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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Dec 27. 2021

<삽니다 아바이마을>삼 일만의 외출

2021 속초 폭설 기록

 폭설은 지나가고, 깨끗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남았다. 그리고 거리엔 온통 하얀 쓰레기들...


 24일 저녁부터 눈이 내렸고, 25일 크리스마스부터 영하 10도 안팎의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창 밖에는 눈 삽이 아닌 쇠로 된 삽으로 언 땅을 깡깡 치는 소리가 계속됐다. 이 글은 삼 일간의 속초 폭설 경험담이다.



1일차: 24일-25일

 새벽 2시가 다되어 빼꼼히 내다 본 마당에 수북했던 첫눈, 그리고 폭설.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이웃들에게만이라도 산타가 되어 줄 결심을 했다. 녹색 쓰레받기 하나로 고군분투 끝에 그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까스로 큰길로 이어지는 길, 옆집 대문 근처까지 눈을 치운 뒤 집으로 복귀. 땀 난김에 샤워하고 잠들었다. 새벽 3시 반의 일이었다.


 눈 치우던 날의 이야기는 여기에.


2일차: 25-26일​

 아침이 되니 다행히도 눈이 그쳤다. 세상이 온통 하얗다. 그리고 춥다. 밤에 길을 내지 않았으면 거대한 눈더미 안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겠지.


 길을 냈던 자리 위에 쌓인 눈을 치우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하루종일  안에서. <스파이더맨: 웨이 > 보고  뒤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배우별로 다시 보고있다.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일의 나는 8시간동안 만만치 않은 놈과 싸우게  것이라는 것을.  

꽁꽁 언 땅


3일차: 26일-27일


 하루종일 따듯한 집에 있으면서 바깥 상황을 뉴스로 파악했다. 강원도, 그 중에서도 영동지방, 그 중에서도 속초, 심지어 청호동을 콕 찝어 기록적인 폭설이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아바이마을은 청호동에 있다.)


 그래도 눈은 그쳤고, 길도 뚫어놨고, 날 따듯해지면 녹겠지. 아무 걱정이 없다.


 이틀 연속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서, 동네 한바퀴라도 돌까 누워서 생각했다. 네시에 창문을 보니 어둑어둑한 기운이 느껴져서 에이 그냥 가지말까. 그러다 안되겠어서 여섯시에 현관문을 열었는데...!!!


 난리가 났다.

 보일러실에 물난리가 났다. 25일 아침에 눈을 치우고 무심코 창고로도 쓰는 보일러실 문을 열어놨었다. 까먹은 채로 집콕한지

30시간 가까이 지났던 거였다.


 처음엔 당황해서 보일러가 터졌나, 이게 말로만 듣던 동파 현상인가 허둥지둥댔다. 자세히 보니 보일러는 괜찮은  같고, 세탁기에 연결한 수도꼭지의 일부분이 터져있었다.


 좁은 틈으로 분수처럼 나오는 물줄기가 세탁기, 문, 바깥에 튀어 꽁꽁 얼어있었다. 보일러실 안도 물이 꽤 차올랐다.


 일단, 수도 계량기 뚜껑을 열어 집 안으로 흘러드는 모든 수도를 차단했다. 수습해야 할 풍경을 보니 아찔하다.

 물살이 튀어 약했던 타일이 떨어져있고, 통에 담아뒀던 가루세제는 죽이 됐다. 따듯한 보일러실에 보관 중이던 계절이 지난 신발들도 다 젖었다.


 정신차리고 할 일을 정리했다. 우선 물을 닦아내고 여기를 정리하자. 그리고 수도 계량기를 잠근 채로 보일러를 쓸 수 있는지 알아보자. 안되면 물을 조금만 흐르게하고 터진 수전을 테이프로 감싸보자.


 문제는 지금이 일요일 저녁이라 어디 물어 볼 곳이 없다는 거였다. 귀뚜라미 보일러 대리점은 닫았을 거고, 본사 고객센터도 마찬가지. 열심히 네이버 지식인과 블로그를 검색했다.

 계량기를 잠그는 방법은 안되는  같다. 수도관의 물이 순환되면서 따듯한 물로 바닥 난방을 하는 원리인데, 수도가 끊기면 보일러에 에어가  수도 있다고 한다. 집에 있던 테프론 테이프(흰색 비닐 재질 테이프) 박스 테이프로 수전의 터진 부분을 여러  둘러 감쌌다.


 계량기 뚜껑을 열고 물을 약하게 틀어봤다. 테이프로 감싸서 처음처럼 사방으로 튀지는 않지만 물이 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얼어붙은 문을 녹이기 시작했다.

찢어진 고무장갑, 다 쓴 테프론 테이프

 밤이 깊어질수록 문에 붙은 얼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보일러가 돌아가면서 공기가 훈훈해지고, 터진 수전에서 뜨거운 물도 나오는 덕에 큰 걱정은 덜었다. 밤 새 수전만 잘 버텨주면 아침에 새 것을 사다가 교체하면 된다.


 해어 드라이기로 녹여보니 더뎌도 너무 더디다. 전기난로를 트니까 좀 나은 듯 한데, 얼음이 녹아 물방울이 되자마자 다시 얼어버렸다.

테이프로 감은 수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뜨거운 물 받아진 걸 부어보니 이쪽이 해결책이었다. 바로 아래에 하수구가 있어서 얼 틈 없이 계속 물을 부어서 문에 붙은 얼음을 대충 떼냈다. 이제 문 닫고 잘 수 있다!


 블로그와 지식인의 도움으로, 새는 물을 덜 흐르게 할 방법도 찾았다. 수전의 이음새에 유량 조절 벨브가 있다고 했다. 동전을 끼워 시계방향으로 꽉잠갔다. 유레카! 진짜 물이 거의 잠겼다. 한쪽으로 한방울씩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그래도 너무 많은 물이 버려지는 걸 막아서 기뻤다.


(혹시라도 같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면, 유량조절 벨브는  시계 방향으로 잠그시길...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다가 2 물폭탄 맞았거든요. )

 부품만 따로 파는 줄 알고 아이폰 측정 앱으로 사이즈도 쟀건만, 통으로 바꿔야 하는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사와야지.


 6시에 시작된 물난리를 수습하고 나니 새벽2시. 비로소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27일의 아침이 밝았다.

 이마트나 시장 철물점에 가려고 9시 알람을 맞춰놨다. 요즘 밤낮이 바뀌려던 참인데 한방에 고쳐졌다. 보일러실 정찰을 가보니 새벽 그대로의 모습이라 안심이 된다.


 아침 기온은 영하 8도. 계량기 벨브를 잠그고 수전을 교체해야 해서, 기온이 좀 오르는 낮에 하기로 했다.


 이마트로 가려고 갯배를 탔다.

갯배 선착장

 원래는 다리로 다닌다. 평일에는 갯배 타는 사람이 없으면 기다려야돼서, 기다리느니 걸어간다. 근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다리 위의 눈은 미처  안치워졌다. 당분간은 갯배가 가장 빠른 교통 수단이다.

청초호

 세상이 청명하고 아름답다. 삼 일만의 외출이다. 기분이 너무 좋다.

금강대교
힐스테이트와 금강대교
설악대교
청년몰 갯배스트

 바람에 쌓인 눈이 날려서 보슬보슬 떨어진다. 이마트 가는 길에 나에게 선물을 하나 하기로 했다.

스타벅스 속초 중앙로점

 따듯한 라떼 한잔이 마시고싶었다. 원래 아이스를 고집하지만, 오늘은 큰 일을 앞두고 있으니 무리해선 안된다.

따듯한 라떼

  숏 사이즈 라떼 한 잔 마시고, 이제 이마트로 간다. 삼 일간의 속초 폭설 경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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