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수하의 공간/ <블루 하우스> 펜션
수하, 이리 와봐
이 알랑드롱
자막이 없어서
내 도통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속초의 <블루 하우스> 펜션에 찾아온 프랑스 여행객 ’얀 케랑‘. 직업은 만화가이며, 영감을 찾아 낯선 소도시 속초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이 숙소에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수하’가 일하고 있다. 사장님은 떠듬떠듬 영어로 소통울 해보려 하다가, 수하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면 반갑게 불러 얀 케랑과의 소통을 맡긴다.
펜션 사장님은 부인과 함께 숙소를 운영해 오다가 최근 사별했다. 혼자 관리하기가 어려워, 대학 졸업 후 시간이 비던 수하를 직원으로 고용했다. 수하는 서울에서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원작 소설에서 펜션 사장님은 팍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느낌의 인물인데, 영화 속에서는 따듯하게 그려진다. 수하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는 인물이다.
영화 첫 부분에 펜션이 등장할 때, 어? 저기는? 하고 떠오른 장소가 있다.
<블루 하우스> 펜션
외관 촬영지
1번 버스를 타고 ‘봉포항 입구’에 내렸다. 봉포항이 보이는 곳까지 좀 걷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바다 반대편 언덕길로 올라간다.
이 동네엔 펜션이 많이 모여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쪽은 여행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곳이고, 언덕 위쪽에는 대학생들이 학기 동안 거주하는 자취방도 있다.
근처에 ‘경동대학교’가 있는데, 예전엔 한국학생들이 다녔지만, 지금은 글로벌 캠퍼스가 되면서 외국인 유학생이 다니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이쪽 동네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언덕을 올러 ‘삼박한집‘방향으로 우회전한다.
‘파슬리 하우스’에 도착했다.
예전에 봤을 땐, ‘파슬리 하우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연둣빛으로 칠해져 있던 것 같은데, 안 와본 사이에 영화에서 본 것처럼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입구 쪽 모습만 보면, 건물 전체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아담한 단층 또는 2층 정도의 건물이 있을 것 같다. 영화에 펜션 앞모습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수하는 엄마 가게에서 받아 온 아이스박스를 들고 펜션으로 막 들어선다. 이때, 외국인 여행객이 캐리어를 들고 안에서 나오면서 짧게 인사를 건네는데, 이 사람이 원작 소설을 쓴 ‘엘리자 수아 뒤사팽’ 작가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블루 하우스>의 외관은 낡은 모습이다. 얀 케랑이 왔다 가면서 수하의 마음에 풍랑이 한 번 일고, 겨울이 끝나가면서 변화가 찾아온다. 얀 케랑이 묵었던 별채를 수리하고, 본채인 이곳의 외관도 깨끗하게 정돈함으로써, 수하 내면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에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 숙소 1층 주방과 식당도 여기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궁금해서 한 번 파슬리하우스에서 숙박해보고 싶다.
<블루 하우스> 펜션
옥상씬 촬영지
허락 없이 펜션 옥상에 올라, 속초 풍경을 구경하는 얀 케랑. 수하도 우연히 옥상에 왔다가 함께 바깥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소도 보자마자 알아봤는데, 원작 소설을 볼 때 마음속으로 그려졌던 그곳이었다.
‘더 하우스 호스텔’은 오래된 여관이었다. 이쪽은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이라 예전에 지어진 여관이 여러 곳 있는 동네였다. 시대가 바뀌고 여관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면서, 방치된 채 남아있는 건물이 많았다.
내 기억으로는 2013년 전 후에, 오래된 여관을 개조한 호스텔, 바로 이 ‘더 하우스’가 운영을 시작했다. 설악산에 가기 위해 속초를 찾은 외국인들이 많이 묵었다. 시외 터미널 근처인 데다, 설악산에 가는 버스가 바로 앞 정거장에 서기 때문에 편리한 위치다. 원작 소설 속 펜션 <블루 하우스>를 묘사하는 문장을 읽어보면, 이곳이 저절로 떠올랐다. 작가가 속초 여행을 왔던 2010년대 초반에, 분명히 이곳에서 숙박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하우스’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지역의 버려진 공간을 되살려 운영하는 청년들’이라는 트렌드와 함께 주목을 받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며, 생활형 숙박시설과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겼다. 지금 속초엔 숙소가 너무 많다.
시외 터미널에서 ‘더 하우스’로 찾아가 봤다.
시외 터미널에서 중앙시장 방향으로 가다가
공사 중인 울타리 옆 골목으로 들어간다. 여기도 뭘 짓느다고 하던데, 자금문제로 공사가 멈췄다.
전에 이쪽 동네에 살아서 버스 타러 늘 다니던 길이다. 공사가 멈추면서 전보다 선뜻 들어가게 안 되는 분위기가 됐다.
이 골목을 내려가면, 지에스편의점이 나온다. 그리고 왼편 정거장에 설악산 가는 7번, 7-1번 버스가 선다. 이 정거장 이름은 ‘수복탑’인데, 이곳 다음 정거장부터 ‘-1’이 붙는 버스와 일반 버스 노선이 갈라진다. 초행길에 설악산에 가려는 사람에게, 이 숙소는 위치도 좋고 여러모로 편리한 부분이 많다.
여기가 ‘더 하우스’다. 뒤편으로 전용 주차장도 있다. 여관을 개조한 곳이라, 가격이 저렴한 편인데도 욕조가 있는 개별 욕실이 딸린 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은 비수기에 호텔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잘 가지 않지만, 20대엔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에서 주로 숙박했다. 혼자 여행을 가면 하룻밤에 2~3만 원으로 숙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호스텔에 가면 주로 큰 방에 이층침대가 여러 개 놓인 도미토리룸을 이용했다. 운 좋은 날은 다른 손님 없이 혼자 방을 썼다. 어느 날은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여행객들과 짧은 대화도 나누었다. 하지만 도미토리룸은 화장실과 욕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여자들은 화장실과 욕실 사용 시간이 길다.
이곳 ‘더 하우스’도 정식 이름은 ‘더 하우스 호스텔’이다. 추구하는 숙소 느낌이 세계의 배낭여행객을 위한 쉼터가 아닐까? 지나다닐 때 보면 거의 외국 손님이 묵는 것 같다. 영화 속 <블루 하우스> 펜션과도 닮은 구석이 있는 숙소다.
영화 속 펜션 옥상씬을 여기서 찍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바로 저기 저 옥상! 거의 확신하고 있다.
다른 방향에서 보면 옥상이 이런 느낌이다.
옥상에 나란히 앉은 수하와 얀 케랑. 바다를 바라보게 앉고선, 수평선과 어우러지는 건물들을 손으로 쓸어보며 ‘도시의 미학’인가 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전망 좋은 곳에 가서 ‘야 뷰 끝내준다!’ 말하는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얀 케랑은 프랑스 사람이다. 한국에 익숙하지 않고, 더군다나 속초는 처음이다. 이 도시 구석구석이 처음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반면에 수하에게 이곳은 어려서부터 보아온 익숙한 고향이다. 저기 있던 놀이공원이 이제는 없고, 저 낡은 건물엔 프랑스 영화를 틀어주던 영화관이 있었다는 추억이 묻어있는. 더불어 남자친구인 준오의 표현으로는 ‘낡고 냄새나고, 남아있고 싶어 하는 또래라고는 아무도 없는’ 그런 곳.
+참고)
프랑스 영화 틀어주던 영화관이 있던 곳(자이 아파트)
놀이공원이 있던 곳(속초항 배 정박지)
관객이자 속초사람인 나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낡은 속초’도 물론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속초 전체의 20%쯤 되려나? 일상이 쳇바퀴 돌듯 하는 기분은 어디 사는 누구라도 느낄 테고, 그런 날이 아닐 땐 문득 바라본 풍경에 마음이 풀어지는 좋은 동네다.
‘더 하우스’를 지나 큰 길가로 나갔다. 원작 소설에 묘사된 대로 얼마쯤 걸으면 편의점이 나온다.
작가가 속초를 여행했을 즈음엔 ’일억 슈퍼‘(구억 슈퍼인가?)라는 오래된 슈퍼였다가 CU인지 세븐일레븐이 됐었다. 몇 년 전에는 건물을 수리하고 GS25가 들어왔다. 다른 얘기지만 여긴 로또 명당이다.
큰 길가 쪽에서 ‘더 하우스’를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앞쪽에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여인숙 간판이 보인다. 어릴 땐 여인숙이 많던 골목이었는데, 시대가 바뀌고 슬며시 거리 풍경이 바뀌었다.
큰길에서 왼편으로 꺾는다.
여기가 ‘수복탑’ 정거장이다. 설악산 가는 버스를 여기서 탈 수 있다. 아침 9시 전 후에 이곳에서 7번 버스를 기다리는 외국 배낭여행객을 종종 보게 된다.
오래된 가방집이 있던 자리에 얼마 전에 새로 생긴 호스텔. 1층에 시나몬롤을 파는 카페가 있다. ‘더 하우스’와 더불어 설악산에 가기 위해 속초를 찾은 외국인들이 많이 묵는다.
버스 정거장 건너편 골목으로 내려가면 ’ 오징어 난전‘이다. 매년 5월부터 12월 31일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는 속초에 와도 가볼 수 없는 곳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12월 한창 양미리가 나던 때다. 오징어 난전 포장마차 뒤에 양미리를 잡아 온 배가 정박하고, 사람들이 하루 종일 그물작업을 한다.
그물에서 떼 낸 양미리를 노란 박스에 담아, 트럭에 싣기 위한 트레일이다.
수복탑 공원과 그 앞 로터리에서 가깝다.
해가 바뀌어 난전을 다 치웠다.
1월 중순까지는 양미리가 잡힐 때라 그물작업이 이어졌다.
오징어난전을 뒤로하고 금강대교로 올라갔다. 영화 속 <블루하우스> 펜션은 여러 곳에서 촬영해 하나의 장소처럼 표현했다. 청호동에도 촬영지가 있어서 가보고 있다.
여긴 갯배를 타고 가면 내리는 아바이마을이다.
수하가 일하는 펜션이 있는 동네는, 설악대교 쪽으로 더 걸어야 나온다. 빨간 다리에 있는 엘리베이터, 그 아래쪽 골목이 영화에선 펜션 본채와 별채를 오가는 길로 나온다. ‘속초 복집’ 앞으로난 길이다.
골목 옆에는 유명한 아바이 회국수가 있다.
갯배를 타고 가는 아바이마을도 청호동, 영화에서 수하네 펜션이 있는 곳도 청호동이다. 하지만 두 마을 사이에 이렇게 물길이 나있어서, 오가려면 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이 물길은 바다와 청초호를 연결한다.
수하가 일하는 <블루 하우스>펜션에서 몇 걸음 걸어 나오면, 홍게잡이 배가 보인다. 넓지만 바다가 아닌 호수, 청초호다.
수하의 마음이 복잡할 때, 여기서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런 느낌의 하늘이다.
영화 속 숙소 <블루 하우스>는 고성 봉포항 근처 펜션의 외관, 속초 시외터미널 근처 호스텔의 옥상, 속초 청호동의 골목길을 합쳐 만든 가상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