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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새 Mar 19. 2023

불면과 그림자

이제 그만 재워주세요

몸을 열댓 번 정도 뒤집었을까. 다행히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잠들었지만 며칠째 이어진 불면증에 몸도 정신도 지쳐가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 시기는 보통 들뜨는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설렘이나 마음이 저릿한 슬픔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꼭 두 가지 상황이 아니더라도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인은 생각에서 찾았다.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를 오래 생각해 본 결과가 생각이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고요하고 어두운 밤은 생각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다. 저녁까지 얌전하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잠으로 달아나려는 나를 잡아끈다.


잠에 들지 못하는 밤은 전원을 끄지 못한 모니터에 담요를 덮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눈꺼풀은 덮어도 OFF 시키지는 못한다. 생각을 그만둬야 잠에 들 텐데, 생각을 그만두려는 생각은 마치 들이쉬고 내쉬려 의식하는 호흡처럼 멈출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과 밀당하다 보면 의외로 시간이 금방 간다.


뜬눈으로 오매불망 잠을 기다린 시간을 확인하면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라도 읽을 걸, 넷플릭스라도 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릴 때가 많다. 게다가 불면 상태는 곧 공복 상태이기에 허기가 져서 잠이 더 오지 않는 기분이다. 결국 취침등을 켠다.


딸깍


불빛이 작은 방을 이루는 온갖 사물들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그중엔 나도 포함된다. 괜히 책을 꺼내 북마크를 펼쳤지만 맥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루이틀 전까지 읽던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벽에는 내 손을 닮은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인다. 그림자 속에는 미련과 불안이 가득해 보인다. 뒷장의 뒷장을 넘겨가며 지난 이야기를 파악하다 보니 점점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딸깍


조명을 꺼버리는 순간 벽으로 내쫓겼던 그림자가 재빠르게 내 몸으로 파고들었다. 어두운 방에서 그림자와 하나가 되어버린 나는 생각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밝은 빛을 없앴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아이러니한 불면증은 참 잔혹하다. 결국 다시 빛을 밝혀 그림자와 생각을 떨쳐낸다. 그리고 방 한편에 들러붙은 그림자를 보고 생각을 멈추는 주문을 외운다. 


- 다들 자고 있잖아요. 이제 그만 재워주세요.


불을 끄고 그림자와 생각을 다시 먹는다. 목구멍에 탁 걸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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