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와 이야기>3.영화 속초에서의 겨울 촬영지,세번째

사이렌 동네

by Julie
마실씨네 <아워 코지 플레이스>에서 만든 키링

속초시가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속초 국제 음식 영화제>를 비롯한 음식 관련 이벤트를 열었던 지난해. ‘마실씨네’ 이벤트로 카페 ‘아워 코지 플레이스’에 방문해 키링을 만들었다.


‘마실씨네’는 속초 내 10곳의 가게에서 <속초 국제 음식 영화제>에 출품했던 단편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이벤트였다. 그즈음 영화제에서 <속초에서의 겨울>을 봤고, 여운이 남아 키링에도 그려봤다.


키링에 그린 장면은 영화 포스터에도 담겨있다.

속초에서의 겨울. 뭔가 번역투가 느껴지는 문장이다. 프랑스어로 된 제목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베으흙-아!-속초



'Hiver'(이베으흙)는 ‘겨울’이라는 뜻이다. H는 묵음이다.


위에 점이 찍힌 ’a'(아!)는 ‘~에서’라는 뜻이고, 영어의 ‘at'에 해당한다.


짧게나마 프랑스어 제목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대학교 때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2010년 봄까지 방영됐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적응 안 되는 대학생활 초반에, 기숙사 컴퓨터실에서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았었다.

그중 40회에, 중년의 보석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한 외국 여인과의 일화가 나온다.


모베잘렌
오되르 따이유

아름다운 그녀는 뜻을 알 수 없는 두 마디를 남기고 사라지는데, 에피소드 끝에 반전이 있었다.


해가 바뀌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로 불어 불문학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불문과 신입생들이 대부분인 교실에서 타과생들이 드문드문 끼어 듣는 초급 불어 수업이었다.


호기심으로 신청한 수업이라 열정이 가득하고 무척 재미있었다. 수업 끝에 용기 내어 교수님께 질문을 했다.

저기,
제가 시트콤에서 본 건데 뜻을 몰라서요

모베잘렌
오되르 따이유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지금처럼 유튜브에서 링크를 찾아볼 수 있는 때도 아니어서 답을 알 수 없었다. 후에 시트콤을 다시 찾아보고, 프랑스어 사전도 찾아보니 이런 뜻이었다.


입냄새

마늘냄새


보석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그녀의 뜻 모를 말은, 냄새나니까 저리 가~ 뭐 그런 뜻이었던 거다.


출처: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


출처: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
출처: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

한국어로는 같은 ‘냄새’라는 단어로 표현되지만, 입 냄새는 ‘숨결’이라는 뜻의 ‘haleine'(알렌)을 쓴다.


출처: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
출처: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

마늘은 사물이라서 ‘odeur'(냄새)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오늘은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 포스터 속 촬영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수하와 얀 케랑의 뒤편으로 빨간 다리가 보였다. 가만있자. 이 각도에서 다리가 보이려면...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포스터를 보니 어딘지 알겠다. 속초 시청 뒤편 사이렌 동네구나!


2019년 이후의 속초 스카이라인


영화 속 속초, 특히 겨울의 모습은 삭막하다. 지루하고 낡아, 젊은이는 다 떠나가는 그런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오죽하면, 수하의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속초에 남아있고 싶어 해! 우중충하고 냄새나고’


아이야 너 뭘 모르고 있구나.

2019년 이후의 속초는 정말 많이 변했다. 엑스포공원에 서서 청초호 주변을 쭉 훑을 때 보이는 삐죽삐죽 높은 건물들은 모두 최근 5년 이내에 생긴 것으로 봐도 된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한국에서 2016년에 출간되었다. 작가가 속초 여행을 왔던 것은 그로부터 몇 년 전 일이니, 10년도 넘은 일이다. 그러니 여행 중 관찰한 속초의 모습이 낡고 오래된 느낌이었을 수 있다.


영화는 2023년 초 겨울에 촬영되었다. 원작 소설과 시차가 있는 데다, 그 사이 도시 개발이 진행되어서 영화 속 느낌을 따라가려면 낡은 채로 남아있는 장소들을 물색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속초에서 여기만큼 적당한 장소도 없다.


25/10/27 디어 플레이트 앞


이 날은 시청 앞 샌드위치 가게 ‘디어 플레이트’에서 ‘마실씨네’ 이벤트가 있었다.

디어 플레이트 앞

‘디어 플레이트’ 건너편에 속초시청과 속초 우체국이 있다.

가게를 나서는데, 며칠 동안 한번 가보자 생각했던 언덕 위 촬영지가 보여 올라가 봤다.

우체국과 시청 사이 언덕길로 갔다.

시청과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속초 시의회가 보인다.

삼육 어린이집을 지나 계속 올라간다.

언덕 위라서 길 건너 아파트 사이로 바다와 조도가 보였다. 아파트가 생기기 전에는 여기도 숨겨진 바다뷰 명소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지점을 반대편 다리 위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주택이 있는 언덕길을 오르는 거다.


아래쪽에 보이는 우체국 주차장

가장 높은 데까지 올라왔다. 포스터와 비슷한 느낌이 느껴진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어디에선가 오고 가는 듯이 보였던 골목길이지만, 실제로 저 끝부분은 더 이상 길이 없었다. 여러 장소에서 찍고 편집해 하나의 장소처럼 보이게 한 거였다.

이 언덕 위를 다리 위에서 보면 이렇다. 멀리 공설운동장 쪽에 짓고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이 보인다.


삼육 어린이집을 지나 이 길로 올라왔고

제일 높은 언덕에서 북쪽으로 난 이 길로 내려가면, 주말에 무료로 개방하는 속초 시청 주차장이 나온다.


포스터 속 장면이 이쯤인가?

여긴가?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며 찾았다.

포스터 속 도로 표지판을 찾았다.

여기다! 여긴데 빨간 다리가 안 보이네?

아하! 아직 나무에 나뭇잎이 남아있어서 가려졌구나. 겨울에 다시 와봐야겠네 생각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12/9 겨울 낮

그렇지! 바로 이 모습이다.

캄캄해지면 빨간 다리에 불이 들어온다.

26/1/14 마리스텔라 카페

빨간 다리(설악 대교)는 영화 속 장면 곳곳에 등장한다. 이 다리 덕분에 여기가 속초라는 것이 확실히 전해져 온다.

슬슬 내려가볼까?

돌아갈 때는 언덕 반대편 시장 쪽으로 난 골목길을 이용할 거다.


지금 보니 전망이 좋은 동네다. 앞으로는 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부터, 뒤로는 설악산으로 지는 노을까지 보이는.


그래서 아파트가 생길 예정이라고 몇십 년 전부터 이야기가 있어왔던 거구나.

사진에서도 느껴지듯이, 지금은 빈집이 더 많은 동네다. 90년대부터 아파트가 생긴다는 말이 있었다. 다른 동네에 새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 여기는 철거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


명절이면 공사를 맡기로 한 건설사에서 명절 인사 현수막을 내걸곤 했는데, 그 사이 건설사가 바뀌었는지 최근엔 다른 회사 이름의 현수막이 걸렸다.

25/12/20

이 동네 이름은 <사이렌 동네>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우리 가족도 여기에 살았다.


‘사이렌’ 동네인 이유는, 언덕 위에 민방위 사이렌이 있었다고 했나? 그랬던 것 같다.

예전 동네다 보니,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언덕길이다. 영화에서 수하가 떠나는 얀 케랑을 위해 마지막 음식을 준비하면서, 복어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낑낑대며 올라오는 길이다.


영화 속 배경인 ‘블루 하우스’라는 펜션은 여러 곳에서 찍어서 합쳐낸 가상의 공간이다. 그래도 원작 소설 속 묘사나, 영화 속에 등장한 장면을 종합해 보면 특정한 숙소가 내게는 떠오른다.


실제로 이 호스텔로 가려면, 여기 언덕길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낡은’ 속초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장소일 뿐이다.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초행길에 밤에 가기는 어려운 좁은 골목길이다.

계속 내려가면 속초 중앙시장 간판이 보인다.

시장 도착!


이 사이 어딘가로 들어가야 해서, 거꾸로 찾아 올라가기는 초행길에는 헷갈린다. 촬영지에 가보고 싶다면 속초 우체국 옆 언덕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골목에서 빠져나와 가까운 카페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속초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중앙시장. 그 너머 오래된 골목에도 이야기가 숨어있다.



+추가) 2026년 2월 3일

삼육 어린이집 언덕(속초 우체국 옆)

중앙동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려는지, 골목마다 이주 계획 수립을 위한 거주 조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시장과 시외 터미널 사이에 적어도 두 곳의 신축 단지 계획이 있다. 터미널쪽은 공사 진행 단계에서 멈춰서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에서 펜션 옥상에 올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수하가 저긴 어릴 때 놀이공원이 있던 곳, 저긴 프랑스 영화를 틀어주는 영화관이 있던 곳이라며 낡은 장소들을 가리킨다. 그 중 한 곳엔 자이 아파트가 들어섰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이렌 동네마저 영화 속 장소로만 남게되면, 마음이 조금은 쓸쓸할 것 같다. 내가 살아온 동네는 모두 사라졌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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