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어느 시절에, 솔직히 어른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던 때도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꿈”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현실에서 두 발을 떼고 먹구름 속에 있는 듯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당연히 햇살 내리쬐는 미래만을 꿈꾸었다.
잘 알지 못하니까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것들을 갖기가 쉬울 줄 알고 잘도 말했다. 고등학교 말에 대학교 입시 원서를 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꾸자꾸 발이 땅에 붙었다 떨어졌다. 그동안 어른들이 내어 준 것들은 하나도 시시한 것이 아니었음을 서서히 알게 됐다.
엄마가 날 낳은 나이를 지나면서, 확실해졌다. 나는 내가 아는 어른들이 내 나이때 했던 일들을 하나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것이. 또래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가 된 것 같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취업도 결혼도 인생의 단계들도. 내 다음 세대는 한 150세까지 살면서, 지금 삽십대의 삶 비슷한 것을 40~50대에 누리고 살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또 느끼는 것은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단어에 따라오는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 나에겐 ‘품어준다’, ‘품이 넓다’, ‘배려한다’, ‘기다려준다’, ‘알려준다’ 같은 넉넉히 기댈만한 인품이 느껴지는 한 인간이 떠오른다. 좋은 사람이 좋은 어른이 된다. 좋은 어른이 아닌 사람도 은근히 많다. 혼자 있을 땐 어릴 때와 다름없다도 느껴질지라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엄마가 직장에서 선물을 받아왔다. 평소에 엄마가 먹는 커피를 눈여겨봐 두었다가, 마트에서 같은 상품을 골라 사 오셨다는 엄마의 동료. 크게 생색내지도 않는다. 반면에 엄마가 가져간 간식을 고맙다 잘 먹겠다는 말도 없이 자기 앞에 놓고 먹어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같은 세대이지만 다른 삶을 산다.