민들의 일상을 묘사한 장르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것이 북유럽 바로크, 혹은 네덜란드 바로크의 특성이기도 하다.      


레이스테르, <음악회>, 1633, 캔버스에 유채, 61 x 87 cm, 국립 여성 예술 박물관, 뉴욕


레이스테르는 네덜란드의 서부 도시인 하를렘 Haarlem에서 맥주 양조업자의 팔삭둥이 딸로 태어났다. 레이스테르라는 가족의 성은 부친의 맥주 양조장의 이름인 ‘레이스테르’(북극성이란 뜻)에서 따온 것이다. 레이스테르가 미술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당시의 여성 화가들 대부분이 화가의 딸들로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던 것과 달리, 그녀는 화가의 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종의 미술 신동이었던 그녀는 일찍이 그 재능이 알려졌고, 전문화가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였다.


 24세의 나이에는 17세기 전체를 통해 단 두 명만이 허락되었던 하를렘의 권위 있는 화가 조합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길드에 가입했다는 것은 당시의 여성 미술가로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것은 견습생들과 학생들을 보유한 자신의 작업장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하므로, 전문 화가로서의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버지나 형제의 작업장에서 보조로 미술 작업을 하였으며, 독자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림을 그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했고 무명으로 남아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당대의 다른 여성 화가들에 비하면, 그녀의 여건은 좋았고 명성도 누렸으나, 결혼 후에는 이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 그랬듯이, 그녀 역시 가정에 묻혀 미술 활동에 전념하지 못해 점차 옛 명성을 잃었으며, 결국에는 무명으로 죽었다.  


레이스테르의 작품은 왜 할스의 그림으로 둔갑했을까


그녀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의 이니셜인 JL과 별 마크로 구성된 모노그램을 남겼지만, 그녀의 화가 남편 얀 민세 몰레나르 Jan Miense Molenaer나 할스의 작품으로 팔려나갔다. 당시 일반적으로 여성의 예술적 전문성은 남성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금전적 이익을 위해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 사망 후 미술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던 이유이다. 한편, 프란스 할스의 작품 중 수작으로 평가되던 <즐거운 커플>은 19세기 말에 가서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호프스테드 데 그루트에 의해 결국 레이스테르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레이스테르의 모노그램


<즐거운 커플>, 1630, 캔버스에 유채, 68 x 54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결론적으로, 레이스테르의 그림들에서 발견되는 모노그램과 독특하고 독자적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간이나 그녀의 작품들이 한치의 의심 없이 할스의 그림으로 여겨져 온 것은 미술사의 오랜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여성은 화가의 집안 출신이 아닌 이상 미술 교육을 받기 어려웠고, 전문 화가로서 작업장을 갖고 미술 활동을 하거나 화가 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다. 설사 생존 시에는 명성이 높았다 해도, 그녀들의 이름은 사후에는 어김없이 미술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게다가, 남성만이 진실로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할 수 있고 여성은 할 수 없다는 식의 성차별적 사고방식이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최고의 기술을 요구하는 미술의 최고봉인 회화와 조각은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며, 여성은 덜 중요한 예술 분야인 자수와 직물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이 레이스테르의 작품들이 할스의 것으로 알려졌던  배경이다. 레이스테르의 작품들이 할스의 그림으로 오해될 만큼 훌륭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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