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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새 Feb 07. 2023

설거지라는 의식

식후 늘어짐 방지법

소파에서 끼니를 해치우면 저절로 몸이 기운다. 알뜰하게 부쳐먹은 두부와 뒤적거리기만 한 콩자반, 푹 익지도 아삭하지도 않아 어중간한 깍두기, 그리고 밥그릇 테두리에 붙은 밥알들 뒤에 앉아 TV를 쳐다본다. 밥알이 서서히 말라붙어 밥그릇과 하나가 될 때까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등이 붙고 곧이어 머리가 붙는다. 이대로 늘어져선 안 되지만 대부분 머리가 소파에 닿는 순간부턴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나태함이 솟구치는 것이다.


게으른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 한 가지 룰을 만들었다. 마지막 한 술을 뜨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밥그릇을 비우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정리하는 것, 곧장 물을 틀고 설거지를 시작하는 것이다. 소파가 입을 잔뜩 벌리고 나를 기다리지만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개운한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설거지는 몸과 마음을 닦는 일종의 수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전을 타고 흐르는 수돗물과 그릇이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백색소음이며 손목과 전완근으로 작게 원을 그리는 동작이며 왠지 요가를 연상시킨다. 작은 몸짓으로 더러움을 걷어내고 마음을 비운다. 그렇게 한참을 물장구치다 보면 어느새 땀이 나기도 한다. 이토록 작고 단순한 일을 반복했음에도 말이다(땀은 언제나 옳은 존재다). 앞치마를 했음에도 물이 튀기고 이따금 고무장갑에 물이 차기도 하지만 설거지는 언제나 보상을 준다. 일찍이 설거지를 마친 하루가 나태하지 않고 기분 좋게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즉 동력이다. 그릇을 부신 덕분에 오늘도 소파의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 물려 저항 없이 늘어질 뻔한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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