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두려운 건 당연한 일이니까
주말 아침 수영을 다닌다. 무거운 몸 덩어리를 침대에서 간신히 내렸건만, 눈곱만 떼고 곧장 물살을 가로질러야 하는 운명이다. 짧은 준비 운동을 마치고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적응할 새 없이 순서대로 자유형을 시작한다. 자유형은 말 그대로 각자 자유로운 형태로 수영을 하는 것이라 다른 영법처럼 ‘~영’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초보자에게만큼은 ‘자유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잘 허우적거리는 방법을 배운 대로 따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에선 모든 게 어렵다. 자꾸만 떠오르는 상체와 가라앉는 하체를 다스리는 일도, 땅과 달리 지지할 곳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막막함도. 무엇보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점이 크다. 어떤 운동이든 숨은 쉴 수 있지만 수영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것 중에 가장 일상적인 걸 꼽자면 바로 호흡인데, 이를 통제당하는 건 보통 고문이나 재난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물과 수영이 두려워지는 이유도 대부분 호흡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수영을 즐기는 묘미가 되기도 한다.
호흡을 참는 것이 끔찍한 일처럼 느껴진다면 수영을 계속하기 어렵다. 가장 기본이니까. 공포감이 물 밀듯 밀려오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물의 공포를 학습하고, 어릴 적 바다나 계곡에서 물을 잔뜩 먹어본 경험 하나 쯤은 갖고 있다. 어쩌면 숨을 쉴 수도 땅에서처럼 걸을 수도 없는 물이 두려운 건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수영을 계속하는 이유는 내 삶에 지극히 당연한 것들에 대해 느끼고, 그것이 언제나처럼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손에 쥘 수도 밟고 일어설 수도 없는 물에서 헤엄치다 보면 몸이 달궈지고 땀이 맺힘과 동시에 사라진다. 뜨기 위해 힘을 주면 가라앉고, 나아가기 위해 힘을 쓰면 금세 지쳐 호흡만 더 가빠진다. 그렇다, 수영은 몸에 힘을 빼는 법을 배우면서 어떻게 하면 물고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숨을 참고 음파를 반복하면 산소의 소중함이 절실하다. '이게 무슨 고생이냐'라는 마음으로 물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수영장 밖을 나설 땐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다. 극기훈련을 마친 군인처럼, 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탈이 많았던 프로젝트를 막 끝낸 직장인처럼 이제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이 그만큼 비일상적이고 어려운 존재임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호흡을 통제하고 필요한 만큼 마시고 내뱉는 일에 적응하면 내 몸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음하고 파 하기 위해 이번주도 쫄쫄이를 입고 물에 뛰어든다. 애석하게도 아가미는 없다. 사실 그래서 재밌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