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거리에도 평온한 구석은 있다

파스쿠찌 속초 중앙시장점

by Julie

우렁골을 지나 중앙시장으로 향하는 길. 아카시아 향기가 풍겨오는 5월의 토요일.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서 책을 좀 읽다 가고 싶다.


얼마 전 낙산 신축 호텔에 파스쿠찌가 생겼다던데 거길 가볼까? 하다가 오랜만에 시장에 있는 파스쿠찌에 가기로 했다.

<하나로마트 속초 중앙시장점>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 앞에 홍게 샌드위치가 유명한 <751 샌드위치> 시장점이 있다. 그 앞에서 길을 건너면 있는 카페다.

시장 닭 전 골목은 한창 붐빌 토요일 오후지만, 몇 걸음 거리인 이곳에서 넓은 2층을 전세 내듯이 앉아 쉬고 있다. 스피커를 통해 노래가 나오다가 이따금 ‘83번 고객님 주문하신 제품이 준비되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자리엔 원래 새마을금고가 있었다. 여기 있던 새마을금고는 원래 목욕탕이었던 자리로 옮겼다.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시장 안에는 이제 대중목욕탕이 없다.

없어진 곳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막 성인이 되어서까지 엄마랑 다니던 목욕탕이었다. 단골들이 목욕 바구니를 맡겨둔 자리를 지나, 열쇠를 끼워 돌리는 사물함에 옷을 벗어두고, 체중계에 올라간다. 누가 볼까 금방 내려와서 작은 의자, 큰 대야, 작은 대야를 1인당 각각 1개씩 챙겨 적당한 자리에 앉는다. 샤워기 앞을 전세 낸 듯 털썩 주저앉아 씻는 아주머니도 있고, 온탕이 뜨겁다 미지근하다 옥신각신하며 파이프처럼 생긴 수도관을 틀었다 잠갔다 실랑이가 이어진다.


엄마가 한 번 살펴봐줘야 목욕이 끝나던 어린이에서, 조금 더 커서는 혼자 머리를 감을 줄 알게 되고, 지금은 목욕하러도 혼자 갈 수 있다. 매일 하룻밤씩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내가 언제 이렇게나 자랐을까? 5월을 알고 피어난 아카시아만큼이나 내 자신도 신기하다.

마음이 좀 답답한 구석이 있어서 새로 산 노트를 꺼냈다. 뭘 하고 싶은지 하나씩 적어본다. 막연하게 생각만 할 때보다 낫다.


내년 이맘때는 생각도 안 날 일로 고민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 쓰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고 긍정모드로 돌아선다.

해가 난 주말,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 손에는 닭강정이며 곡물강정이 들려있다.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아 사람이 만드는 물결을 바라보며,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수많은 인생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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